특별 기고

국민 여러분, 천안함 46용사의
명예만은 지켜주세요!

6월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주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현충원 내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아 묘비를 둘러보고 있다. 6월 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63주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가 현충원 내 천안함 46용사 묘역을 찾아 묘비를 둘러보고 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천안함 46용사 유족회장을 맡고 있는 사람입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전사한 46용사들과 이들을 구조하다 순직한 한주호 준위, 지금도 전우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안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천안함 장병들, 자식을 잃은 슬픔이 너무도 큼에도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자식들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숨죽이며 지내고 있는 유가족들, 제가 부족한 글솜씨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을 대표해 국민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 이렇게 기고를 하게 됐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아시다시피 천안함 사건은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 중이던 우리 해군 함정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폭침돼 승조원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사건입니다. 그리고 당시 한국인 49명, 외국인 24명 등 국내외 전문가로 구성된 민·군 합동조사단은 치밀한 정보 분석과 과학적 조사, 폭발 지역에서 수거한 북한제 어뢰 추진체 등 명백한 증거를 근거로 북한의 소행임을 밝혀냈습니다.

사건 초기에는 유가족들마저도 울분에 복받쳐 몸싸움까지 해가면서 정부의 조사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민·군 합동조사단과 함께 폭침 현장을 돌아보고, 조사 과정을 면밀하게 지켜보면서 조사 결과에 대해 신뢰하게 됐으며,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더욱이 참혹한 폭침 현장에 있었던 천안함 장병들의 생생한 증언은 이를 증명하고도 남았습니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은 아픔과 슬픔을 가슴 깊이 묻어두고, 오직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46용사의 명예만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참아가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사자에 대한 마음의 빚을 안고 있는 생존 장병 대부분은 폭침 당시에 입은 부상과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로 말미암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거나 불 꺼진 방에서는 잠을 이룰 수 없는 등 아직도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난 지도 벌써 8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돌이켜보면, 저희 유가족들이 자식을 먼저 보낸 죄책감과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국민 여러분의 정성 어린 손길과 큰 도움으로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천안함 유가족 모두는 사건 당시 보내주신 국민 여러분의 따듯한 위로와 고마움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천안함 46용사가 국민의 기억 속에서 점차 망각되고 사라져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와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도 천안함 폭침 사건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주장들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 천안함 폭침의 주범인 북한 김영철의 방한, 공영방송 KBS ‘추적60분’의 천안함 의혹 제기 편파 보도 등은 저희 유가족과 천안함 생존 장병에게 또다시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와중에 일반 단체나 기관이 아닌 대통령 직속 국가기관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서 발행하는 ‘통일시대’ 6월호에 건국대 윤태룡 교수의 “때가 되면 천안함 사건도 반드시 재조사해 진실을 규명하고, 만일 그 결과 북한에 누명을 씌운 것이 밝혀지면 남측은 북측에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이 여과 없이 실림으로써 유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슬픔에 잠겨야 했습니다. 이들의 왜곡된 주장을 마치 국가와 정부가 받아들여 천안함 폭침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난 6월 저희 유족회와 사건을 겪은 예비역 장병들이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를 항의 방문해 강력히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 방지대책 등을 요구하게 됐습니다. 다행히도 이 자리에서 황인성 사무처장님은 우리 가족들을 진정성 있게 맞이하면서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국방부 발표를 신뢰하며, 윤태룡 교수의 개인적 주장과는 공식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심심한 사과를 해주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천안함과 관련해 유가족들의 가슴을 찢는 이 소모적이고 지루한 논란을 잠재워주시고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46용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보듬어주시기를 눈물로써 호소합니다. 또한 정부에서도 천안함 46용사와 관련되는 사안에 대해서만큼은 사전에 이해와 협조를 구해주시기를 간곡히 당부합니다.

저희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은 평화를 위한 노력에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는 사람들이 결코 아닙니다. 저희들 역시 정부의 평화를 위한 노력이 좋은 결실을 맺어 평화롭고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만 정말로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북한이 명백히 밝혀진 천안함 폭침 도발을 솔직히 인정하고, 천안함 46용사와 동료 장병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할 때야말로 진정으로 남북 간에 평화가 찾아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나라의 부름을 받고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만 했던 천안함 용사들의 명예를 지켜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며, 이후에 다시는 천안함 폭침 사건이 논란이나 갈등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 성 우 이성우
천안함 46용사 유족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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