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북한 일상사 그려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떼어갈까 봐 화장실 문도 달지 못하고 사는 사회
최근 국립민속박물관이 북한이탈주민 면담 조사를 통해 편찬한 이 책에는 깜짝 놀랄 만한 북한 일상사가 담겨 있다. ‘세상에 북한은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한숨이 나올 정도다.
관혼상제와 세시풍속
북한은 음력과 양력설을 모두 지낸다. 오랫동안 음력설 지내는 것을 금지해왔지만 1989년부터 휴일로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차례가 끝나면 주민들은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영화관 같은 위락시설이 없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도 할 일이 거의 없는 탓이다. 집에서 화투도 치고 윷놀이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는 대신 떡이나 과자를 쥐어준다.
북한의 혼례, 장례 풍습은 어떨까? 이전에는 계급 성분이 다른 사람들은 결혼을 하기 어려웠지만, 2005년경부터는 당사자들의 마음만 맞으면 결혼하는 일이 흔해졌다. 혼례는 아주 간소화되었다. 국수에 술 석 잔 주는 게 끝인 집도 있을 정도. 부조금은 전혀 안 내는 경우가 많다. 결혼식은 양가에서 한 번씩 치른다.
잔칫상은 집에서 준비하지 않고 통째로 빌려서 차린다. 상 위에 놓인 음식 가운데 값이 비싼 파인애플 등은 빌렸던 곳에 돌려보내고 떡 같은 것은 돈을 내고 먹는다.
북한에서는 이혼도, 재혼도 쉽다. 합의만 하면 재판정에 가서 재판소장이나 변호사에게 뇌물만 주면 된다. 장례도 간소화되었다. 주로 집에서 장례를 치른다. 수의를 따로 만들지 못해 시신에 양복을 입혀 묻곤 한다.
모든 재화가 국가 소유이고 개인 소유는 인정되지 않다 보니 시신을 아무 데나 허가 없이 묻을 수 있다. 시신은 관에 넣어 운구는 하는데, 묻을 때는 시신만 묻는다. 나무가 귀해서 관으로 썼던 나무로 문짝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김일성 사망 후 배급이 끊어졌을 때는 관도 마대도 구할 수 없이 비닐에 싸서 시신을 버린 적도 있었다.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사진> 비행기 창을 통해 내다본 평양공항.
식생활과 식량난
한은 식재료가 부족해 자급자족을 하거나 대체 음식을 많이 활용한다. 잔치 때 상 위에 오르는 ‘인조고기’도 그중 하나. 콩기름 찌꺼기로 고기 비슷하게 만든 음식이다. 식량난이 심했을 때는 뱀, 개구리, 비둘기까지 잡아먹어 씨가 마를 지경이었다. “비둘기를 먹으면 쌍둥이 오누이를 낳거나 애를 많이 못 낳게 된다”는 속설이 돌아 그나마 비둘기는 몰살을 면했다고 한다.
가정집은 식용유를 거의 구할 수 없어 돼지기름을 모아 쓰거나 생선 내장을 간유로 사용하곤 했다. 된장, 고추장도 고난의 행군 이후에는 구하기 어려워 소금으로만 간을 해먹은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장마당’이 생긴 이후로는 돈만 있으면 사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북한에도 회나 맥주가 있다. 북한의 회는 일본식 날회가 아니라, 생선살을 갖은 양념을 하고 48시간 재워 숙성시켜 먹는 것이다. 맥주는 1년에 한 번 정도 마셔볼 수 있는데, 우리보다 알코올 도수가 약간 높은 5.5도다. 쉽게 구할 수 없다 보니 맥주를 명절 선물로 쓰기도 한다. 그 외 북한에서 먹는 술로는 오미자술, 들쭉술, 태평술 등이 있다.
김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상 위에 필수적으로 놓이는 식품. 겨울이 긴 북한에서는 비타민을 보충해주는 귀중한 식재료이기에 ‘반년 식량’으로 불린다.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므로 잃어버린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 7월 초가 되면 1년간 소금에 절여둔 염장무를 꺼내 먹는다.
<사진> 묘향산 국제 친선관람 행사에 온 북한 학생들.
의생활과 주생활
북한 주민들의 옷차림은 대개 비슷하지만 그런 중에도 ‘유행’은 있다. 한때 이설주가 입은 옷이나 김정일 스타일이 유행하기도 했다. 북한 여성들도 화장을 할까? 한다. 그것도 ‘진하게’ 한다. 북한 역시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물자가 부족하니 여름 양말은 ‘없어서 못 신는다’. 겨울에도 내복 바지는 ‘없어서’ 잘 안 입는다. 신발도 질이 나빠 한 달 신으면 다 해질 정도이다. 안경도 구하기 힘들어 안 쓰고 다니거나, 대를 물려가며 쓰곤 한다.
북한에서는 2005년부터 개인이 집을 사고팔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섣불리 집을 샀다가 공안이 돈 출처를 추궁해오거나 집을 빼앗으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어, 돈이 있어도 함부로 사지 않는다.
북한에도 아파트는 꽤 보급되었지만 대부분의 아파트에서는 개별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는다. 건축 때는 화장실을 짓기는 한다. 하지만 물이 안 나오니 화장실이 있으나 마나가 된다. 창고로나 사용하게 된다.
아파트 주민들은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데, 여기도 수도관이 없어 용변을 보고 나면 일일이 퍼다 버려야 한다. 분뇨는 모아서 끓여 돼지 사료로 사용한다. 돼지에게 줄 사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문이 안 달린 공동화장실도 많다. 문을 달아놓으면 사람들이 몰래 땔감으로 떼어가기 때문이다.가정에 보급되는 전기는 50V. 전압이 낮아 대부분 변압기를 써서 110V로 올려 사용한다. 그나마 자주 끊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일부러 사무실로 나가기도 한다. 김일성 연구실과 동상 부근은 24시간 전기를 주기 때문이다.
김일성을 기념하기 위한 장소는 또 다른 용도로도 이용된다. 성 거래 장소다. 여군들이 성을 상납하면 당에서 승진시켜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상사와 성 거래를 하는데 김일성 동지 혁명역사연구소를 주로 이용한다는 것. 그 이유는 이 연구소가 전국 몇천 개소에 달할 뿐 아니라, 내부에 김일성 사진이 걸려 있어 365일 보온이 되고 소파까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 개성 송악산 인근 가옥.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