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2016년 8월 12일 열린 북한 평양 대동강 맥주 축전에서 행사 보조원이 맥주를 채운 잔을 배달하고 있다(왼쪽). 북한에서 많이 마시는 대표적인 병맥주는 대동강맥주다. 2018년 10월 9일 한일 공동선언 20주년 기념행사에서 연설 중인 아베 총리. 日 비핵 3원칙 계승으로
비핵화·평화지대 기초 마련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워싱턴 백악관에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한 2018년 3월 8일(현지시간)은 일본 외교가 충격에 빠진 날이었다. 일본은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남북대화가 지속되고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을 점치면서도 이는 예비적 협의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일본은 미국을 통해 상황을 조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도 미·일동맹론자들은 여전히 비판적 여론의 배후지가 되고 있으며, 세계적 반(反)트럼프 정서에 편승해 한국 외교를 고립시키려 하고 있다. 비핵화 프로세스가 장기적인 과정임을 고려하면, 비핵화 속도가 지체되거나 그로 말미암아 북·미관계가 이완되는 순간 미·일동맹론자들의 반트럼프 캠페인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 프로세스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본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관여시키는 것은 이러한 구도를 깨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북·일 수교가 될 것이다.

평화 프로세스에서의 일본의 역할

그러나 북·일관계는 납치 일본인 문제로 난관에 빠져있다. 아베 총리는 납치 일본인 문제를 대북 외교에서 최우선 해결 과제로 놓고, 납치 일본인 문제의 해결 없이는 국교 정상화도 없다는 원칙을 세워놓았다. 더군다나 납치 일본인이 모두 살아 돌아오는 것을 문제 해결의 목표로 설정해놓았다.

이를 위해 압박 일변도의 정책이 일본의 대북 외교 기조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던 아베 총리의 태도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변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대화를 해야겠다는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북·미 정상회담 직후 다양한 수준의 북·일 당국자들이 회담을 거듭하고 있다.

북·일 국교 정상화는 남북의 화해·협력 및 한일관계 발전과 더불어 동북아 평화를 보증하는 세 기둥이다. 이 세 가지 양자관계는 동북아시아 평화 구축의 핵심 과제이다. 이 사실을 1998년의 한일 공동선언을 계기로 시작된 동아시아 화해·협력 프로세스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98년에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가 채택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은 일본이 과거사에 반성과 사죄를 표명하고 한국이 미래 지향의 관계 발전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돼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시점을 옮기는 데 현재 이룩한 성과를 서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부분이다. 일본은 한국이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일본이 이룬 전후의 평화적 발전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이 평화헌법하에서 전수방위와 비핵 3원칙을 견지하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비핵 3원칙은 1967년 사토에이시쿠 일본총리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라고 선언한 것을 말한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임을 확인했다. 공동선언의 후반부에서는 한일 양국이 군축과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에 함께 노력할 것을 확인하고 있어서, 이때의 평화가 비핵·평화의 가치임을 알 수 있다.

당초 아베 총리는 한일 공동선언을 인색하게 평가했었다. 2018년 10월 9일 아베 총리가 도쿄에서 개최된 한일 공동선언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이 선언의 의미를 높이 평가한 것은 올해 초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변화의 배경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있다.

한편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반핵·평화운동을 해왔던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자는 움직임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 구상은 1996년 피스 데포의 우메바야시 히로미치(梅林宏道)가 처음 발표한 것이다. 우메바야시는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평화 프로세스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에 일본이 적극 참여할 것을 주장하면서 동북아 비핵무기지대화 구상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내용은 일본의 비핵 3원칙을 모델로 남북한과 일본의 3국이 비핵지대화 조약을 체결하고, 이들 역내 비핵 3개국에 대해 미국, 러시아, 중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는 ‘소극적 안전’을 보증하는 의정서에 서명하는 3+3의 방식으로 동북아시아에 비핵무기지대를 창설하자는 구상이다.

남·북·일의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 한일 공동선언에서 한국과 일본은 이미 비핵·평화의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2018년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고 있다. 이에 더해 북·일 국교 정상화의 원칙을 확인하면서 북한의 핵문제에서의 국제법 준수와 미사일 개발 중지를 약속했던 2002년 북·일 공동선언의 정신이 확인되면 남북한과 일본을 구성원으로 하는 동북아시아 비핵무기지대화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한일 공동선언으로 개시된 동북아 평화 프로세스가 20년 만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계기로 재개됐다.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안전 보장을 연결하는 고리가 한일 공동선언이다. 한일 공동선언에서 확인된 일본의 비핵 3원칙을 계승하는 데에서 동북아시아 비핵무기 평화지대 구축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불가역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하는 동북아 신(新)안보 질서의 상상력은 그 성과 위에 마련될 수 있다. 이는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의 미래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 과거사 문제 극복에 나서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박 경 석 남 기 정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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