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칼럼

진정한 평화의 길

‘평화, 새로운 시작’을 표어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다. 판문점 선언에서 올해 안에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한반도에서도 평화로운 삶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평화로운 삶으로 가는 길은 긴 여정이다.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오랫동안 분단과 정전 체제 아래 안보 위협과 불안정한 평화 속에 살아온 우리 사회엔 ‘안보’의 관점에서 ‘평화’를 바라보는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다. 도발에 대한 응징, 원점 타격 등의 대응 전략에서 보듯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억제하는 데 중점을 두는 평화에 익숙해져 있다.

안타깝게도 안보 관점의 평화는 낮은 단계의 ‘소극적 평화’에 불과하다. 북한의 비핵화와 맞물려 평화협정의 체결, 북·미관계 정상화, 남북 간 군사적 신뢰 구축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하드웨어적 차원에서 평화 체제는 달성될 수 있다. 현재 논의되는 평화 체제가 구축된다면 안보 위협과 전쟁 발발의 위험성은 해소될 수 있다. 그렇지만 한반도 분단구조를 생각할 때 하드웨어적 평화 체제는 진정한 평화를 향유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고 본다.

분단 체제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분단과 전쟁, 적대적 체제 경쟁을 겪으면서 남북한 주민들 사이에 불신, 적대감이 누적돼왔다. 진정한 의미의 평화가 우리의 내면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들 사이의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야 한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통한 하드웨어 차원의 평화 과정과 더불어 남북한 주민 사이 내면의 벽을 허무는 소프트웨어 차원의 평화 과정이 병행돼야 한다.

진정한 평화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한 교류협력이 다방면에 걸쳐 획기적으로 확대·지속돼야 한다. 남북한 경제 교류협력은 평화의 기반이 될 수 있다. 남한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 투자와 경제 협력이 확대되면 북한 주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될 것이다. 생활수준이 향상된 북한 주민도 안보 불안이 자신들의 번영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북한 주민이 역설적으로 ‘북한판 코리아디스카운트(한국 기업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음을 나타내는 말)’에 대해 우려하는 상황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하드웨어적 평화 체제도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마음의 벽이 허물어져 진정한 의미의 적극적 평화가 달성되려면 남북한 주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교류협력이 확대돼야 한다. 이렇게 되는 과정에서 북한 내 군사주의 문화, 남한 내 냉전 인식의 잔재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수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출발점으로 삼아 교류협력의 획기적인 확대를 통해 남북한 주민 사이 마음의 벽을 허물어가면서 우리 모두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실질적으로 향유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가야 할 때이다.

김수암 김수암
통일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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