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칼럼

가지 않은 길

2018년을 마무리하고 2019년 새해를 시작하는 지금,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되뇌어본다. 숨 가쁘게 달려온 만큼 우리가 선택해온 그 길이 과연 옳은 길이었는지 한 번쯤 되짚어보면서 말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수백 번, 수천 번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때마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을 갖기도 하고, 반대로 자신이 선택한 길에 애착을 동시에 갖기도 한다.

시인 프로스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먼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시 속 화자는 자신이 선택한 길이 많은 사람이 간 길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읊조린다.

지난 한 해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담담히 선택해온 그 모든 결정이 지금의 한반도 평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과 더불어 그때 조금 더 현명한 결정을 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더 멀리 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분명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남북관계가 급진전되면서 남북의 정상은 한 해 동안 무려 세 번이나 만났다. 6·25전쟁 이래로 북한의 주적이었던 미국의 대통령과 북한의 지도자가 처음으로 만난 것 또한 괄목할만한 성과다. 거기에 역사상 가장 진일보한 군사 합의를 담고 있다는 ‘9·19 군사분야 합의서’부터 남북 간 산림 협력과 방역 협력 합의, 철도 협력을 위한 공동 조사 등 굵직한 성과들이 빼곡하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남북 정상이 바삐 만나 합의한 판문점 선언은 실행 과정에서 여러 번의 마찰로 지지부진하게 이행되고 있으며, 야당의 반대로 국회 비준을 얻어내지도 못했다. 평양선언에 명기돼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방문 또한 북·미 간의 교섭이 교착상태에 머물게 되면서 당장은 어려워 보인다.

거기에 국내외 곳곳에 포진해 있는 평화 회의론자들이 남북간의 합의와 노력을 폄하하기도 했으며, 북한에 대한 더 강력한 제재와 압박만이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몇몇의 논리는 중요한 국면마다 남북 화해와 평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럼에도 고비 때마다 우리는 대화와 신뢰를 선택해왔다. 북·미 정상회담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을 때 남북의 정상은 판문점에서 격의 없이 만나 대화했으며, 미국 정계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북한에 대한 불신을 상쇄하기 위해 정부와 전문가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모두가 ‘악마’국가 북한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그래도 평화를 위해서라면 대화밖에는 길이 없다고 외쳤다. 우리가 지금 가려고 하는 한반도 평화는 지금껏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았던 길이었고, 그만큼 두려움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이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꿔놓고 있으며, 결국 평화로운 미래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희옥 김 성 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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