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제복풍의 재킷과 미니스커트,굽 높은 하이힐과 귀걸이를 착용하고 현란한 무대 매너를 선보여 ‘북한판 소녀시대’란 별명을 얻은 모란봉악단(왼쪽). 김정은 시대의 인기가요들은 경쾌하고 빠른 분위기의 곡들이다(아래).
2012년 10월 29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열린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창립 공연에 모란봉전자악단(모란봉악단)이 무대에 올랐다. 단원 11명은 해군 제복풍의 재킷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차림이었다. 이 공연 이후 모란봉악단은 ‘북한판 소녀시대’란 별명을 얻었다.
모란봉악단의 모습을 담은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의 보도를 접한 중국 누리꾼들이 국내 걸그룹 ‘소녀시대’가 2009년 무대에 선보였던 마린룩 의상과 비슷하다며 이 같은 별명을 붙여준 것이다.이날 모란봉악단 단원들은 의상 외에도 굽 높은 하이힐과 귀걸이를 착용하고 현란한 무대 매너를 선보여‘모란봉악단은 사회주의 미풍양속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세간의 평을 확인시켰다./p>
“1980~1990년대 대표적인 대중음악 단체인 보천보전자악단과 달리 모란봉악단은 단순한 절가 형태의 대중가요에서 탈피해 미국식 팝음악에서 볼 수 있는 음악적 요소와 퍼포먼스 요소를 받아들여 새로운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강조하는 ‘세계적추세’에 걸맞은 정상국가로서 동시대성을 확보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북한에서 가장 ‘핫’하다는 모란봉악단에 대한 국립국악원 천현식(46) 학예연구사의 평가다. 모란봉악단은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지시해 2012년 초 결성된 북한 내 최고 악단이다..
북한에서 음악은 곧 정치다. 북한에서 노래를 만들고 보급하는 권한은 문화성과 노동당 선전선동부에 있다. 특히 노동부 선전선동부는 당의 정책 방향과 시대의 요구에 맞춰 각 예술기관과 공연기관의 창작을 관리하고 심의를 거쳐 음악을 주민에게 보급하는 최종 기관이다.
천현식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그런데 천 학예연구사는 “북한의대중가요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특히 모란봉악단을 보면 요즘 달라진 북한의 대중가요를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10월 29일 공연에서 모란봉악단은 일렉트로닉(전자)기타, 전자드럼,전자바이올린, 신시사이저 등을 단원 11명이 연주하면서 ‘조선로동당만세’, ‘결전의 길로 진군’, ‘또 진군우리의 행군길’, ‘장군님을 닮으리’,‘어머니의 목소리’ 등의 노래를 부르며 70분간 공연했다.
“김정은 집권 시대 이전 대중음악은 인민들이 쉽게부를 수 있는 간단한 노래인 ‘절가’ 형식의 가요 위주로 공연했어요. 좁은 음역 안에서 비슷한 선율이 계속 반복되죠. 멜로디 진행과 도약이 아주 단순해 전체적으로 단조로운 느낌이에요. 반면 김정은 집권 이후 등 장한 모란봉악단은 절가 형태의 간단한 노래에 변화를 줘 다양한 형식의 성악곡, 기악곡, 성악과 기악이 결합된 곡을 선보입니다. 지금 북한에선 절가를 화려하게 편곡하거나 리듬을 강조한 다이내믹한 음악이 유행하고 있답니다.”
김정은 집권 이후 세련된 北 대중가요
북한 대중가요의 변화는 무대 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집단주의를 지향하는 북한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은 개인의 즉흥 연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2013년 모란봉악단은 공연 중에 갑자기 악기별로 ‘애드리브(즉흥연주)’를 짧게 선보였다. 서양식 밴드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을 북한의 인기가수가 연출한 것이다.
“2014년 5월 19일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 참가자들이 모인 축하공연에서 모란봉악단이 북한의 ‘애국가’ 를 불렀어요. 사실 ‘애국가’는 남한에서도 대중가요와 동떨어진 성격의 노래잖아요. 그런데 모란봉악단은 애국가를 새롭게 편곡해 완전히 다른 노래로 만들었어요. 심지어 서구식 창법인 알앤비(R&B) 창법까지 곁들여서 말이죠.”
물론 김정은 체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후에도 ‘김정은과 함께하겠다’는 내용의 대중가요들이 창작돼 보급되고 있다. ‘가리라 백두산으로’,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 ‘사회주의 전진가’ 등이 김정은 시대에 창작된 노래들이다.
보해 정상국가에 위치하려는 의도사 뚜렷하게 나타난다.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율동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화려해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노래 중심으로 이뤄지던 공연에서 노래와 안무가 함께 어우러지는가무의 비중이 높아졌다. 지난 2월 삼지연관현악단의 남한 공연에서 보았듯 ‘달려가자 미래로’를 부르면서 선보였던 검은색 핫팬츠에 붉은색 민소매를 입고 공연하는 모습은 이제 북한에서도 익숙한 풍경이 됐다
“김정은 시대의 인기가요들은 빠르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들이에요. 나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며 북한 주민들의 감성에 맞는 곡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단숨에’,‘백두에 말발굽소리’, ‘가리라 백두산으로’, ‘철령 아래 사과바다’, ‘바다만풍가’, ‘배우자’ 등이 대표적이죠. 우리가 보기에는 촌스럽다고 할 수 있지만, 김정은 집권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중가요가 세련돼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