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한반도 문제 ‘당사자 해결 원칙’ 존중
대러시아 실용적 자주외교 필요

한반도 주변 4강 중 한국인들에게 가장 편견과 몰이해가 심한 나라가 바로 러시아다. 이는 과거 냉전시대에 형성된 ‘소련 공산주의 체제=악의 제국’이라는 이미지와 강고한 반공주의 교육에 더해 1991년 구소련 체제의 붕괴 이후 국가 분열과 경제적 추락, 사회적 혼란상을 보인 이 나라의 객관적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현대 러시아의 부활 이후에도 지속되는 반러(反露)의식 또는 러시아를 과소평가하는 태도는 미국과 유럽이라는 ‘서구의 창’을 통해 러시아를 평가하는 몰주체적 인식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한반도가 잃어버린 기회의 창 ‘러시아’

사실 러시아는 주변 4강 중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장래의 통일한국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다. 1990년대 6자회담 때부터 최근 북핵 위기 국면 때까지 러시아는 자국의 관여 기회를 확보하면서도 기본적으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을 존중하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유럽에서 태평양까지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영토가 퍼져 있는 러시아는 국력을 전적으로 투사하기 힘든 극동지역에서 국제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 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지역의 2대 강국인 중국 및 일본과의 협력과 갈등 사이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평화적인 한반도와 통일한국이 오히려 자신의 경쟁자인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일정한 견제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본다.

러시아에 대한 한국 특유의 실용적 자주외교가 절실하다. 중견국 또는 약소국은 자신의 힘으로 국제관계를 좌우할 수 없기 때문에 자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현실적 판단 위에서 주변 이해 당사국들의 협력과 긴장 관계의 틈새를 적절하게 활용할 전략을 세워야 한다. 한국은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아니다. 러시아가 한국에, 한반도에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이 나라를 평가하고 접근해야 한다.

이 의장은 “아무리 좋은 합의를 내놓는다 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바로 폐기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라는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8년 11월 14일(현지시간) 아세안(ASEAN) 관련 회의 참석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샹그릴라호텔 아잘리아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과 푸틴대통령 간 정상회담은 이번이 네 번째로, 2018년 6월 이후 5개월 만이다.

과거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취한 구소련 및 러시아에 대한 적극적 관여정책은 이후 정부들의 단기적 안목에 따른 정책 변경으로 지속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에 따라 한국에 대한 러시아 측의 실망도 컸다. 그동안 러시아는 한국이 국제관계에서 ‘잃어버린 기회의 창’에 가까웠다.

한편 ‘한미동맹’, ‘북방 3각 관계’ 대 ‘남방 3각 관계’의 대결이라는 고식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전략적 상상력을 해방시키면 한국 및 한반도의 입지가 불리하지 않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 경제에 대한 봉쇄 조치를 취했으나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에 대한 경제 봉쇄를 지속하고 있는 EU의 중심 국가인 독일은 근래 러시아에서 활발한 경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상황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이 강조되는 상황에서도 ‘한국의 이익’을 고려해 미국 주도의 일방적 국제정치 구도에 휘말리지 않는 지혜와 논리를 펼쳐야 하는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관련 러시아의 역할을 고려할 때 남·북·러 3각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 직후부터 남북한 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결사업, 시베리아 가스의 한국 도입 등이 합의된 바 있다. 이명박 정권 이후 중단된 이런 협력 사업이 2017년 9월 문재인 대통령의 ‘신북방정책’ 선언으로 다시 추진 동력을 얻었다.

9-브리지(철도, 가스, 조선, 항만, 전력, 농업, 수산, 일자리, 북극항로)로 명명된 경협 폭의 확대는 2012년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연방정부가 천명한 ‘신동방정책’과 접점을 모색할 수 있다. 신동방정책에 따라 러시아는 동북아의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인도 등과 경제·외교적 협력을 강화하는 아시아·태평양 중시정책을 추구한다. 한국은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한 극동 및 시베리아 지역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고자 하는 러시아 연방정부의 적극적 의지와 투자 정책과 접점을 마련할 좋은 기회가 온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북방외교·경협 추진해야

2017년 6월 문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양국 간 무역과 투자 협력에 대한 높은 관심도를 반영한다. 당시 서울에서 개최된 ‘한·러 경제과학기술공동위원회’에 이어 2018년 11월 포항에서 성황리에 열린 ‘제1차 한·러 지방 협력포럼’ 등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 봉쇄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경협 전망이 부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7년 한 해에만 170만 톤의 액화천연가스가 ‘사할린-2 가스전’에서 한국으로 공급됐으며, 2018년 상반기 양국 무역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해 118억 달러에 이른다. 향후 양국 간 경제협력의 유망 분야는 러시아가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연료 및 에너지 분야, 금융 인프라 분야, 그리고 블라디보스토크 자유항을 비롯한 극동지역의 선도개발구역 프로젝트 등을 들 수 있다.

향후 남북관계의 진전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따라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와 한반도의 경협은 훨씬 더 큰 규모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은 북방외교와 경제협력 분야에서 중·장기적 전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박 경 석 김 창 진
성공회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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