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남북 학생회담운동 주역인 홍정국, 김중기, 황건 씨(왼쪽부터) 등 신· 구세대가 5월 15일 남북 학생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남북 학생회담운동 주역인 홍정국, 김중기, 황건 씨(왼쪽부터) 등 신· 구세대가 5월 15일 남북 학생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4·19 정신으로 통일운동 전개”
“선배들 뜻 받들어 역사 쓸 터”

4·27 남북 정상회담 개최 이후 남북 평화 무드가 조성되면서 남북 학생회담운동의 물꼬도 트이고 있다.서울대 학생들이 ‘6·15 남북 공동선언 지지·이행을 위한 범서울대인 연석회의’를 만들어 남북 학생회담을준비하고 있는 것. 남북 학생회담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60년 4·19혁명 후 당시서울대 민족통일연맹 조직위원장이던 황건 씨가 처음 제안했고, 1988년엔 김중기 전대협 조국통일위원장이남북 학생회담을 추진했다. 당시 남북 학생회담을 추진했던 이들은 오늘날 남북 학생운동을 어떻게바라보고 있을까. 동시에 어떤 한반도 평화통일을 그리고 있을까. 황건, 김중기, 홍정국 씨 등 신·구세대가5월 15일 남북 학생회담운동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 남북 학생회담을 제안했던 계기를 들려달라.

황건 | 1960년 4·19혁명 직후 민주당 정부와 일부 학생들이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했다. 하지만 상당 수 학생들은 4·19혁명은 3·15 부정선거에 항의한 단순한 의거가 아닌 이승만 정권을 뒷받침하는 반민족, 반민주 독재체제에 대한 총체적 항거로 보았다. 나아가 4·19혁명은 민족 통일을 이루는 그날까지 진행해야 할 현재진행형이며 미완의 혁명으로 여겼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학생들이 통일운동을 이끌어야 한다는 국민 여론이 거셌다.

김중기 | 19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남북이 올림픽을 공동 개최해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자는 여론이나왔다. 1988년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해 서울대 학생들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이 만나 판문점회의, 체육대회 등을 개최하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남한 학생들은 한라산에서 판문점까지, 북한 학생들은 백두산에서 판문점까지를 순례하는 국토순례 대장정도 기획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떨어졌지만, 다행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에서 이 제안을 계승해 북측에 남북 학생회담을 제안했고, 북한 조선학생위원회 측에서 “좋다”는 답변이왔다. 그래서 남북 학생회담 날짜를 6월 민주항쟁을 기념해 6월 10일로 정하고 추진했지만, 노태우 정부의 방해로 무산됐다.

홍정국 | 서울대 관악캠퍼스 공과대학에 위치한 식당 앞에 ‘6·15 공동선언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2001년에 세운 것이다. 선배들로부터 학생들이 기금을 모아 탑을 세우면 학교 측에서 없애려 하는 등 승강이가 이어지는 바람에 세 번이나 기념탑을 다시 세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학교 안에 이런 기념탑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선배들이 속한 모임에서 6·15기념행사를 한다고 해 참석했다가 이것이 인연이 되어 6·15 남북 공동선언 지지 이행을 위한 범서울대인 연석회의(6·15 연석회의) 집행위원장을 맡게 됐다.

당시 통일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은 어땠나.

황건 | 1960년만 해도 통일을 꺼내는 건 금기사항이었지만,4·19혁명 이후 사회분위기가 달라졌다.특히 4·19혁명 이후학생들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사회가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고, 대학생들이 지식인으로서 존경받았다.우리는 4·19혁명 1주년을 맞아 남북 학생회담을 제안할 계획이었다.

통일 논의를 일거에 대중운동으로 확산하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었다. 지방의 대학들도 이 운동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보내왔다. 여론도 긍정적이었다.그해 5월 서울대가 남북 학생회담을 제안했고, 전국 18개 대학과 1개 고교가 서울대의 제안을 지지하는 결의문을 발표했다. 곧바로 정부가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 북한 조선학생위원회는 평양에서 남북 학생회담을 개최하자며 우리의 신변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발표했다. 5월 13일 서울에서 남북 학생회담 환영 및 통일 촉진 궐기대회를 열어 종로에서 서울역까지 행진 했다.

당시 우리가 외친 구호가 그 유명한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다. 우리가 걸어가면 시민들이 박수치며 크게 환호했다. 이념 논쟁은 피하자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져 남북 학생친선사절단, 학생기자단, 학생체육단, 학생예술단 교환 등을 안건으로 한 회담을 제안했다. 판문점에서 통일축제를 개최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다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고, 전국 수백 명의 학생들이 옥살이를 했다. 나도 두 번이나 교도소를 다녀왔다. 첫 남북 학생회담은 이렇게 좌절됐다.

황건

황건
대한민국 역사에는항상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남북학생운동을 주도할 때우리는 평화통일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되는것이다.”

김중기 | 6월 민주항쟁으로 이뤄낸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이후, 민주화 세력엔 패배 정서가 강하게 맴돌았다. 그 영향 때문인지 1988년 3월 진행된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400여 표 차이로 아깝게 떨어졌다. 대선에 대한 패배 책임을 학생운동 세력에 물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민중운동 세력이 침체기를 겪던 1988년 5월, 고려대 안암캠퍼스에서 광주투쟁 선포식 연합집회가 열렸다. 전대협이 주관한 집회였는데, 10만 명 남짓 학생들이 모였다. 이 집회를 계기로 민주화운동과 남북 통일운동을 연결하자는 여론이 강하게 대두됐고, 남북 학생운동의 불씨가 다시금 타올랐다.

김중기

김중기
“앞으로 남북한이 만나 교류한다면 서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많이깨질 듯하다.무엇보다 남북통일은 바람직한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홍정국 |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사업을 추진했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잡음이 있긴 했지만 남북 선수단 공동 입장 땐 청년들도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올해 안으로 서울대 학생들이 김일성종합대를 방문해 3박 4일간 두 학교 학생들이 함께 참여하는 일본 문제 토론회, 평양 문화유적 답사 등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3월 개강하자 학우들이 남북 학생운동 사업에 대해 흥미를 보였다. ‘정말 북한에 가볼 수 있을까’, ‘통일이 곧 될까’라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100명에 달하는 학우들이 집행부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요즘 교내에서 100명의 학생들이 모여 뭔가를 한다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일이다. 예상 밖의 반응에 학생회에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홍정국

홍정국
“앞으로 젊은 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선배들이 이룬 역사에 흠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소망인 통일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겠다.”

현재 남북 학생운동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

홍정국 | 지난 5월 6일 서울대 총학생회가 ‘서울대·김일성종합대학 교류 추진위원회’에 합류했고, 5월 17일 추진위원회 결성식을 가졌다. 올해 상반기 안으로 통일부에 방북 승인을 신청할 예정이다. 승인을 받으면 서울대와 김일성종합대학이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토론 사안을 놓고 논의할 계획이다.

황건 | 교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진행하면 어떨까. 대면토론이 아닌 가상토론을 하거나, 남북 청년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IT 문화를 논의하는 것도 좋겠다. 남한의 청년들은 북한의 문화를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기는데, 이러한 문화 간극을 좁히는 방안도 고민하면 좋겠다. 남북 학생운동은 서울대와 김일성종합대 간의 교류로 그칠 것이 아니라 전국의 대학들이 참여해 교류의 폭을 넓히기를 바란다. 젊은 사람들 중 선각자가 나와 통일 문화를 획기적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김중기 | 이번 평창동계올림픽과 남북 정상회담이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큰 교육이 된 듯하다. 통일뿐만 아니라 북한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앞으로 남북한이 만나 교류한다면 서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많이 깨질 듯하다. 무엇보다 남북통일은 바람직한 통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4·27 남북 정상회담 후 발표한 판문점 선언에 대한 소감은.

황건 | 정부가 주도적으로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이루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감회가 새롭다. 통일은 그저 이산가족이 만나기 위해서, 경제협력을 하기 위해서,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로 여행가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통일을 이뤄야 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구한말부터 일본에 휘둘려 약소국가로 전락하고, 강대국에 휘둘려 해방되고, 외국에 의해 분단된 지난한 역사에서 벗어나 자주국가로 거듭나자는 데 있다. 통일을 이뤄야 하는 이유를 진지하게 생각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역사에는 항상 학생들이 있었다. 학생들이 남북 학생운동을 주도할 때 우리는 평화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김중기 | 지금 한반도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통일이 되면 남북이 지금과 같은 대결이나 반목의 구도에서 벗어나 평화공동체를 이루게 될 것이다. 남북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주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실로 오랜만에 기대감에 부풀었다. 남북한 두 지도자가 평화통일을 향한 국민의 염원을 실현해주기를 바란다.

홍정국 | 6·15 공동선언 기념탑은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서울대 학우들이 모은 성금으로 벽돌을 구입해 쌓은 것이다. 학교 측에서 기념탑을 치우려고 할 때 학우들이 기념탑 앞에 천막을 치고 지켜냈다.

서울대에는 이 탑을 세울 수 있도록 성원해준 학우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이것을 수차례 지켜온 선배들이 있고, 이 뜻을 이어받아 남북 학생운동 사업을 추진하는 추진위원회가 있다. 이 사업은 신중하게 진행하려 한다. 반드시 해낼 것이다. 오늘 선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시 한 번 통일과 학생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다. 앞으로 젊은 세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선배들이 이룬 역사에 흠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소망인 통일을 이뤄내기 위해 노력하겠다.

민주평통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황건 | 민주평통이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대한민국 통일 여론을 모으는 국내 최대 조직이다. 평화통일 여론을 범국민적으로 확산하는 데 적극 나서달라.

김중기 | 2만여 명의 자문위원이 국내외에 포진해 있는 것이 민주평통의 강점이다. 이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 한반도 평화통일의 당위성을 세계 곳곳에 널리 알려주기를 부탁드린다.

홍정국 | 청소년과 청년들이 북한에 대해 바로 알 수 있게끔 도와줄 수 있는 곳이 민주평통이다. 청년들의 입맛에 맞는 통일교육을 제공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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