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많은 가족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분단 가족이다. 우리 부모는 일제강점기와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 분할,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 6·25전쟁 발발, 정전협정에 의한 분단 등 한반도 근현대사를 힘겹게 살아낸 세대이며, 북한에 고향을 둔 소위 ‘월남민’이자 ‘실향민’이다. 흔히 말하듯 ‘자유를 찾아 월남’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어릴 적 추석과 설날이면 으레 임진각을 찾아 망배단에서 북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부모의 모습은 또렷이 내 뇌리에 남아 있다. 아버지는 임종 때 “고향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6·25전쟁 전 월남할 때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아들을 향해 흰 손수건을 흔들던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남아 있는 고향을 내내 그리워하셨다.
반면 어머니는 평소에도 임종 때도 고향과 관련해 단 한 마디도 없으셨다. 맥아더와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해병대로 참전해 몸을 다친 사실을 영웅담으로 날마다 밥상머리에서 읊어대던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전쟁 이야기도 거의 입에 담지 않으셨다. 가끔씩 동네 여성분들과 모여 행여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내용은 주로 미군과 한국군에 의한 여성 강간 사건들이었다. 북한에서 학교 선생님을 하면서 할 수 없이 동원됐다는 체제찬양대의 활동은 임종 시 알게 된 어머니의 1급 비밀이었다.
부모를 모두 소련군 경비대와 미군 폭격기에 잃고 어린 동생들을 이끌고 월남한 어머니는 나이와 본적지를 바꿔가며 남한 땅에 정착했고, 가부장제와 군사주의에 찌든 가족사를 힘겹게 온몸으로 써내려가야 했다. 당시 우리가 살던 서울 변두리 동네는 ‘월남민’들로 북적였기 때문에 우리 또래들은 북한 방언에 익숙했으며, 팔다리를 잃은 소위 ‘상이용사’들의 밤낮 없는 폭력으로 온 동네가 패싸움, 가정폭력, 애 우는 소리, 그릇 깨지는 소리로 점철됐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리·석·음’의 정치 : 전쟁과 분단
분단정권은 각자의 모습으로 통일을 그렸고, 그것은 ‘북진통일’, ‘흡수통일’, ‘적화통일’ 등등으로 불려졌다. 일각에서는 남북 모두 거부감을 가진 ‘통일’이란 용어를 더 이상 쓰지 말자고 한다. 통일 방법을 둘러싼 소모적 논쟁보다 평화 공존 방법을 모색하는 게 훨씬 더 평화적이고 현실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통일’이든 ‘평화’든 여성의 입장에서는 애초 한반도 분할과 분단정권 수립, 6·25전쟁, 정전협정, 최근의 평화협상 등 중요한 한반도 역사를 규정짓는 정책 결정에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개입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한반도의 절반을 이루는 여성들이 그저 피해자, 희생자, 남성들의 피보호자로 자리매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가부 장제와 군사주의에 기반한 강고한 남성 카르텔에 의해 전쟁과 분단을 통해 ‘절반의 실패’를 그대로 재현한 ‘어·리·석·음의 정치’가 곧 전쟁과 분단으로 특징지어지는 한반도 현대사이다.
박완서 선생은 6·25전쟁이 ‘여자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딴 세상’이며, 이를 발생시킨 건 ‘벌레들의 짓’이 아니었을까 의문을 품는다(박완서, ‘그 남자네 집’). 도저히 여성의 감수성과 판단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전쟁. 그 전쟁을 결정하는 주체에 여성은 단 한 명도 포함돼 있지 않았다.
주지하다시피 8·15는 ‘광복절’인 동시에 ‘분단절’이었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의 전리품이었던 한반도는 38선으로 두 동강이 나고 말았고, 1948년 분단정권 수립, 1950년 6·25전쟁에 이어 1953년에는 잠시 전쟁이 멈춰지고 휴전선이 그어졌다. 이후 분단 유지 세력들은 상대방을 ‘적’으로 몰고, 악마화를 통한 공포를 이용해 분단정권의 공고화를 이뤄왔다.
미국은 한미동맹의 이름 아래 ‘적으로부터의 방어’를 명분으로 훌륭한 군수품 소비지인 대한민국에 70년이 넘도록 주둔하고 있다. 소위 ‘위안부’로 알려진 일본군 성노예 문제와 유사한 형태로서, 분단된 이 땅에서는 ‘미군 위안부’ 문제가 존재한다. 분단사에서 여성들은 기지촌 여성으로, 민간인 집단학살의 여성 피해자로, ‘5종 군보급품’으로 취급됐던 ‘한국군 위안부’로, 이산가족의 여성 가장으로, 소위 ‘미망인’으로, 전쟁고아로, 입양아로, 디아스포라로 지금도 우리 이웃에 수없이 존재한다.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 세우기
한반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여전히 힘겹고 팍팍하고 불안한 삶, ‘절반의 실패’가 계속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남성들에 의해 짜인 판, 대부분의 공적 영역이 남성에 의해 장악돼 있는 정치를 여성과 동등하게 나누는 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전쟁처럼 여성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영역을 남성들만의 판단과 관용에 맡겨둘 순 없다. 남성 중심, 국가 중심, 그리고 무차별 살상무기체계에 의존하는 ‘군사안보’ 개념을 깨야 한다.
4안김정애 평화여성회 대표는 “남성 중심, 국가 중심, 그리고 무차별 살상무기체계에 의존하는 ‘군사안보‘ 개념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유엔에서도 ‘시민안보(UNDP, 1999)’ 개념 사용을 권고하고 있으며, 여성이 평화와 안보 분야에 더 이상 피해자나 희생자가 아니라 적극적 갈등 해결자, 평화협상 주체자로 나설 것을 주장하고 있다(UNSCR 1325).
이것을 한반도에 적용시키면 한반도의 ‘여성안보’는 분단폭력으로부터의 자유, 경제적 빈곤으로부터의 자유,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에 대한 모든 폭력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하며, 이는 그동안 현저히 기울었던 운동장을 바로 세우는 작업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국방, 외교, 통일, 국정원 등 한반도 평화통일외교 영역의 장차관과 고위직 공무원, 각종 위원회 등에 여성이 남성과 동수로 참여하는 여성의 주류화(Mainstreaming)를 뜻한다.
한반도의 평화를 바라는 국내외 평화여성들은 1980년대 이후 무력통일, 흡수통일 등 폭력적인 방법이 아닌 평화를 전제로 한 평화통일 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으며, 이는 가부장제와 군사주의 극복, 여성에 대한 폭력 배제 등을 염두에 둔 여성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다.
‘서로 증오하고 적대관계를 상승시켜서는 안 되며, 생명을 잉태하고 보호하며 양육하는 여성들이 더 열성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통해 진정한 아시아의 평화를 이룩’하는 꿈을 꾸었던 고 이우정, 이이효재, 윤정옥, 고 여연구, 시미즈 스미코 등 국내외 평화여성들은 1991년과 1992년 두 차례에 걸쳐 분단 이후 최초로 판문점을 통과해 서울과 평양에서 만나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을 함께 토론했다.
민주평통 강원지역회의와 여성분과위원회는 여성평화걷기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1월 15일부터 19일까지 강원도 평창을 시작으로 고성 DMZ까지 '2018 평화평창 여성평화걷기’대회를 개최했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이 있었던 2000년대에는 남북 여성들이 금강산, 개성, 평양 등에서 수많은 만남을 통해 정전체제의 중단과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외쳤고, 2008~2012년에는 동북아여성평화회의를 통해 한반도 평화협상에 여성주의 패러다임이 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적대적인 대북정책으로 그 맥은 끊어졌고, 남북 여성의 일회성 만남조차 쉽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분단 70주년이 되던 2015년에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국제평화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북측에서 남측으로 걸어 내려오는 여성평화걷기 행사(Women Cross DMZ)를 진행했고, 2016년과 2017년에도 남측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남측 비무장지대(DMZ) 일대를 걷는 행사가 진행됐다.
올해 2018년 1월 15일부터 19일까지는 평창동계올림픽의 평화적 개최를 위해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평화협정 체결을 주목적으로 하여 ‘2018 평화평창 여성평화걷기’가 진행되었다. 여성평화걷기에서 여성들은 세부적으로 첫째 분단 종식과 남북 평화 공존, 둘째 여성평화걷기 역사 계승, 셋째 여성주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넷째 이산가족 만남, 다섯째 평화 구축 과정에서의 여성의 리더십 확대, 여섯째 남북 여성 함께 걷기의 목적을 내걸었다.
땅과 밥과 김치의 정치학
남성의 손에 의해 재단된 70여 년의 분단사는 기존의 ‘안보’ 개념에 집착했던 남성 중심의 통일 패러다임이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분단의 칼춤’을 걷어치우고, 죽임이 아닌 살림, 전쟁이 아닌 평화, 상호확증파괴가 아닌 상생의 여성주의적 패러다임이라는 ‘새로운 판’이 필요하며, 이데올로기가 아닌 생존을 위해서 남북의 여성들은 ‘땅과 밥과 김치의 정치학’을 요구한다. DMZ를 개방해 평화의 땅이 되게 하라! 천민자본주의의 극복을 위해서도 유기농법에 기반을 둔 생태계 복원, 자연주의적 생태정치학, 즉 인간과 자연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한반도의 평화 공존을 여성의 손으로 만들어갈 것이다.
“여성 없이 평화 없다(No Women, No Peace). 평화공존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