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13 | 20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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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인권법 제정과 의미

뒤늦은 제정,
더 적극적 실효적으로 정책 추진해야

“아이들이 무슨 죄 있다고.” 1997년에 촬영한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부모와 함께 수용돼 생활하는 어린이들. 북한 인권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사진> “아이들이 무슨 죄 있다고.” 1997년에 촬영한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부모와 함께 수용돼 생활하는 어린이들. 북한 인권은 세계 최악의 수준이다.

11년 만에 북한 인권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북한 내 인권 상황 개선을 목표로 하는 법이 여야 합의로 제정하게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통일시대에 대비하려면 이 법을 토대로 실효성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시행해나가야 한다.


북한의 인권 상황은 여전히 암울하다. 한국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의 상황도 북한 인권법이 첫 발의된 2005년의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과 그 멍에는 유엔과 국제사회가 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 준비와 동포애를 논할 자격이 한국인들에게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유엔은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출범시켜 북한 인권에 대한 유엔 차원의 첫 공식 보고서를 2014년 발간했다. 조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마이클 커비는 최근에 있었던 보고서 발간 2주년 기념행사에서 “북한 인권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고 개탄했다. 그래서인지 유엔은 북한 인권 문제를 안전보장이사회 공식 의제로 채택했으며,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인권 가해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 인권 상황이 암울하고 개선 전망이 어두울수록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더욱 강화돼야 한다. 그러한 활동의 중심은 유엔과 국제사회보다는 한국 정부와 한국의 시민사회여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여전히 주변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11년간 국회가 북한 인권법을 통과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회는 ‘북한 인권 문제의 방관자’라는 비판을 국제사회로부터 받아왔다.

북한 인권법을 두고 여야 간에 첨예한 대립을 보여온 국회는 최근 여야 원내대표와 여야 당대표의 합의로 어렵게 법을 통과시키게 됐다. 북한 인권법에 대한 여야 지도부의 합의가 이루어진 배경은 유엔과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노력에 대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그리고 개성공단 전면 폐쇄라는 대북 위기 상황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국민의당이 출범해 북한 인권법에 ‘전향적 입장’을 밝힌 것도 여야 지도부의 태도 변화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인권법안의 여야 합의와 국회 통과는 북한 인권 단체의 피나는 노력과 유엔의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북한 인권법 제정에 대한 여야 지도부의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도 국회는 법안의 취지를 설명하는 문장의 표현 문제로 통과를 지연시켰다. 법안 내용에 대한 전체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뒤에는 선거구 획정 문제와 테러방지법 제정에 대한 갈등의 여파로 야당이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통과를 지연시켰다. 국회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진정한 고민과 관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북한 인권법은 그동안 다른 쟁점 법안에 대한 여야 간 타협의 수단이거나 전제조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정치권의 지루한 정쟁의 도구로 존재했을 뿐이다. 북한 인권법 통과에 대해 ‘여야 합의에 의한 통과’라는 의미는 부여할 수 있지만, 한국 국회가 정치적 타협의 결과로 마지못해 제정했다는 꼬리표는 없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최초 발의 내용은 대부분 포함돼

북한 인권법의 주요 내용은 여야의 정치적 타협과 협상의 결과물이지만, 2005년 최초 발의된 초기 법안의 주요 내용은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법안의 제정 목적과 취지는 여야가 대립하고 줄다리기를 해왔지만 ‘북한 인권 증진 노력과 함께 남북관계 발전, 한반도 평화 정착 노력을 해야 한다’는 문구로 의견 접근을 이뤘다.

새누리당의 입장은 ‘국가는 북한 인권 증진 노력과 함께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한 방향으로도 노력하여야 한다’였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은 ‘국가는 북한 인권 증진 노력을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 노력과 함께 추진하여야 한다’는 문구를 주장했다. 얼핏 보기에는 같은 내용이지만, ‘함께’라는 단어의 위치에 따라서 강조점에 차이가 있다.

여당은 북한 인권 증진 노력을 강조한 반면에, 야당은 한반도 평화 정착과 남북관계 발전을 강조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차이는 ‘함께’라는 단어의 위치 때문에 나타난 것이지만, 실상은 여당과 야당의 북한 인권법을 바라보는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야당은 여전히 북한 인권법이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정착에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9월 30일 미국인권재단(HRF)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북한 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 지난해 9월 30일 미국인권재단(HRF)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북한 인권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북한 인권법 제정 과정에서 가장 큰 대립을 보였던 것은 북한인권재단과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이었다.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와 북한인권대사, 남북 인권 대화와 국제적 협력 등에는 이견이 거의 없었다. 북한인권재단은 북한 인권 관련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 특히 대북 전단 살포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 가능성을 빌미로 야당이 반대했으나, 야당의 반대 사유를 불식시킴으로써 결국 합의에 이르렀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여야는 물론이고 정부 부처와 북한 인권 관계자들 상호 간에 이견이 가장 많았던 것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과 운영이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대해서 야당은 북한의 반발을 초래해 남북관계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였으나 통일부에 설치하는 것으로 양보했다.

주무부처 정하는 것으로 다투기도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2003년 설립된 (사)북한인권정보센터의 부설기관으로 현재 운영되고 있다. 국내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전원을 대상으로 인권 피해조사(통일부 위탁사업)를 실시해 인권 피해 사건 5만6000여 건과 관련 인물 3만1000여 명의 기록을 축적했다. 9만여 건의 사건 및 인물 기록은 데이터베이스(NKDB 통합인권 DB)에 축적돼 관리되고 있다.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 통일부는 그동안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자신들의 소속으로 설립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서로 대립하는 양상을 보였다. 여당은 법무부에 설립하는 것을 추진했다. 일부 북한 인권 단체와 관계자들은 통일 후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주장하며 여당안을 지지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일부 북한 인권 관련 인사들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마지막까지 굽히지 않았다.

2015년 5월 5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열린 ‘북한 인권법 제정 촉구를 위한 화요집회’에서 최초의 북한 인권법 발의자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 여야 합의로 북한 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사진> 2015년 5월 5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열린 ‘북한 인권법 제정 촉구를 위한 화요집회’에서 최초의 북한 인권법 발의자인 김문수 전 경기지사가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쌓여 여야 합의로 북한 인권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설립 자체에 대한 논란이 처음에는 강했으나, 야당이 설립에 동의한 이후에는 그 주무부처를 어디로 할 것인가의 문제가 더욱 부각되었다. 국가기관과 정부 부처 간의 적극적인 유치 경쟁이 가세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과 책임, 조사범위와 방법, 자료의 활용 목적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논의는 생략된 채 주무부처 결정을 위한 힘겨루기에 집중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지난 20여 년간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역할을 수행하면서 9만여 건의 관련 기록을 축적한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축적된 자료의 활용과 역할에 대한 논의까지 생략된 것은 향후 설립될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안정적인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 실현의 밑거름

북한 인권법은 지난한 과정을 거치면서 11년의 시간이 경과된 시점에 햇빛을 보게 되었다. 논의 과정의 논란과 대립,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안의 제정은 북한 인권 정책과 인권 개선 활동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통일부는 주무부처로서 조직과 인력, 재원을 확보할 것이고, 북한인권재단은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을 진행하는 국내외 단체와 유엔 및 각국 정부와 협력관계를 구축해 적극적인 인권 개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통일부에 설립하되 법무부와 정기적으로 자료를 공유할 것이다. 현재까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운영하면서 인권 피해조사 책임을 맡고 있는 북한인권정보센터와 협력해 인권 가해자인 북한 당국에 대한 경고와 압력, 그리고 향후 처벌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인권 피해에 대한 예방적 기능을 갖게 될 것이다.

북한 인권법은 여야 합의로 제정되고, 인권자문위원회 이사 구성에 여야가 동수로 참여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여야 정치권은 북한 인권법의 제정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또한 정부 부처는 물론이고 국가인권위원회와 북한 인권 관련 단체, 그리고 유엔 서울인권사무소 등 유관기관은 법안에 의하여 설립되는 기관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할 것이다.

북한 인권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북한 인권 문제는 유엔과 국제사회가 주도하고 한국 정부와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이 호응하면서 북한 당국을 압박하는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북한의 반발은 당분간 격하게 표출되겠지만 유엔과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개선 노력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 인권 개선 활동은 ‘북한 주민의 생존과 삶의 질’ 개선을 추구하는 것이며, 이것은 통일 실현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북한 인권법 통과를 계기로 정부는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좀 더 적극적이고 실효적인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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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영남대 정치학박사. 북한인권시민연합 집행위원, 북한이탈주민후원민간단체협의회 연구자문위원, 통일부 하나원 정책자문위원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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