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문제 해결의 모범 사례, 이란을 다시 본다
“바이바이 북한,
이제는 너만 남았어”
이란은 왜 핵협상 타결을 결심했는가.
그리고 지금 어떤 경제적 이득을 누리고 있고, 앞으로 누릴 것인가.
이란의 핵 프로그램 포기가 한국과 북한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란 핵 문제가 이란과 P5+1(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의 오랜 협상 끝에 지난해 7월 14일 타결되었다. 어려움에 직면해 있던 이란 경제가 탄탄대로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됐다는 점에서 이란 핵 문제는 북핵 문제 해결에 큰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란은 미국 덕에 원자력 개발을 시작했다. 1957년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사용 내에서의 연구 협력’ 차원에서 이뤄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원자력 평화 프로그램(Atoms for Peace Program)’에 합의하면서 핵에 접근할 수 있었다. 팔레비 이란 국왕은 핵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위해 1959년에 국제원자력위원회(IAEA), 1968년에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했다.
1974년에는 IAEA와 ‘포괄안전조치협정’을 체결하고 이집트와 함께 유엔총회에서 ‘중동 비핵지대화 창출’을 제안했다. 1977년 7월에는 이스라엘과 군사협정을 맺었다. 이스라엘의 지원으로 사거리 150~200㎞에 달하는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이스라엘에 석유를 제공했다. 미국-이란-이스라엘의 이러한 우호관계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종식되었다.
1980년대 이라크와 7년전쟁에 들어간 이란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구소련, 중국, 북한의 기술을 지원받아 1985년 3월 구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이라크의 키르쿠크와 바그다드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샤하브 미사일 개발에 나섰다. 1989년 파키스탄과 방위협정을 맺고 탈냉전기로 접어든 1990년대 초 전방위 핵주기 구축 프로그램에 도전했다.
그러자 미국 등 서방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의 위협론이 등장했다. 2002년 미국에서는 반(反)호메이니 인사들로 구성된 ‘이란국민저항협의회’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이란, 이라크,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국제사회로부터 집요하게 핵시설 검증 요구를 받게 된 이란은 ‘평화적이고 자족적인 핵 프로그램 시설’임을 주장했으나 나탄즈, 아락, 이스파한에 있는 비밀 핵시설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었다.
이란은 대통령 직속의 ‘이란원자력기구’로 하여금 핵주기 완성을 위한 연구개발을 계속하도록 했다. 2008년에는 오미드 인공위성을 발사해 대륙간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했다.
美, 이란 제재법 제정 이후 더욱 강한 법안 제정
이란의 핵 개발에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레짐으로 대응했다. 레짐을 만든 국제사회는 ‘사탕과 채찍’을 들었다.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정밀 타격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선제공격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그에 대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맞설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는데, 그 와중에 이스라엘 정보부가 이란 핵 과학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도 참여한 6차례의 유엔 안보리에서 이란 제재 결의안이 채택되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일방주의와 일극체제를 견제하려 했으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정책에는 동조한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란에 대한 수출 통제와 금융 제재, 이란 주요 인사의 여행 제한과 금지, 이란발 화물의 검색 강화식으로 제재 수위를 높여갔다.
미국은 더 강력하게 나갔다. 독자적으로 이란제재법(1996년)을 만들고, 이어 포괄적 이란제재법(2010년), 행정명령 13590호(2011년), 국방수권법(2012년) 등을 만들거나 적용해 제재 수위를 높여갔다.
협상도 진행되었다. 초기에는 IAEA를 대표한 유럽연합(EU) 3국(영국, 프랑스, 독일)이 이란과 협상해 테헤란 합동선언문(2003년), IAEA 추가 프로토콜 서명(2003년), 파리합의문(2004년)을 내놓았다. 2006년부터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이란과 협상했다.
이러한 압박에 굴복해 이란은 핵 개발을 포기하고 개방을 선택했다. 경제를 도약시킬 계기를 만들고 안보 불안도 해소한 것이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는 불만을 토로했으나 두 나라가 이란을 공격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핵협상 타결 후 6개월이 지난 1월 16일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가 풀리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바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방문했다. 그리고 시진핑 중국 주석이 이란을 방문해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한국도 이란과의 관계 개선에 나섰다. 8000여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이란은 경제 부흥을 맞을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핵 개발과 확산 방지를 둘러싼 갈등에서 핵 대신 ‘빵’을 선택한 이란과 대척점에 있는 나라가 북한이다. 핵 · 미사일 문제에 대한 이란과 북한의 대응 방식은 매우 상이하다. 무모한 핵 도발로 국제사회의 제재와 고립을 자초한 북한의 김정은이 이란의 선택을 ‘바로’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정상률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HK교수
한국외국어대 정치학 박사(중동학), 세종연구소 및 트루먼연구소 객원연구위원, KBS 객원해설위원 역임.
저서 <이슬람국가론과 지대국가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