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기행 통일 여행

제18기 국내지역회의 강원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은 치수능력 증대사업과 함께 트릭아트 벽화, 하늘오름길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마련했다. 댐에 트릭아트 기법으로 그려진 ‘통일로 나가는 문’이 보인다 ‘갈등’과 ‘화해’의 공존
물길 따라 걸으며 평화 염원 흠뻑

지난 1987년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염원 속에 건설됐던 ‘평화의 댐’. 그러나 지난 30여 년 급변했던 정치 환경 탓에 때로는 실체조차 의구심이 들 만큼 의뭉스러운 존재로 여겨지기도 했다. 오랜 세월 깊고 검은 기억 속으로 침잠된 채 잊어졌던 평화의 댐, 평화의 종 그리고 비목공원에 따스한 평화의 훈풍이 불고 있다.

강원도의 겨울은 유난히 매섭다. 일찍부터 찾아온 동장군의 기세에 어깨가 절로 움츠러들던 12월의 초입, 아무도 찾지 않을 것만 같았던 깊고 깊은 산골짜기 아흔아홉 구비 너머 숨겨진 비밀의 화원을 찾았다. 꽃필 화(華), 내 천(川). 물 맑고 산세 수려하기로 치면 강원도 화천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아름답고 고즈넉한 고장이다.

그중에서도 평화의 댐이 자리한 화천읍 동촌리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에 한참이나 어지럼증을 겪고서야 닿을 수 있을 만큼 외딴 곳이어서 휴전선 이남에서는 드물게, 사람 손을 그다지 타지 않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김덕룡 수석부의장이 7월 17일 개최된 광주지역회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60여 개국의 탄피를 수거해 만든 화천 세계평화의 종.

평화의 댐은 태생부터가 한반도 분단의 아픔을 떠안고 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북한이 실시한 제3차 인민경제 7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금강산댐(현재의 임남댐) 건설이 추진되자 우리 정부는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계획에 한강 유역과 서울을 수공하려는 모종의 계략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가상의 시나리오가 탄생시킨 거대한 상징물은 전 국민이 참여한 대규모 기금 모금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됐음에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실체를 목격했다는 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세계 최대 트릭아트 벽화로 기네스북 등재

꽁꽁 얼어붙은 채 잊어졌던 이곳 평화의 댐에 따스한 평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 남북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이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전형적인 군사 고장인 화천의 엄중했던 분위기를 한결 보드랍고 살갑게 만든 것이다.

규모 면에서는 높이 125m, 길이 601m, 총저수량 26억3000만 톤으로 여느 댐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지만, 애초에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계획에 대응하기 위해 황급히 건설된 것이라 실제로 물을 가둬두거나 수력발전을 하는 기능은 없다. 당초 높이 80m, 길이 410m, 최대 저수량 5억9000만 톤 규모로 건설됐지만 2002년 북한이 예고 없이 임남댐의 물을 방류한 이후 2단계 증축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김덕룡 수석부의장이 7월 17일 개최된 광주지역회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고 안보, 평화, 생명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인 국제평화아트파크. 이곳에는 군 폐무기 50점을 활용한 예술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실제로 물을 담수하고 있지 않아 그 전경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2018년 11월 한국수자원공사가 평화의 댐 치수능력 증대사업 완료를 기념해 세계 최대 규모의 트릭아트 벽화인 ‘통일로 나가는 문’을 공개하면서 볼거리가 한층 더 풍성해졌다.

한국수자원공사는 기상이변에 대비해 2012년부터 평화의 댐 하류 사면을 콘크리트로 보강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는데, 이와 더불어 댐 벽에 벽화를 그리고 오토캠핑장과 하늘오름길, 스카이워크 등의 친수시설을 조성해 관광자원으로서의 다양한 면모를 확보한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 평화롭게 흘러내려오는 물줄기가 댐의 벽면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통일로 나가는 문’은 높이 95m, 폭 60m 규모로서 세계에서 가장 큰 트릭아트로 기네스북에까지 이름을 올려 주목받고 있다.

김덕룡 수석부의장이 7월 17일 개최된 광주지역회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세계평화의 종 공원에 조성된 생명의 나무 앞에는 관람객이 남겨놓은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메시지가 붙어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 임남댐을 거쳐 평화의 댐으로 흘러온 물은 화천댐과 파로호로 향한다. 춘천댐까지 굽이쳐 흐르는 북한강의 청정 수원인 파로호는 일제강점기 수력발전을 위해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큰 호수로, 6·25전쟁 당시 중공군 3개 사단을 물리친 곳이라는 의미로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라 이름 붙였다.

댐 위로 올라서면 댐의 양쪽으로 해발 250m 높이의 도로가 개설돼 있다. 강원도 양구와 화천을 잇는 이 도로 아래로는 북한강 상류와 화천댐으로 물을 방류하는 수문이 내려다보인다. 그 멀리 북쪽으로는 가곡 ‘비목’의 탄생지인 해발 1179m의 백암산이 자리하고 있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 깊은 계곡 양지녘에 /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 이름 모를 비목이여 / 먼 고향 초동 친구 / 두고 온 하늘가 / 그리워 마디마디 눈물되어 맺혔네 //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 달빛 타고 흐르는 밤 /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비목이여 /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김덕룡 수석부의장이 7월 17일 개최된 광주지역회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평화의 댐을 시작점으로 해 9곳의 조망점을 연결한 스탬프랠리 코스를 설명해놓은 비목공원의 표지판.

댐의 동쪽 언덕 아래에 조성된 ‘비목공원’은 6·25전쟁 당시 스러져간 무명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해 탄생한 가곡 ‘비목’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다. 국민 가곡 ‘비목’의 가사에는 분단의 아픈 역사 속에 스러져간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담겨 있다.

1960년대 중반 무렵 백암산 계곡 비무장지대에서 근무하던 청년장교 한명희 씨가 잡초가 우거진 숲에서 이끼 낀 무명용사의 돌무덤을 발견하고, 자신과 비슷한 연배에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잃었을 이름 모를 돌무덤의 주인공에 연민을 느껴 ‘비목’의 가사를 떠올리게 됐다는 사연이다. 후일 그의 노랫말에 장일남 씨가 곡을 붙여 ‘비목’이라는 가곡이 탄생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간직한 통일안보 관광지

비목공원 기념탑 옆으로는 철조망을 두른 언덕 중턱으로 녹슨 철모를 얹은 나무 십자가가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어 애잔한 노랫말을 떠올리게 한다. 1996년부터 이곳에서는 매년 6월, 6·25전쟁 당시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선열을 기리는 추모제 겸 비목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6월에는 도솔산전투의 역사적 중요성과 의의를 재조명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도솔산지구 전투 전승행사도 열리니 여름이 시작될 무렵 화천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빼놓지 말고 들러보자.

평화의 댐은 철의 삼각지, 펀치볼 전적비, 고성 통일전망대 등 통일안보 관광지를 잇는 순환코스의 요충지다. 역사적으로는 6·25전쟁 당시 38도선을 각각 3회씩이나 넘나들며 치열한 전투를 이어가던 남북이 중공군의 침공과 유엔군의 재반격기를 거쳐 휴전협상이 교착되기까지 38도선을 두고 격전을 벌였던 현장이기도 하다.

김덕룡 수석부의장이 7월 17일 개최된 광주지역회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평화의 댐 인근에 자리한 물 문화관에는 평화의 댐 건설 배경과 건설 과정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평화의 댐에 건립된 ‘평화의 댐 물문화관’에는 평화의 댐 건립에 얽힌 사연 외에도 분단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화천 지역의 유물과 역사적 배경에 대한 기록들이 함께 소개돼 있다. 평화의 댐에 얽힌 역사적사실을 재미있는 퀴즈를 통해 풀어보는 ‘OX 퀴즈 코너’, 인근 청정지역의 경관을 입체적인 영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오면영상관’ 등도 ‘평화의 댐 물문화관’의 볼거리다.

‘비목공원’, ‘평화의 종’, ‘국제평화아트파크’ 등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크고 작은 볼거리와 유서 깊은 유적지가 남아 있는 것도 이곳을 방문해야 할 이유다. 평화의 댐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국제평화아트파크’는 전쟁의 상징인 폐무기를 예술품으로 재구성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설치미술 공원이다. 작품에는 실제 수명을 다해 폐기 처분된 탱크와 자주포, 대공포, 전투기 등이 재료로 사용됐다.

평화의 댐 상부에 조성된 ‘세계평화의 종’은 분쟁의 역사를 겪었거나 분쟁이 진행 중인 60여 개국에서 수거한 탄피 1만 관을 녹여 만든 것이어서 그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높이 5m, 폭 3m 크기인 평화의 종 주변으로 는 세계 각국의 인사들이 보내온 평화의 의미를 담고있는 종과 메시지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남북 화해 무드 걸맞은 축제 분위기 만끽

화천은 해산자작나무 숲, 수달이 살고 있을 만큼 청정한 원시림이 밀집한 ‘비수구미 계곡’, 수달과 산양, 사향노루, 매 등 멸종위기의 1급 4종과 삵, 담비, 새호리기, 가는돌고기, 돌상어 등 멸종위기 2급 5종 등이 서식하고 있는 야생동물 서식지 ‘양의대습지’, DMZ 생태탐방로 등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생태보존지역이 인접해 휴식과 힐링을 즐기기에도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냉수성 어종인 천연기념물 열목어를 비롯한 각종 어류가 서식하는 중부전선의 최전방 ‘천미계곡’은 휴전선을 넘나드는 벌들이 무공해 꿀을 생산해내는 토종벌 보호지역으로도 유명하다.

김덕룡 수석부의장이 7월 17일 개최된 광주지역회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평화의 댐 아래쪽에는 비목공원이 조성돼 여행자들의 나들이를 뜻깊게 해준다.

계절마다 이어지는 축제도 볼거리다. 매년 2월, 설날 전에 열리는 ‘동계민속예술축제’는 사라져가는 민속놀이 문화를 계승해 발전시키기 위한 것으로, 금강산 가는 길목에 위치한 양구군 양구읍 서천 빙상 특설링크에서 개최돼 남북 화해 무드에 걸맞은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5월에는 지역 특산물인 곰취의 우수성을 알리는 곰취축제가, 8월에는 또다른 특산물인 토마토를 테마로 한 다양한 전시와 공연,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화천 토마토축제가 열린다.

붕어섬 주변 화천강에 독특한 모양의 쪽배를 띄워 청정지역 화천의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낭만을 만끽하게 하는 7월의 붕어섬·물의나라 쪽배축제도 볼거리다. 지금 당장 뜨거운 평화의 해빙 무드를 만끽하고 싶다면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도 아랑곳없이 즐거운 축제의 한마당이 펼쳐지는 화천으로 달려가보자. 빙판 위에서 즐기는 얼음낚시와 눈썰매, 봅슬레이 등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는 1월의 산천어 축제가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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