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생활 11년 만에 ‘정규 공무원’ 된
북한이탈주민 이경희 씨
“이제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희망 퍼뜨리겠다”
<사진> 21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통일부 정규직 공무원에 합격한 이경희(왼쪽) 씨가 함께 합격한 방금철 씨와 환하게 웃고 있다.
북한이탈주민 대상 정규 공무원 공채에 합격해 제1하나원에서 일하게 된 이경희 씨. 갖은 고생 속에서도 주경야독으로 자격증을 따고 사이버대학에 다니며 자기개발에 힘쓴 각고의 노력이 그를 ‘신참 탈북자’의 멘토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11년 전 이곳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 것으로 한국에서 새 삶을 시작한 제가 이제 정규직 공무원이 되어 이곳에 돌아와 일을 하게 되다니 정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지난해 11월 통일부가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처음 실시한 정규직 공무원 공채에 합격해 12월 7일부터 경기 안성의 제1하나원에서 경리직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경희(43) 씨의 감회다. 5명 모집에 104명이 지원했으니 무려 21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것이다.
이전에도 대전현충원에서 공무를 보기는 했지만 계약직 신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식 공무원이 되어 한국에서 첫발을 디뎠던 하나원에 ‘금의환향’한 것이다.
지난 세월 고생했던 기억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1997년 중국까지는 갔으나 한국으로 올 수 있는 방법을 몰랐다. 도시로 나가면 인신매매에 걸릴까 두려웠다. 남동생도 함께한 탈북이었기에 더욱 조심해야 했다. 3년간 중국 두메산골에 틀어박혀 농사를 지으며 숨어 살았다.
2005년 간신히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꿈만 같았다. 대한민국이 자신과 동생을 받아준 사실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고생은 여전했다.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사회에 나온 뒤, 호구지책으로 온갖 노동을 했다. 북한에서 건설대학을 졸업했지만 한국에서는 건설기계를 전공한 대학 학력이 소용없었다. 택배회사 물류센터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짐을 올리고 내리는 일도 했고, 식당 일도 해보았다.
“육체노동은 장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싶었습니다. 자격증을 갖는 것만이 살길이라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죠. 독학으로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따고 경리일을 배워 일반기업에 경리로 취직했습니다. 4년간 일하다 지인의 추천으로 2012년부터 국립대전현충원 관리팀과 행정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했습니다.”
그사이 결혼도 했다. 남남북녀가 부부로 인연을 맺은 것이다. 2007년의 일이었다. 두 딸을 낳고 알콩달콩 가정을 꾸렸다.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2012년 북한에 남아 있던 어머니까지 모시고 왔다. 남동생에게도 ‘탈북자가 한국 사회에서 자리 잡으려면 대학 졸업장보다는 자격증과 실력이 중요하다’고 설득해 에너지관리기능사 자격증을 따게 해 무난히 취업시켰다.
“남이 10시간 잘 때 나는 1시간 잔다”
이 씨가 한국에 와 한 일이 술술 풀린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면에는 남모를 노력과 고충이 숨어 있다. ‘남들 10시간 잘 때 1시간밖에 안 자겠다’는 다짐으로 일하고 공부한 결과다. 마음고생도 컸다.
“북한과 이곳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북한 사람 특유의 톤이 높고 강한 말투 때문에 오해를 받기 십상이었습니다. 현충원에서 전화를 받을 때도 말투가 불친절하다는 불만 민원이 접수됐습니다. 남편과 대화할 때도 어투 탓에 남편이 감정을 상해 갈등을 겪곤 했어요.”
스트레스와 고민이 많아졌다. 상대방과 속마음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오해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사이버대학에서 심리 상담을 공부하기 시작해 주경야독 2년 만에 올 2월 학위를 받았다.
심리 상담을 공부하게 된 것은 개인적 이유에서였지만, 하나원에 발령받아 오자 이 공부가 진가를 발휘했다. 하나원에 들어오는 ‘신참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제대로 멘토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새로 한국에 발을 디딘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이 씨는 한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연착륙한 본보기이자 선배가 된 것. 자연 그에게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진로를 찾아나가야 할지 상담을 요청하는 교육생들이 늘어났다.
“한국에서 여러 일을 겪어낸 제 경험담이 다른 북한이탈주민들에게 많은 공감과 설득력을 갖게 한 것 같습니다. 저도 제 경험담과 조언이 다른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한편으로는 전에 없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그만큼 하나원에서의 업무에 더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 씨. 앞으로도 하나원을 거쳐나갈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힘닿는 대로 한국 생활 길라잡이 역할을 하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자 각오다.
<사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계약직 공무원을 할 때 을지훈련 안보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경희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