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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열린 남북 예술단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우리의 소원’을 이선희(가운데), 레드벨벳 등 남한 가수들과 북한 가수들이 함께 부르고 있다.

4월 3일 열린 남북 예술단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에서 ‘우리의 소원’을 이선희(가운데), 레드벨벳 등 남한 가수들과 북한 가수들이 함께 부르고 있다.

남한 예술인 북한 공연 ‘가을이 왔다’를 기다리며

김지난 4월 1일과 4월 3일 두 차례에 걸쳐 남측 예술단이 평양에 있는 동평양대극장과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공연을 했다. 이번 공연의 의미와 감동이 올가을에도 이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가수가 부러웠다. 노래로 1만2000여 명의 청중과 호흡하고, 공명(共鳴)하고,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강산애가 ‘라구요’를 부르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을 흘렸을 때, 서현이 마지막 피날레 곡을 부르며 눈물을 흘릴 때 나도 눈물이 났다. 가수는 그렇게 공연장에 있는 청중뿐만 아니라 시공간을 뛰어넘어 현장의 감동을 전달하는 힘을 지녔다. 이선희가 작은 체구로 큰 무대를 휘저으며 젖 먹던 힘까지 모아 온몸으로 ‘아름다운 강산’을 절규하듯 토해낼 때 그 열정과 생명력이 내게도 뜨겁게 감전돼왔다.

내일모레면 일흔이 되는 가왕 조용필이 ‘모나리자’를 숨 가쁘게 부를 때 내 몸도 흥에 겨워 들썩거렸다. 백지영이 혼을 바쳐 ‘총 맞은 것처럼’과 ‘잊지 말아요’를 부를 때 간절함이 넘쳐 몸을 비틀고 싶었다. 그렇게 그녀는 진흙 밭에서 피어난 연꽃처럼 강한 생명력으로 나를 감동시켰다. 남북의 예술인들과 1만2000여 명의 청중이 기립해서 한마음으로 ‘우리의 소원’, ‘다시 만납시다’를 제창할 때 나는 통일된 조국의 환영을 보는 것 같았다. 가수는, 노래는, 그렇게 모두를 하나가 되게 했다.

노래 내용·창법 차이 넘어선 무대

평양의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예술단이 ‘우리는 하나’가 되어가던 4월 3일 오후, 나는 제주에 있었다. 제주 4·3평화공원의 행방불명자 묘역엔 활짝 핀 벚꽃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행방불명자 비원에는 시신을 찾을 수 없는 희생자 표석 3895기가 설치돼 있다. 묘비원 둘레를 벚나무들이 감싸고 있는데, 그 나무들이 꽃망울을 활짝 틔워낸 것이었다. 이름만 덩그러니 새겨진 행방불명자 표석 앞에도 하얀 꽃들이 놓여 있었다. 표석 앞에 놓인 하얀 꽃, 묘비원을 에워싼 벚꽃이 마치 소복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봄날 오후의 강렬한 햇살이 표석에 부딪쳐 반짝였다.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제주 4·3은 분단의 출발점이다. 희생자가 양민이든 진압 군경이든 모두 우리 민족이었고, 그중 대부분은 제주 도민이었다. 희생자 3만여 명은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이 넘는다.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죽었다는 얘기다. 그렇게 제주의 4·3은 70년이 지났지만, 이름도 찾지 못한 채 소복을 입고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났다. 분단된 조국에서 4·3을 바라보는 시선마저 엇갈린 채….

‘우리는 하나’는 남북 예술인들의 연합무대라는 명칭에 걸맞게 하모니가 빛난 공연이었다. 남측의 정인·알리와 북측의 김옥주·송영이 함께 부른 ‘얼굴’, 김옥주와 이선희가 손을 꼭 잡고 함께한 ‘J에게’, 출연한 여성 가수들이 모두 함께 부른 ‘백두와 한라는 내 조국’에 이르기까지…. 체육관에 운집한 청중들도 남북 예술인들이 합창을 할 때 더 뜨거운 박수와 호응을 보내주었다.

남북한은 노래를 보는 기준도 많이 다르다. 북한의 대중음악은 당과 수령에 대한 경배와 충성심을 자극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생일잔치나 결혼 피로연을 할 때 부르는 노래들은 대부분 수령과 지도자를 찬양하는 곡들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주제인 곡은 찾기 쉽지 않다. 남한의 대중가요는 대부분 사랑이 주제다.

창법도 다르다. 남한에선 혼을 넣어서 열정적으로 부르거나, 애절하고 간절하게 불러야 공감을 얻는다. 레드벨벳이 잠깐 보여준 것처럼 아이돌 가수들의 노래는 안무가 중시되는 시청각 퍼포먼스다. 북한의 가수들은 몸을 많이 움직이지 않고 목소리로 부른다. 미성과 고음을 살려 곱게 불러야 훌륭한 가수다.

그러나 남북 예술단이 함께한 연합무대는 그 모든 차이를 뛰어넘어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두 차례 공연에서 사회를 본 서현, 평양 공연만 네 번째 다녀온 최진희, 부모님 고향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 강산애, 독특한 음색으로 ‘오르막 길’을 부른 정인 등 남측 가수 모두가 공연이 끝난 후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무대 위에 선 가수는 객석의 청중과 끊임없이 소통한다. 청중의 반응에 따라 신이 나기도 하고 감동도 받는다. 공연에 참가한 우리 가수들이 큰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체육관을 가득 채운 청중의 반응이 뜨거웠다는 얘기다.

청중의 면면도 다양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소녀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공연을 주시하던 앳된 청년들, 나이 지긋한 중년에 이르기까지 차림새와 연륜, 직업이 다양해 보였다. 그런 차이와 다름을 딛고, 무대에 선 남북 예술인과 1만2000명의 청중이 하나가 된 공연이 ‘우리는 하나’인 것이다.

4월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공연을 관람하러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손을 들어 관객들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4월 1일 평양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남북 평화 ·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공연을 관람하러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손을 들어 관객들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감성보다 이성이 지배한 ‘봄이 온다’

이틀 전인 4월 1일, 동평양대극장에서 열린 2018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 ‘봄이 온다’는 ‘우리는 하나’와 비교해볼 때 대조적인 공연이었다. ‘봄이 온다’는 조용필, 최진희, YB, 이선희, 강산애, 백지영, 정인, 알리, 서현, 레드벨벳 등 남쪽을 대표하는 가수들만으로 꾸며진 무대였다. 실황 중계 프로그램을 꼼꼼하게 보았다. 무엇보다 객석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했다.

청중은 모두 차림새가 좋았다. 점잖게 차려입고 얼굴에 여유와 깊이가 묻어나는 고위 간부부터 정장을 곱게 차려입은 남녀 모두 차림새나 영양 상태가 좋아 보였다. 초대받은 소수의 사람들만 올 수 있는 자리이기에 각 분야의 기관·기업소를 대표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객석에 앉은 1500여 명의 청중들도 우리 가수들의 모든 것을, 마치 안광이 지배를 철하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편안하게 노래를 듣고 즐기는 모습이 아니었다. 남쪽 가수들이 어떻게 노래하는지, 남한 사람들이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어떤 옷을 입었으며, 몸짓은 어떤지, 이 모두를 분석하는 감별사들 같았다. 내가 보기에 감성보다 이성이 지배한 음악회였다. 남과 북은 그런 것이었다. 나도 그렇듯이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 그렇게 되는가 보다.

서로에 대해서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아, 손짓 하나에서도 많은 걸 읽어내고 싶은 관계다. 그 속에서 우린 서로가 가진 차이와 같음을 구별한다. 북측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남측을 대표하는 가수들을 통해서 남한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패션, 노래하는 태도, 그 안에 담긴 남한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읽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봄이 온다’ 공연이 열렸던 4월 1일 오후, 나는 일본 오사카에서 조선학교 학부모들을 만나고 있었다. 4월 말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 조총련계 재일 조선인들의 생각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조선 제4초급학교 입학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청소도 안 된 퇴락한 건물에서 8명의 신입생이 조촐한 입학식을 치렀다. 한때 100개가 넘던 일본의 조선학교는 현재 60여 개만 운영되고 있다. 남아 있는 학교들도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해가 갈수록 학생 수는 줄고, 교사들은 급여도 못 받고 있다. 2010년 일본은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하면서 조선학교 만 재정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다. 친북·반일 학생들을 양성한다는 이유에서였다.

4월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예술단 합동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북한 노래 ‘다시 만납시다’가 연주되자 남북 관계자들이 손을 맞잡고 호응하고 있다. 4월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남북 예술단 합동공연에서 마지막 곡으로 북한 노래 ‘다시 만납시다’가 연주되자 남북 관계자들이 손을 맞잡고 호응하고 있다.

재일 조선학교는 조선인들의 구심점이고 연대의 축이다. 분단된 나라를 조국으로 둔 재외교포, 그 가운데서도 일제 강점의 피해를 가장 크게 본 사람들이 재일 조선인들이다. 광복 후에도 일본인들로부터 온갖 차별을 당했다. 3세, 4세로 이어지는 동안에도 그들이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이유다.

조총련계 재일 조선인들에게 분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고 일상의 고통이다. 9만3000여 명의 재일 조선인들이 귀국선을 타고 북에 정착한 이후, 일본에 남은 사람들은 남도 북도 선택하기 힘든 경계인이 되었다. 원래 고향은 남쪽인데 가족이 북에 있는 사람들, 그들이 분단된 어느 한쪽을 조국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다. 아직도 4만여 명은 조선적을 보유하고 있다. 조선적은 국적이 아니어서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가려면 아주 불편하다. 그때마다 여행 허가를 받 아야 한다. 조선학교 학부모들의 유일한 희망은 조국이 분단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다.

남북관계에도 가을이 오기를

남북 예술단원들이 공연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남북 예술단원들이 공연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의 4월은 그렇게 분단과 화해의 현장을 왕래했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에서 애기무덤들을 보았을 때, 평양에서의 어색했던 만남이 노래를 통해서 하나가 되어갈 때, 죽음과 생명의 탄생이 교차하는 느낌을 받았다. 4·3평화공원의 화사한 벚꽃이 소복으로 보이기도 했고, 각명비에 새겨진 이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딸로 환생하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 그만큼 나에게 분단의 상흔은 깊고도 처연하게 느껴졌다. 그만큼 평양에 울려 퍼진 ‘봄이 온다’와 ‘우리는 하나’가 소중하게 여겨졌다.

새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줄탁동기(啐啄同機)가 필요하다. 여름날의 무더위와 장마와 태풍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생명만이 가을의 결실을 맺는다. 소복처럼 피어난 꽃이 지면, 연두색 이파리가 새살처럼 돋아날 것이다. 우리는 그 생명을 소중하게 가꿔가야 한다. 여름을 넘어 가을로 평화의 불씨, 한반도를 살리는 생명의 불씨를 키워가야 한다. 그날이 오면 백두에서 한라, 한라에서 현해탄 건너 일본까지 평화와 화해협력의 기운이 확산되고, 덩실덩실 ‘가을이 왔다’를 노래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을이 왔다’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이유다.

공용철 공 용 철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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