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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를 산책한 뒤 벤치에 마주 앉아 대화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 도보다리를 산책한 뒤 벤치에 마주 앉아 대화하고 있다.

2018 남북 정상회담 ‘평화, 공동 번영’의 이정표 세웠다

‘평화, 새로운 시작’을 주제로 열린 4·27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담은 ‘판문점 선언’이 이행된다면 정전협정에 기초한 소모적인 분단 체제가 청산되고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가 열린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이룬 합의들을 잘 실천하게 되면 우리들은 정전 체제에서의 피곤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18년 4월 27일은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여는 역사적인 날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정전협정 체결 65년 만에 분단과 전쟁, 대립과 갈등으로 점철된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민족 화해와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여는 ‘판문점 선언’에 합의했다. 판문점 선언은 냉전시대에서 평화시대로의 역사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한반도 질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그동안 사문화된 남북 간의 ‘모든 선언과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남북관계가 복원됐다. 판문점 선언의 채택으로 ‘잃어버린 11년’을 되찾았다. 지난 시기 북한과 이룬 비핵화 합의들과 남북 간 합의들이 모두 이행되지 못한 경험에 비춰볼 때 이번 합의도 같은 운명에 처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희망과 다짐을 가지고 남북 정상회담을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지난 시기 합의가 불이행된 점들을 언급하고 미래를 내다보고 구속력 있는 불가역적인 합의를 만들자고 다짐한 것을 볼 때 합의 이행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명문화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관계 개선, 군사적 긴장 완화, 한반도 항구적 평화 체제 구축 등과 관련한 13개 항의 합의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사문화된 기존 남북 합의들을 복원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6·15 공동선언에서 밝혔던 ‘민족 자주 원칙’을 되살리고,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합의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성에 설치키로 했으며, 남북 불가침 합의를 재확인했다. 10·4 선언에서 합의했던 사업들을 추진하는 것과 함께 3자 또는 4자 종전 선언을 올해 안에 실현하고, 정전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그밖에 기존 모든 합의문에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를 위한 노력,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 해결 노력, 다양한 분야의 교류협력과 민족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노력 등 남북관계의 전면적 복원을 위한 합의를 도출했다.

남북 정상 사이의 직통전화 설치에 이어 개성지역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남북 정상회담을 정례화하자는 합의는 남북관계를 제도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간헐적으로 이뤄졌던 남북대화와 이벤트성으로 추진했던 이산가족 상봉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남북관계의 개선·발전을 위해서는 상시적인 의사소통 창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연락사무소 개설 합의는 남북교류협력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가장 관심을 끈 부분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김정은 위원장 입을 통해 확인하고 명문화한 것이었다. 판문점 선언문에서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합의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 비핵화 목표만 밝히고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방법과 일정을 약속받지는 못했다는 일부 우려가 있지만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큰 틀에서 보면 이해할수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은 한꾸러미에 들어 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비핵화와 체제 안전 보장 등과 관련한 말 대 말의 공약을 하고, 이어지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행동 대 행동으로 일괄 타결을 시도해야 한다.

북한이 전제조건 없이 ‘완전한 비핵화’를 확약한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다름없다. 지난 4월 20일 조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핵이 없는 세계’와 ‘핵 군축’ 차원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을때만 해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북한이 미국과 핵 군축을 말하거나, 핵을 가진 모든 나라들이 핵을 버리면 비핵화할 수 있다고 한다면 협상은 진행되기 어렵다. 이번에 전제조건 없이 “핵이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고 공약함으로써 북·미정상회담에서 일괄 타결하고 단계별로 이행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과거 동결 대 보상 방식인 ‘안보·경제 교환’이 아니라, 미국의 우려사항인 비핵화와 북한의 요구사항인 체제 안전 보장을 ‘안보·안보 교환’ 방식으로 일괄 타결하고 순차적으로 빠른 속도로 이행하게 될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핵보유 동기를 해소해야 한다. 북한은 북·미 적대관계에서 핵 개발의 동기를 찾아왔다. 이번 합의에서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해 3자 또는 4자회담을 추진키로 한 것은 비핵화 수순에 상응하는 체제 안전 보장 조치를 마련하는 동시 행동 조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정부, 비핵·평화 프로세스 길잡이 역할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추진은 과거 우리가 해왔던 경로 의존성에서 벗어나 경로를 찾아가는, 가보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첫째,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복원과 함께 비핵화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뤘다는 점이다. 1992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 이후 남북대화의 의제로 다루지 못했던 핵 문제를 남북 정상회담에서 본격적으로 다룸으로써 비핵화 문제가 남북대화 의제로 자리 잡았다. 우리 정부가 운전석에 않아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북한 핵의 가장 직접적 위협 대상인 우리 정부가 나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한편 정전 체제의 평화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비핵·평화 프로세스의 길잡이로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을 중재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함으로써 북·미 핵 협상의 ‘촉진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남북이 주도해야 비핵화 협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출발이 좋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공연을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 김정은 국무위원장 내외가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공연을 보고 있다.

북핵 문제의 지정학적 성격을 고려할 때 6·25전쟁 종식을 위한 평화 프로세스를 본격화한다면 세계사적인 대전환을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해야 북·미 정상회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북·미 정상회담의 전망도 밝다. 두 정상회담이 잘되면 남북한과 미국 3자 또는 중국을 포함한 4자, 러시아와 일본을 포함하는 6자 정상회담으로 이어져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 안보 협력체제 구축까지 가능할 것이다.

둘째, 이번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모두 각국의 임기 초반에 이뤄지기 때문에 합의 이행의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북핵 합의와 남북 합의가 이행되지 못한 이유 중에는 한국과 미국의 정권 교체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페리 프로세스가 중단된 것은 조지 워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 불량 국가론과 붕괴론이 부각되면서 대화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2007년 10·4 정상선언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사문화됐다.

북핵 문제 등으로 켜켜이 쌓인 대립과 갈등의 에너지가 폭발할지도 모를 임계점에서 대화 국면으로 전환됐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에 실패하게 되면 군사적 수단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합의 불이행의 책임이 상당 부분 북측에 있었지만 한국과 미국에서 정권 교체로 이전 정부가 만든 합의를 다음 정부가 이행하지 않은 것도 합의 불이행의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다행히 이번에는 남과 북의 정권 임기 초반이고,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켜야 새로운 경제 발전 노선을 성공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합의의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핵무력 개발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 대신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을 추진하기로 함으로써 핵무력 고도화를 위해 지속해왔던 전략적 도발을 자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합의 파기의 주된 요인은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와 관련한 연이은 전략 도발이었다. 북한이 핵·미사일 시험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를 결정하는 등 전략 도발 중단을 선언해 합의 이행에 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줄어들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공개 폐쇄, 대남 무력 불사용, 표준시 통일 등을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분단 체제 청산하고 평화와 번영 새 시대 열어

북한이 경제 우선의 새로운 전략 노선을 제시하고 비핵화 초기 동결 조치를 선제적으로 발표했다. 북한이 당의 기본 노선으로 경제 우선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인민들의 허리띠를 조여 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효율성을 발휘해야 한다. 자력갱생의 자립 경제로는 경제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 과학기술과 교육을 강조하면서 지식경제 시대(4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고자 하지만 비핵화를 통해 대외관계를 풀지 못하면 효율성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의 시장화 진전에 따른 변화 욕구 등 북한의 내부적 요인도 합의 이행을 강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판문점 선언이 이행된다면 정전협정에 기초한 소모적인 분단 체제가 청산되고 평화와 번영의 새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다. 판문점 선언에서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 비무장지대(DMZ)의 실질적 평화지대화, 군사적 신뢰 구축과 단계적 군축 등 안보 우려사항을 해소하기로 했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 체제를 구축한다면 지정학적 리스크는 낮아지고 대외 신인도는 올라가게 될 것이다. 이번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면 우리들은 정전 체제에서의 피곤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안전하고 풍요로운 내일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고유환 고 유 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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