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군협의회
‘12시, 다시 하나가 되는 시간을 위하여…’
징하게 울리는 담양의 통일운동
담양군협의회는 통일 기원 창작시 공모전을 12년째 해왔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식기류를 팔아서 북한이탈주민과 다문화가정을 돕는 생활밀착형 통일 사업도 펼쳐왔다. 담양군의 각종 행사에도 적극 참여해 군(郡)과의 남다른 유대관계를 자랑하기도 한다.
“12시, 모두 하나가 되는 시간/ 주변은 어둡지만 마음은 평화로운 시간// 3시, 하나에서 둘로/ 분리되기 시작하는 시간/ 주변은 조용하지만 마음은 멀어지는 시간// 6시, 서로 등 돌리는 시간/ 주변은 맑지만 마음은 적대적인 시간// 하지만, 시침들은 다시 12시에 하나가 된다/ 우리도 영원히 12시이기를….”
지난해 전남 담양군협의회가 개최한 통일 창작시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담양 창평고교 2학년 민동환
군의 작품이다. 남과 북이 지금은 비록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는 6시의 시침과 분침이 되어 서로 등을 돌리고 있는 듯 보여도 언젠가는 12시의 시계 바늘처럼 하나로 합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그려낸 시다.
이같이 깊은 의미를 담아낸 작품을 고등학생의 손에서 만들어지게 한 담양군협의회의 평화통일 창작시 공모전. 올해로 벌써 12년째를 맞아 이제는 담양군의 대표적 통일운동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매년 공모전을 열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작품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고 한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을 진정으로 바라는 아이들의 생각이 어른들보다도 진정성 있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라는 것이 한만순 협의회장의 말이다.
창작시 공모전은 차세대 주역인 초· 중·고생들에게 통일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드높임으로써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마련하는 행사. 하지만 행사를 진행하는데 어려움도 없지 않다. 다른 단체가 주최하는 청소년 대상 공모전도 많은 상황에서 평화통일이라는 주제로 특화한 공모전에 학생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게 쉽지만은 않다. 매년 공문 발송, 교육청 방문, 학교 측의 협조 요청 등으로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애를 써야 한다.
“이렇게 공을 들여 두 달 넘게 준비해서 치르는 행사인 만큼 학생들이 보내준 작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대상감으로 여겨진다”고 장선영 행정실장은 말한다.
곤충 먹이 개발해 신지식인 된 북한이탈주민도 배출
담양 하면 제일 먼저 대나무가 연상된다. 죽녹원과 메타쉐쿼이어 가로수길, 소쇄원과 명옥헌 등의 문화유산과 가사문학의 산실인 송강정, 면앙정, 식영정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한 곳이다.
2015년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는 담양군협의회 역시 한만순 협의회장, 김미라 간사, 신점례 여성분과위원장 등 여성위원들이 발 벗고 홍보에 나섰다. 이런 적극적인 활동 덕분에 협의회와 군 간의 유대관계도 특별히 돈독하다고.
담양에는 산업단지가 많지 않아 다른 시·군에 비해 북한이탈주민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조건이 열악한 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담양에 온 지 6, 7년 만에 곤충 먹이를 개발해 지난해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북한이탈주민도 있어 눈길을 끈다.
담양군협의회가 자랑하는 또 다른 사업으로는 2014년에 처음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돕기 그릇 바자회’를 꼽을 수 있다. 담양군이 주관해 여성단체 행사를 열 때 군과 협력해 가정에서 잘 쓰지 않는 식기류를 모아 판매해 그 수익금을 북한이탈주민과 다문화가정에 기탁하자는 취지로 기획했는데, 행사 시작 전에 준비해놓은 그릇이 매진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지난해에는 일정이 맞지 않아 한 해 걸렀지만 올해 다시 행사를 벌여 담양군의 대표 사업으로 각인시킬 계획이다.
담양군협의회의 통일 사업은 한만순 협의회장이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아기자기함을 발휘한 ‘생활밀착형’이라는 특징이 있다. 한 협의회장은 1980년 새마을부녀회군 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죽세공예품 판매장과 대나무박물관을 병행한 민간 죽물회관 전시·판매장을 운영하는 등 가정과 사업, 사회 활동을 병행해왔다. 2006년 담양군의회 5대 의원에 당선한 데 이어 민주평통 자문위원이 되었고, 17기에 협의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기에 이르렀다.
그는 몇 년 전 금강산 여행을 했을 때의 경험을 예로 들며 통일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는다.
“우리 겨레의 명산에 입산하는 데도 까다로운 출입 절차를 밟아야 했던 건 물론이고, 대한민국과는 너무나
다른 북한군과 민간인들의 모습을 보고 ‘하나의 민족이 이렇게 다르게 살아야 하는가, 통일은 꼭 이뤄져야 되겠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우리 민족에게 사뭇 역경의 시간으로 비춰지지만, 우리가 어떻게든 북한을 포용해서 마음을 모아 북한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통일을 이뤄내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