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6일 오전, 경기 의정부시 시설관리공단 내 대회의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 속에서 말쑥한 옷차림의 남녀 40여 명이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의정부시협의회 자문위원인 이평순 여론수렴분과위원장이 “통일에 대한 시민들의 여론이 어떤가” 질문하자 참석자들이 “통일에 대한 절실함과 간절함을 갖고 있는 전후세대와 다르다”, “젊은 세대는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토론 말미에 이르자 이들은 한 장년 여성의 말에 따라 형형색색 종이에 뭔가를 적었다.
강은희 의정부시협의회 회장.
“의정부시 시민을 대표하는 자문위원으로서 통일의 염원을 담은 메시지를 종이에 적어보세요.”
이날 의정부시협의회가 마련한 ‘2018년 2분기 정기총회 및 통일의견 수렴’ 행사 중 하나인 평화통일 플래카드였다. 메시지 작성을 주문한 장년 여성은 강은희 의정부시협의회 회장(69). 행사 참가자들은 “의정부시민들의 다양한 통일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왜 남북한이 통일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미군부대 주둔 지역으로 전쟁, 자유, 평화라는 공존의 역사를 가지고 있던 의정부시에 ‘평화통일 파도’가 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대학, 지방자치단체 등 각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평화통일의 관점에서 통일 미래세대를 육성하고 나아가 통일운동을 성찰하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지역사회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업’도 그런 움직임 중 하나다. 지난해 10월 17일 열린 ‘지역사회 오피니언 리더 초청 좌담회 및 업무협약식’은 관내 15개 시민단체 임직원을 초청해 ▲통일공감 좌담회 ▲‘지역 통일운동 기반과 민주평통 도약’ 강연 ▲합동토론 ▲시민사회단체와의 업무협약식 등이 이뤄졌다. 특히 업무협약식은 ‘시민 속으로, 시민과 더불어, 시민과 하나 되어’ 활동전략을 기반으로 한 현장 중심의 통일활동을 시민사회단체와 전개하기 위한 행정 조처다. 의정부시협의회가 올 5월까지 업무협약을 체결한 사회시민단체는 총 16개에 달한다.
“지역사회 오피니언 리더를 초청해 지역 통일운동의 방향을 논의하고 의정부시협의회가 통일 논의 거버넌스를 선도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누구나 의정부시를 찾아 평화통일을 염원하면서 통일을 실천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민주평통과 의정부시협의회가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통일의 주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행사를 기획한 강은희 회장의 말이다. “의정부시를 ‘평화통일 운동의 발신지’로 만들겠다”는 게 이 회장의 야심이다.
의정부시협의회가 청소년 대상으로 진행한 통일현장 견학.
의정부시 전입 탈북민 정착 지원 ‘첫 뜰 맞이’
의정부시 소재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토크쇼는 탈북 청소년이 강사가 되어 강단에 오른다. 강연은 질의응답을 주고받는 형태로 이뤄진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통일 현장 답사도 추진 중이다. 올해 계획 답사지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이 회장은 “블라디보스토크는 의정부시 청년들이 국제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라고 강조한다.
“한류 열풍의 영향인지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고 해요. 블라디보스토크 지역 학교와 의정부시 소재 학교가 결연을 하면 교환학생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의정부시협의회가 중심이 돼서 의정부시 청년, 러시아 청년과 고려인 청년들이 교류할 수 있도록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에요.”
현재 의정부시는 ‘의정부학’이란 이름의 평생학습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의정부시협의회는 의정부학과의 협업을 통해 이 과정을 수료한 이들이 통일운동 리더가 되어 의정부시 시민을 대상으로 한 통일교육을 주도할 수 있도록 조정자 역할을 한다.
“평화통일의 관점에서 본 한반도와 의정부시를 공부하다 보면 요즘같이 급변하는 시대에 어떻게 통일운동을 전개할 것인지, 의정부시의 특성이 무엇이고 앞으로 의정부시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등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시민들이 찾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의정부시로 전입한 탈북민 정착 지원사업의 일환인 ‘첫 뜰 맞이’ 사업. 탈북민 가정이 지낼 입주공간을 자문위원들이 직접 청소하고, 이들에게 생활용품을 지원한다.
‘먼저 온 통일’인 탈북자 지원사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의정부시로 전입한 탈북민 정착 지원사업의 일환인 ‘첫 뜰 맞이’다. 탈북민 가정이 지낼 입주공간을 자문위원들이 직접 청소하고, 이들에게 생활용품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북한이탈주민 23명(올 5월 기준)이 지원을 받았다. 최백운 위원장을 중심으로 이뤄진 탈북민지원분과의 활약도 돋보인다. 산행, 토론, 여행 등 탈북민과 매월 정기모임을 가지며 이들의 남한 사회 적응을 돕고, 애로사항과 갈등 요인을 파악해 해결책을 모색한다.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사업 덕분일까. 의정부시협의회는 지난해 경기도가 주관한 ‘탈북민 정착민 수기 공모’ 대회에서 대상을 비롯한 5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강 회장은 “단순히 지원금을 전달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탈북민 지원사업과 달리 ‘첫 뜰 맞이’는 의정부시협의회 내 ‘문화’까지 만드는 시너지 효과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