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제재의 대표 ‘미국의 대북 제재법’
중국 움직여 북한 죄는
세컨더리 보이콧의 위력
<사진> 2월 23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의 대북 제재 결의안 관련 논의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대북 제재법은 핵과 미사일 개발, 대량살상무기(WMD) 개발, 인권유린 행위, 자금 세탁, 사치품 수입, 마약 밀매 등에 관련된 인물과 기관·국가, 그리고 이들을 돕는 행위를 의무적으로 제재하게 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국제사회는 전례 없이 강경히 대응하고 있다. 유엔 안보리에서 역대 최강의 제재라는 결의안 2270호가 채택되고, 그와 별도로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이 포함된 대북 제재법을 발효시켰다.
미국 대북 제재법의 정확한 명칭은 ‘북한 제재 이행을 위한 법률(H.R. 757, North Korea Sanctions Enforcement Acts of 2016)’이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는 2015년 2월 대북 제재법(H.R. 757 : North Korea Sanctions Enforcement Acts of 2015)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 법안은 하원에서 계류돼 있다가 북한의 핵실험 이후 신속하게 의회에서 다시 결의해 통과된 것이다.
대북 제재법은 2016년 1월 12일 하원, 2월 10일 상원에서 통과되었다. 그리고 다시 하원 재심을 거치고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2016년 2월 18일 발효되었다. 하원 통과 37일 만의 일이었다. 미 상원은 신속한 법안 처리를 위해 상원에 계류 중이던 자체 법안 S. 2144와 S. 1747을 상정하는 대신 하원 안을 수정·보완해 통과시켰다. 상·하원의 안은 약간의 표현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WMD 확산 등을 이유로 과거부터 제재해와
미국의 대북 제재법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와 함께 당분간 북한의 숨통을 옥죄는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북한 간에 직접적인 교역이나 접촉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미국의 조치는 상징적인 것에 불과할지 몰라도 향후 북한의 대외적 행보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다양한 이유로 북한 제재를 시행해왔다. 미국이 북한을 제재하는 근거는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이유는 대량살상무기(WMD) 확산과 관련된 제재이다. ‘이란, 북한 및 시리아 비확산법’에 근거한 제재나 미사일 관련 제재, 원자력에너지법(Atomic Energy Act of 1954)에 의한 제재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미국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인권 규범의 심각한 위반에 대해 제재를 시행한다. 인권 위반 국가에 대한 제재로는 대외원조법 Section 11(a)에서 규정한 인권 위반국에 대한 지원 금지, Section 502b에서 규정한 안보 관련 지원 금지, 그리고 인신매매(Human Trafficking) 보고서에 규정한 3등급(Tier 3) 국가에 대한 지원 금지, 국제 종교자유법(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Act)에 의거한 제재가 있다.
셋째, 미국은 냉전기까지 해외원조법, 수출입은행법, 그램 수정안(Gramm Amendment) 등에 따라 공산국가에 대한 비인도적 지원이나 국제통화기금(IMF) 자금 지원, 교역을 금지해왔다.
넷째, 북한의 핵실험에 따른 제재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UNSCR) 1540, 1718, 1874, 그리고 가장 최근의 2270호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핵개발 관련 물자의 획득 금지, 사치품 수출 금지, 무기 수출입 금지를 규정했다.
다섯째, 대통령 행정명령에 의한 제재가 있다. 2008년 적성국 교역법(Trading with the Enemy Act)에 의거해 동결된 북한 자산을 계속 동결하고, 북한 선적이나 북한 국적선을 이용한 해운 거래를 금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미국 정부는 특정 이유와 관계없이 외교정책상의 목적이나 수행을 위해 제재를 광범위하게 활용한다.
<사진> 미 공화당 대선주자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플로리다)이 2월 10일 대북 제재 법안 표결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에 복귀했다. 그만큼 미국 의회는 대북 제재법 제정에 열의가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된 대북 제재법 H.R. 757은 북한 핵, 미사일 실험 등과 관련된 문제를 비군사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데 가장 큰 목적을 두고 있다. 대북 제재법의 배경에는 2015년 2월에 발표된 유엔 대북 제재 전문가 패널의 보고서 내용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패널 보고서는 북한이 2006년부터 미국과 유엔의 제재법을 다양한 방법으로 회피하면서 자금 조달을 해왔고 유엔 회원국 중 과반수가 대북 제재와 관련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 미사일 프로그램, 사이버 테러 능력 구축에 필요한 자금 조달의 원천적 봉쇄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핵무기 확산, 불법 무기 거래, 사이버 테러, 인권유린, 집권층의 사치품 구입 등을 돕는 개인과 금융기관 또는 국가 등에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대통령 및 행정부에 권한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대북 제재법은 크게 △ 핵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에 대한 제재 △ 핵·미사일 기술 조달에 대한 제재 △ 여행 제재 △ 사이버 테러 또는 다른 불법행위에 대한 제재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대북 제재 대상 인물, 기관 또는 제3국가 등을 지정하는 데 미국 행정부(특히 재무부와 국무부)와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사진> 2월 11일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위스콘신)이 주례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그는 미국의 대북정책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대북 제재법 제정을 주도했다.
제재 대상 금융기관에 압록강개발은행, 동방은행, 단천상업은행, 조선대성은행, 조선광성무역회사, 조선무역은행, 대동신용은행 등을 적시했다. 또한 미 재무부는 북한을 자금 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강화된 보안기술이 적용된 새로운 화폐를 곧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SEC. 201. (a)(1)(C)(ii)).
그러면서도 이러한 대북 제재로 미국 정부 또는 민간 차원의 각종 인도적 대북 지원 프로그램(식량, 의료지원 등)이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대북 제재법 H.R. 757은 이란 제재법 이후 북한이라는 단일 국가만을 목표로 한 첫 번째 제재법이다. 이 법안은 다자 제재인 안보리 결의안을 보완하는 한편 기존 미국 행정법을 보완·강화해 북한에 대한 실효적 제재 효과를 이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다.
미 의회가 국제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미국은 과거에도 북한에 대해 다양한 이유로 제재를 시행해왔는데, H.R. 757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주로 행정명령에 의존해온 미국 정부의 대북 제재 기조를 바꾸어, 국회 입법 과정을 거친 의회법으로 제정함으로써 더욱 포괄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미 하원을 통과한 대북 제재법에는 광물, 지하자원 수출에 대한 제재조항이 없었지만 상원을 최종 통과한 법안에는 북한이 광물과 지하자원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핵·미사일 개발 등에 사용한다고 명시하면서 석탄 등 광물과 지하자원 수출에 대한 제재도 포함시켰다.
<사진> 성김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가 미국의 대북 제재를 묻는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 의무적(mandatory) 제재와 자유재량적(discretionary) 제재를 구분하고 핵·미사일 개발, WMD 개발, 인권유린 행위, 자금 세탁, 사치품 수입, 마약 밀매 등의 불법행위에 직접적 또는 2차적으로 이를 돕는 인물과 기관, 또는 국가에 대해 기존의 자유재량적 제재를 의무적 제재로 강화했다.
대북 제재법은 대북 제재의 내용이 보강됐다는 점에서도 중요하지만 미국 의회가 국제사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법 제정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재고하도록 압박하는 정치적 목적도 내포하고 있다.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의 기업이나 금융기관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미국이 이란 제재법에 적용한 3자 제재와 매우 유사하지만 대북 제재법은 이란 제재법처럼 포괄적이고 강제적인 조항이 아니라 미국 정부가 조치할 수 있는 재량권을 보장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당분간 제재 국면은 불가피하다. 제재는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게 해야 효과가 있다. 제재 국면하에서 북한의 국면 전환용 도발이 있을 수 있고 그로 말미암아 한반도 안보 상황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제재에 집중할 때다. 당분간 제재에 집중하는 한편 현 상황을 타개할 다른 옵션을 준비하는 복합적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재 공조의 핵은 중국의 협조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물샐틈없는 제재 공조가 성공의 관건이다. 그 열쇠를 쥐고 있는 국가는 바로 중국이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중국은 수많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속에서도 북한이 필요로 하는 석유와 식량 대부분을 공급하는 한편, 북·중 교역을 통해 실질적으로 북한의 생명선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도 중국이 기존의 미온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대북 제재는 성공하기 어렵다.
북한의 장래와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미·중의 동상이몽을 극복하지 않는 한 대북 제재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분간 한국은 중국을 경유한 대북 압박 수단의 총동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과 같은 제재 국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북한이 가장 아파해할 부분에 제재 노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특히 에너지, 금융, 교역 부문의 제재에서 중국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은 제재의 그물망을 더욱 조여서 북한이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게 만드는 데 외교력을 집중해야 한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미국 일리노이대 정치학박사. 한국국제관계연구소·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 세종연구소 안보연구실 실장,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 등 역임. 저서 <한국의 국가전략 2020>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