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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이 폭파되며 목조 자재와 돌멩이들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이날 지휘소 시설 7개 동이 폭파됐다(위).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2호가 2006년 10월 16일 촬영한 북한 핵실험 추정 지역인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영상. 작은 사각형의 위쪽이 만탑산, 아래쪽이 장욱천. 어두운 부분은 산지, 흰 부분은 건물밀집 지역이나 땅이 파헤쳐진 곳으로 보인다(오른쪽).

5월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이 폭파되며 목조 자재와 돌멩이들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다. 이날 지휘소 시설 7개 동이 폭파됐다(위). 다목적실용위성 아리랑 2호가 2006년 10월 16일 촬영한 북한 핵실험 추정 지역인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영상.

산림자원 풍부한 송이버섯 집산지
핵실험과 거리 먼 살기 좋은 땅

작은 사각형의 위쪽이 만탑산, 아래쪽이 장욱천. 어두운 부분은 산지, 흰 부분은 건물밀집 지역이나 땅이 파헤쳐진 곳으로 보인다(오른쪽). 작은 사각형의 위쪽이 만탑산, 아래쪽이 장욱천. 어두운 부분은 산지, 흰 부분은 건물밀집 지역이나 땅이 파헤쳐진 곳으로 보인다(오른쪽).

그 땅은 본래 이름 그대로 물산이 풍부한 냇가 마을이다. 함경북도 길주군 1읍 5구 22리의 하나, ‘풍계리(豊溪里)’. 길주군 북서쪽 내륙 깊숙한 산악지대에 둥지를 튼 골짜기 마을이라고 하나, 예로부터 산림이 울창하고 물이 맑아 들녘에는 감자와 고랭지 채소가 풍성했다. 특히 송이버섯 집산지였다. 이런 산 좋고 물 좋은 고장에 핵실험장이 들어서 지난 12년 동안 땅 밑에서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풍계리 핵실험장. 북한이 그동안 ‘북부 핵시험장’이라고 불러온 곳이다.

풍계리가 천혜의 핵실험장으로 낙점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만탑산(2205m)과 기운봉(1874m), 학무산(1642m), 연두봉(1287m) 등 해발 1000m 넘는 준봉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외부의 감시를 피하기 쉽기 때문이고, 암반 대부분이 단단한 화강암으로 이뤄져 있어 핵실험으로 발생하는 방사성물질의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실제 풍계리 핵실험장은 양강도 백암군과 함경북도 명간군 사이에 있는 만탑산 계곡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함경북도 길주군 시내에서는 불과 42㎞ 정도 떨어져 있다.

풍계리는 한반도를 뒤흔든 검은 땅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이곳에서 일어났다.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이 이뤄졌다. 이후에도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013년 2월 12일, 2016년 1월 6일과 9월 9일, 2017년 9월 3일 등 모두 6회에 걸쳐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때마다 풍계리에서 최소 3.9에서 최고 5.7 규모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북한 당국은 보안을 위해 풍계리 핵실험장 지역에 사는 주민을 다른 지역으로 소개(疏開)하고, 상시 경비로 이 지역 출입을 철저히 통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6차례 핵실험으로 풍계리 주변은 방사성물질에 크게 오염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관측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근 주민들이 암, 심장병, 감각기관 이상, 다리 마비 등의 증상을 겪고 있다는 이들의 증언도 전해진다.

이런 북핵 시설의 메카라 불리는 풍계리에도 따뜻한 훈풍이 불고 있는 듯하다. 남북 정상회담 이행을 위한 비핵화 첫 조치로 북한은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장 2~4번 갱도와 막사, 생활동 본부, 관측소 등을 잇따라 폭파했다. 4월 20일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에서 공화국 북부 핵시험장(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를 공언한 지 34일 만이다.

북한은 이날 오전 남한을 비롯한 미국, 영국, 중국, 러시아 등 5개국 기자단이 풍계리 현장에 도착한 직후 폐기 행사를 진행했다. 그동안 외부 세계에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풍계리 핵실험장이 전 세계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오전 11시 핵실험을 다섯 차례 실시한 2번 갱도(북쪽)와 관측소가 먼저 폭파됐다. 오후 2시 17분 4번 갱도(서쪽)와 단야장, 2시 45분 생활동 본부 등 5개가 폭파됐다. 이어 오후 4시 2분 3번 갱도(남쪽)와 관측소, 오후 4시 17분 남은 2개 동의 막사(군사 건물)를 폭파했다.

‘죽음의 땅’ 악명 벗고 ‘비핵화 상징’으로

풍계리라는 지명은 분단 이후 지어진 것이었다. 1952년 군·면·리 통폐합 조치에 따라 길주군 장백면의 신동리 일부와 양사면의 신풍리·장흥리가 병합되면서다. 마을에 그간 없던 새로운 이름이 붙었다. 신풍리의 ‘풍’자와 이 지역에 있는 중심 마을 남대계리의 ‘계’자를 따서 풍계리가 되었다.

역사가 기록하는 이곳은 핵실험장과는 거리가 먼 땅이었다. 풍계리가 들어선 길주군은 원래 함경도의 중심 고을 중 하나로,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후 고대국가인 옥저의 중심지역 중 하나였다가 고구려에 병합됐다. ‘살기 좋은 곳’이란 뜻의 오늘날 길주는 고려 말기인 1390년, 이곳에 살던 여진족을 몰아낸 것을 기념하며 지어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이곳은 함흥과 함께 함경도 대표도시로 꼽혔다.

그래서 당시에는 함경도를 함길도(咸吉道)라 불렀다. 1467년 5월 ‘이시애의 난’이 발생하고 이곳에 ‘역도의 고향’이란 딱지가 붙으면서 경성에 대표도시란 타이틀을 물려주게 됐다. 이후 이곳은 함경도가 됐다. 일제강점기엔 목재 가공이나 종이 제조 공장이 하나둘 들어섰다. 만탑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석이나 흑연 같은 지하자원이 풍부해 고을 사정이 풍족한 편이었다고 한다.

풍계리가 천혜의 핵실험장으로 용도가 변경된 것은 분단 이후다. 핵실험장으로 사용되면서부터 풍요롭던 땅은 지반 붕괴를 염려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나빠졌다. 수차례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지반이 약해져 만탑산 정상이 4m가량 내려앉았다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 2017년 10월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풍계리 만탑산의 ‘산 피로 증후군(Tired Mountain Syndrome)’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산 피로 증후군은 거듭된 핵실험으로 지반 내부가 크게 약화돼 대규모 산사태나 지반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을 뜻한다.

풍요로운 계곡이라는 뜻과 달리 참담한 운명에 처한 풍계리. 북한의 핵 폐기 조치로 풍계리 핵실험장은 폭파음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첫 축포를 쏘아 올렸다. 이제 풍계리는 ‘죽음의 땅’이라는 악명을 벗고 ‘비핵화의 상징’으로 불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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