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기행 통일 여행

백령도 서북쪽 끝에 위치한 두무진의 기암괴석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갈매기들.두무진에서 북한 황해도 장산곶까지의 거리는 불과 10여km이다. 백령도 서북쪽 끝에 위치한 두무진의 기암괴석 주변으로 날아다니는 갈매기들.두무진에서 북한 황해도 장산곶까지의 거리는 불과 10여km이다. 안개 걷히듯 상처 아물고
분쟁 상징에서 평화 보금자리로

서쪽 끝까지 가는 배에 몸을 싣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백령도로 향한다.그곳에서 북한과 인접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간다.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 섬에도 평화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다

살아 있는 것처럼 출렁이는 파도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한 가지 방법은 백령도행 배에 몸을 싣는 것이다. 오전 10시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출발, 오후 1시 40분 용기포항 여객터미널 도착. 섬에 ‘들어간다’는 표현은 분명 이를 두고 하는 말이리라. 쾌속선 ‘코리아킹호’는 단 한 번의 휴식 없이 서해안을 가로지른다.

4시간여 걸려 용기포항에 닿은 배가 닻 내릴 준비를 한다. 초여름 기운이 오른 섬이 해무 위로 살포시 떠오른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 여기서부터는 딴 세상이다. 서해 바다답지 않게 백령도 앞바다는 짙은 푸른색이다. 얕은 해무 사이로 연둣빛 논밭과 마을이 구르듯 펼쳐진다. 희부연 초여름 공기에 휩싸여 운치가 더한다.

인천에서 220㎞, 장산곶에서 10㎞

용기포항 여객터미널을 가득 메우는 인파는 관광객들과 군인들이다. 백령도에는 해병대뿐 아니라 육해공군이 다 들어와 있다. 웃음기 없는 긴장감 가득한 장병들의 표정, 여기저기 게양돼 있는 태극기가 이곳이 최북단 접적지역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담수호를 배경으로 서해 최북단백령도를 알리는 비석이 보인다. 담수호를 배경으로 서해 최북단백령도를 알리는 비석이 보인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여덟 번째로 큰 섬이다. 원래 열두 번째 크기였던 백령도는 사곶해변 뒤편으로 1㎞ 남짓 방조제를 쌓아 땅을 넓히면서 ‘넘버 8’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용기포 부두의 남서쪽과 남동쪽의 해안을 따라 차로 달린다. 이름하여 사곶해변. 언뜻 모래로 이뤄진 듯하나 사실은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형성된 해변이다. 썰물 때면 길이 2㎞, 폭 200m의 사빈이 등장한다. 그래서 사곶 사빈은 이탈리아 나폴리 해변에 있는 그것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단 두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한 지형이다. 천연기념물 제391호로 지정돼 있다.

“유사시 비행기가 착륙할 수 있는 ‘천연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백사장이 평평하고 단단해요. 사곶해변 미니축구장 옆으로 뻗은 길을 기준으로 왼쪽이 사곶해변, 오른쪽이 사곶천연비행장이랍니다.”

관광 가이드로 활동하는 백령도 주민 오정분(59) 씨가 사곶천연비행장의 특징을 설명한다. 실제 6·25전쟁 중에 백령도가 첩보기지가 돼 이 해변을 활주로로 여러 차례 사용했다고 한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2011년 창설된 서북도서방위사령부의 첫 합동훈련 땐 헬기 수십 대가 이 해변에 내려앉았지만 지금껏 사고 한 번 난 적 없는 안전한 활주로라는 설명.

북위 37도 52분. 백령도는 서해 최북단 섬이다. 인천에서는 220㎞가 넘는 거리에 있는데, 북한 땅 장산곶(황해도 장연군)까지는 10㎞에 불과할 만큼 지척이다. 날씨가 좋은 날엔 장산곶이 바로 건너다보인다.

백령도는 한반도에서 가장 위험한 접적지역 중 한 곳으로 꼽힌다. 그런데 정작 백령도 주민들은 덤덤하다. 그래야 살 수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크기 때문인지, 이유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이루어진사곶해변. 백사장이 평평하고 단단해6 ·25전쟁 때부터 천안함 피격 사건 때까지군사비행장으로 사용됐다.  규암 가루가 두껍게 쌓여 이루어진사곶해변. 백사장이 평평하고 단단해6 ·25전쟁 때부터 천안함 피격 사건 때까지군사비행장으로 사용됐다.

“면역이 생겨 그런지 포 사격 소리를 들어도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아.”, “어렸을 때부터 북한 헬기가 넘나드는 걸 보고 자랐으니까.” 50, 60년 넘게 여기서 살고 있다는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서로 말을 주고받는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핵 없는 한반도, 항구적인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는 기대가 백령도에도 감돌기는 해요. 북한 최고지도자가 젊고 외국에서 유학했다고 하니, 선친과는 다를 것이란 시각도 있고요. 근데 언제 말을 바꿀지 모르는 거니까….”

북·미 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이곳 백령도의 분위기를 전하던 오 씨가 말끝을 흐린다.

1991년부터 1999년까지 건설한 사곶~화동 간 방조제 위의 도로를 달린다. 방조제 너머로도 사곶해변이 계속 이어진다. 방조제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방공진지가 들어서 있다. 근처에서 공공근로 중이던 한 주민이 “해안을 통한 적군의 침입을 감시하고 막기 위한 군사시설”이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방조제를 등지고 서니 백령종합운동장 건물이 보인다.

건물 벽면에 그려진 한반도 지도가 그 앞으로 찰랑이는 물결도 없이 잔잔한 담수호를 내려다본다. 간척사업으로 화동과 바다를 막아 만들었다는 호숫가 주변엔 잡풀이 자작자작 자라 있다. 새들의 쉼터로 이용되고 농업용수로도 쓰이는, 다방면으로 유용한 호수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 북쪽 지역 철책선 너머로 태양이 지고 있다. 서해 최북단 백령도 북쪽 지역 철책선 너머로 태양이 지고 있다.

한반도기 단 백령도 어선들

주민들의 걱정은 북한이 아니다. 생업이다. 백령도 주 수입원은 관광객이다. 백령도 북서쪽 포구 두무진은 비경을 자랑한다. 두무진 포구에 기반을 둔 어민들은 관광객이 늘자 2008년 두무진관광영어조합법인을 결성했다. 가구당 2000여 만 원을 모아 배 다섯 척을 샀다. 두무진에서 유람선 관광소를 운영하는 정세윤(71) 씨는 지난날을 이렇게 회고한다.

“천안함 사고가 북한 공격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백령도 말로 ‘변’이 났어요. 관광은 끝난 거나 다름없으니 다들 짐을 싸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이곳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디 쉽게 나가게 됩니까. 버티다 보니 이런 날이 온 거지요.”

유람선을 타기 위해 백령도 두무진항에서 승선을 기다린다. 이곳 어선마다 한반도기를 매달고 있다. 그 바로 옆에는 ‘서해5도 어장 확장’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역에서 조업하고 싶은 백령도 어민들의 숙원을 담은 메시지다. 두무진 포구 초소에서 안내하는 장병이 설명을 덧붙인다.

올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전후로 어선들이 한반도기를 달았습니다. 서해 NLL은 수산 자원이 풍부한 황금어장인데, 전쟁 위험 때문에 남북 어선이 접근하지 못하는 사이 중국 어선이 수산 자원을 훑어가는 걸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서해5도 어장 확장’이라는 글귀가 쓰인 한반도기를 단 백령도 어선. 서해5도 어장 확장’이라는 글귀가 쓰인 한반도기를 단 백령도 어선.

포구를 빠져나온 유람선이 유유히 바다를 가르며 나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깎이고 다듬어진 절벽들이 기기묘묘함을 자랑한다. 고려 충신 이대기가 저서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격찬한 선대암이다. 그 하나하나가 거대한 성채같이 웅장하고 위엄 있어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선대암에는 둥지를 튼 가마우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모양 같다는 코끼리바위는 마치 팬케이크 일종인 크레이프처럼 지층이 겹겹이 쌓여 있다.

조그맣게 형성된 만에는 무수한 자갈 바윗덩어리와 함께 기암괴석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다. 파도에 의해 만들어진 해식 동굴도 듬성듬성 나 있다. 입구는 좁지만 내부는 꽤 넓어 보인다. 여객선이 난파돼 무인도에 표류하게 된다면 바로 이런 곳이 아닐까, 잠시 상상한다.

무리를 이루며 하늘을 비상하는 갈매기들, 연무로 뿌옇게 변한 하늘, 그리고 어렴풋이 빛을 발하는 태양은 묘한 감성을 자극한다. 저 멀리 서해교전을 기린다는 기념비와 해병 흑룡부대원들이 세웠다는 통일기원비가 희미하게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린 신태수 화백의 작품 ‘두무진에서 장산곶’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서해 최전방 백령도에서 분쟁의 상징이었던 서해를 평화의 보금자리로 만들자는 바람을 담은 그림이다.

6월 6일 백령도 현충탑을 찾은한 국가유공자가 현충일 추념식에서눈을 감고 묵념하고 있다. 6월 6일 백령도 현충탑을 찾은한 국가유공자가 현충일 추념식에서눈을 감고 묵념하고 있다.

평화를 염원하는 주민들의 마음

차를 타고 북쪽 지역으로 이동한다. 파란 파스텔 톤으로 부드럽게 덧칠한 것 같은 북쪽 해안선을 굽이굽이 따라가는 길. 섬 북쪽 지역은 철책선에 둘러싸여 있다. 바닷가마다 ‘용치(간첩선 접근을 막기 위한 시설물)’라고 불리는 뾰족한 쇠기둥이 빼곡하게 박혀 있다. ‘출입 금지’의 엄중한 경고를 뒤로한 채 철책선 너머로 하루의 해가 저물어간다.

이튿날 아침, 현충탑 광장으로 주민 300여 명이 모였다. 제63회 현충일(6월 6일)을 맞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궂은 날씨에도 발걸음을 한 것이다. 행사장 왼편 앞쪽 자리엔 일제강점기에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유공자 유가족이 앉아 있다. 5·18과 6월 항쟁 때 민주주의 현장을 지킨 이들, 서해 바다를 지킨 용사들도 있다. 저마다 방법은 다르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한 애국자들이다. 천안함 피격 사건 유가족 김모 씨가 덤덤한 표정을 지은 채 말한다.

 백령도 연화리에 위치한천안함 46용사 위령탑 백령도 연화리에 위치한 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전쟁 종식과 평화 정착은 순국선열,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최고의 보답이죠. 그렇다고 평화 분위기만 보고 호국영령들의 희생을 소홀히 여기서는 안 될 겁니다.”

천안함 위령탑은 백령도 서쪽 끝자락 연화리에 위치한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천안함 군인 유족이 운영한다는 가게에서 국화꽃 한 송이를 사 들고 언덕을 오른다. 작은 동산에 마련된 천안함 위령탑이 8년 전 그날의 바다를 굽어본다. 2010년 북한에 의한 피격으로 희생된 46명 중 6명의 시신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

쓰인 표지판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진다. 서해 최전방 섬이라는 단순하고 낭만적인 이 지역은 남북관계의 그늘을 완전히 벗지 못한다. 국경의 섬에 내려앉은 팽팽한 긴장감이란 어쩌면 여름날의 해무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안개는 걷히기 마련이다. 오늘도 주민들은 씨를 뿌리고 그물을 손질하고 관광객을 맞는다.

 백령도 연화리에 위치한천안함 46용사 위령탑 철책선에 둘러싸인백령도 북쪽 지역.바닷가마다 용치라고불리는 뾰족한쇠기둥이 박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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