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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남북 정상회담 수행원으로 활동한 후 지난 10년간 전국 각지를 순회하며 평화통일에 대해 강연을 해온 배기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고문. 美, 임기 내 비핵화 달성
北, 11월까지 핵 시설 폐기

불신과 분노, 서로 익숙하지 않은 의사소통 방식이 증폭돼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2일 개최 예정이었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상호 유리한 이유들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다만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의 비핵화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것이다. 과거에도 미국과 북한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걸쳐 비핵화 협상을 여러 번 했지만, 앞으로 하게 될 비핵화 협상은 과거의 협상과는 매우 다른 환경 속에서 행해지는 매우 다른 성격의 비핵화 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과거의 협상이 북한이 핵 개발을 진행하는 동안에 행해진 비핵화 협상이라면 이제부터의 비핵화 협상은 북한이 핵무력 완성(핵보유)을 선언한 이후에 행해지는 협상이라는 차이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은 2017년 11월 29일 장거리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화성-15형’ 시험발사 후 스스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물론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이 완벽하게 구현되기 직전에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기 때문에 북한의 억지력이 미국에 대해서 아직 불완전하다고 할 수 있지만, 두 가지 점에서 북한은 미국에 대해 최소한의 억지력을 가질 수 있게 됐다.

하나는 미국 본토는 아니지만 최소한 하와이까지는 사거리에 들어오는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경우 북한의 핵 보복으로 막대한 미국인의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2018년 1월 13일 하와이에서 북한미사일이 날아온다는 오경보가 작동해 하와이 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사건이 발생했다.이는 미국 정부가 간과할 수 없는 수준의 핵 능력을 북한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점이다. 지금은 그 직전에 핵 개발을 멈췄지만, 미국의 위협 수준에 따라 얼마든지 다시 속도를 내서 본토 타격 핵 능력을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비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의 북한은 과거와는 달리 미국에 대해 억지력을 확보한 이후 비핵화 협상에 임하고 있다. 이렇게 억지력을 확보한 이후의 비핵화 협상 전략은 핵 개발 진행 중의 협상 전략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과거와 다른 성격의 비핵화 협상

핵무력이 완성되기 이전의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비가역적이고 완벽한 안전보장책을 제공 받을 때까지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억지력이 없기 때문에 언제라도 미국으로부터 군사적인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핵 개발이 완성되기 전에 핵을 포기해 후일 정권이 전복된 이라크와 리비아의 사례가 그 위험성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한편으로는 안전보장과 교환할 수 있는 비핵화를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핵 무력을 완성하고자 하는 유인이 존재한다. 만족할 만한 안전보장책이 확보되지 않으면,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하기 어렵다. 미국은 이것을 속임수라고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안보 정책이다. 이 상황에서 결국 미국과 북한은 상호 불신하는 악순환의 고리로 들어가게 된다.

반면 북한의 핵무력이 완성돼 억지력이 확보된 상태에서의 비핵화 협상은 몰래 숨기고 뒤에서 뭔가를 하면서 하는 협상이 아니라 있는 것을 주고받는 협상이 된다. 비가역적이고 확실한 안전보장책이 오면 핵을 내어주고, 오지 않으면 그냥 보유하고 있으면 되는 협상이다.

따라서 북한이 투명하게 속임수를 쓰지 않을 것을 확인하는 것에 방점이 찍히기보다는 비가역적이고 확실한 안전보장책을 미국이 마련할 수 있느냐에 더 방점이 찍히는 협상이 된다. 북한은 속임수를 쓸 필요 없이 핵이 있다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도 문제가 없다. 오히려 미국이 확실한 안전보장책을 마련해야 하는, 훨씬 부담이 되는 비핵화 협상으로 협상의 성격이 변한다. 자칫 정상 간 합의의 이행을 잘못하다가는 북한에 핵 보유의 빌미를 주게 되는 위험한 협상이다.

한편 북한도 진정성 있게 비핵화 협상을 하게 되는 요인 역시 존재한다. 김정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마저 속임수를 쓰는 것으로 밝혀지면 앞으로 그 누구도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정은 위원장도 억울하게 사기꾼이라는 누명을 쓰지 않기 위해, 즉 북한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공인받기 위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검증단을 구성하고자 할 것이다.

5월 24일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행사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기자단을 초치한 것은 이러한 국제적 공인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다. 북한이 이러한 협상 전략을 통해 궁극적으로 핵과 안전보장을 교환하게 되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도 풀리면서 안전보장과 경제 건설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병진정책을 재가동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병진 2.0’으로 전환해 핵만 붙들고 사는 북한이 아니라 안전하고 잘사는 북한을 만드는 김정은 시대를 열 수 있는 것이다.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은 역설적으로 핵 보유 상황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2018년 11월 美 중간선거, 북·미 협상 분기점

둘째, 이번 비핵화 협상은 아마도 정상회담에서부터 문제를 풀어나간다는 점이 과거 협상과 다른 또 하나의 특이점이 될 것이다. 과거에는 실무진이 신중에 신중을 기해 서로 속지 않는 디테일에 관한 협상을 피곤하게 해오다가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협상이 중단되곤 했다. 미국의 정상들은 실무진이 완성품을 만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정권이 교체되거나 북한을 고립시키는 전략으로 전환하곤 했다.

반면에 향후 있을 비핵화 협상은 정상이 먼저 완성품의 그림을 합의하고, 실무진은 정해진 시간 내에 그 완성품을 실제로 만들어내야만 하는 숙제를 떠안게 될 것이다. 정상이 먼저 합의를 해버리면 그 합의가 파행됐을 때의 정치적 코스트는 엄청나게 커진다.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에서 아마추어같이 협상을 했다는 비난에 안팎으로 시달리게 되고, 정치적 생명도 그만큼 단축된다.

따라서 실무진이 숙제를 제대로 못 하거나 안 하면 정상이 수시로 개입해 야단치고 해결해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결국은 시한 내에 완성품을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상회담에 임하면서 미국은 과거와 달리 최단시간 내에 비핵화를 이루는 합의를 하고자 할 것이고, 북한은 가장 확실한 안전보장책을 얻는 합의를 하고자 할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최단시간 비핵화는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내에 두 단계 정도로 나눠 비핵화를 달성하려는 전략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위험이 확실히 극복되는 시점은 2018년 11월 중간선거의 승리이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면 탄핵의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들고,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완주할 수 있어서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을 믿고 임기 말까지 가는 비핵화 시간표를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양원을 장악하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은 급속도로 힘이 빠지고, 그 순간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 이행 능력에 의구심을 갖게 될 것이다. 그 의구심만큼 북한도 합의 이행에 더욱 신중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미국의 국내 정치 시간표를 고려할 때 비핵화 첫 단계는 2018년 11월이 될 것이고, 그때까지 북한은 핵시설 폐기 등의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를 보여줘 노벨 평화상을 포함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자본을 늘려주고 그 반대급부로 최소한 종전선언과 미국의 몇 가지 적대적 관계 청산 조치를 받아내는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11월이 무사히 지나가면 2020년 트럼프 대통령 임기 말에 맞춰 북·미는 핵무기를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수교, 경제 건설 환경 조성 등을 교환하는 협상의 종결을 선언하게 될 것이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북한으로서는 그 이상 더 좋은 여건은 없다.

비가역적 안전보장 vs 비가역적 비핵화

이상의 분석을 고려할 때 북한이나 미국이나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서로 원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도출해낼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높다. 북한은 비가역적인 안전보장을 원할 것이고, 미국도 완전한 비가역적인 비핵화를 원할 것이다. 둘이 합의된 시간표 안에서 교환이 성사된다면 동북아시아의 냉전 구조가 해체돼 우리의 국내외 사정도 냉전적 구도가 아닌 ‘정상화’의 길로 가게 된다. 다만 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서로 불신의 골이 워낙 깊기 때문에 상호 배려하는 형태의 협상이라기보다는 상호 견제하고 때로는 매우 호전적인 언사가 교환될 수 있는 협상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깜짝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깜짝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그러한 불신과 분노, 서로 익숙하지 않은 의사소통 방식이 증폭돼 5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2일로 예정됐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했었지만,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전과는 다른 상호 유리한 이유들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은 매우 높다.

재개의 가능성을 살리기 위해서 북한은 냉전 시대의 유물 같은 호전적 소통 방식에서 벗어나 정상국가의 소통 방식을 채택해야 한다. 북한이 정상국가화를 추구한다면 정상국가의 방식에 따라 전략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분노와 실망 등의 표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사람들은 냉정하게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표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비핵화를 위한 시간도 흘러가고 있다

이 근 이 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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