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IN

北 설날 주고받는 인사말
“새해를 축하합니다”

함박눈이 복스럽게도 내린다. 거리에는 온통 흰 눈으로 덮여 도화지 세상이다. 건장하게 생긴 청년의 발걸음이 씩씩하다.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 청년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자 중년의 여인이 웃음 띤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새해를 축하해요. 올해는 꼭 장가도 가야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 할 때 젊은 여성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는다. 그의 손에는 연하장이 들려 있다. 이후 젊은 여성이 내렸다. 엘리베이터 구석에 그가 떨어뜨린 연하장 한 장이 놓여 있다. 이를 집어 든 청년은 얼마 후 젊은 여성이 근무하는 연구소로 찾아간다.

양력설 쇠는 북… 최근 음력설 영향 높아져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만든 드라마 ‘새해를 축하합니다’의 도입부다. 철도기관사 성철과 연구사 지향은 기차 바퀴가 헛도는 것을 방지하는 방안을 연구하게 된다. 서서히 가까워진 두 사람은 연인관계로 발전한다. 드라마 제목인 ‘새해를 축하합니다’는 북한의 새해 인사말에서 따온 것이다.

설날은 남북 통틀어 가장 큰 명절 중 하나다. 북한에서는 설날을 ‘복잡다사한 생활로 가득 찼던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희망을 안고 맞는 새해 첫날 명절인 만큼 특별히 더 잘 준비했으며, 당일에는 조상들과 웃어른들에게 예의를 표시했고, 흥미 있는 다양한 놀이로 즐기는 명절’이라고 평가한다.

김덕룡 수석부의장이 7월 17일 개최된 광주지역회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민속놀이를 하는 어린이.

북한에서 설날은 전통적으로 양력설을 의미한다. 조선민족제일주의가 강조되던 1989년 음력설, 한식, 추석 등이 민족 명절로 지정되면서 음력설의 영향이 높아졌다. 김정일 시기에는 설을 음력설로 지정하고 각종 행사를 진행함에 따라 음력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양력설의 의미가 약해진 것은 아니다.

새해가 되면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조상의 은덕에 감사드리는 한편 집안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한 해의 무사평안을 기원하는 인사를 올린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지만 음식을 장만해 이웃과 정(情)을 나누고, 가족과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행복을 기원한다.

먼 친척을 찾아보지는 못하지만 가까이 있는 친척이나 이웃, 직장 동료들끼리 한 해 동안 돌봐준 것에 감사드리고 서로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고 명절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으며 새해를 축하한다. 차례상도 차린다. 산간 지역이 많은 북한의 지리적 특성상 재료가 다양하지 않다. 배추, 무 등으로 적(炙)을 만들어 차례상에 올린다. 차례상에 올리는 고기는 돼지고기가 대부분이다. 소고기는 흔치 않기 때문이다. 지역에 따라서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이 다른데, 황해도 지역에서는 찰떡을 차례상에 올리기도 한다.

김덕룡 수석부의장이 7월 17일 개최된 광주지역회의에 참석해 격려사를 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새해 첫날인 1월 1일 김일성 광장에서 ‘충성동’ ‘효자동’이라고 적힌 대문을 통과하는 민속놀이를 하고 있다.

유치원생 유순이가 앙증맞은 손으로 축하엽서를 쓴다. ‘새해를 추카합니다.’ 축하장을 오빠에게 건네니 오빠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자상한 오빠의 설명이 이어진다. “‘추’에다 ‘ㄱ’ 받침을 더해야 해. ‘추카’라고 쓰면 안 돼.” 유순이는 오빠의 설명대로 글자를 고친다. 오빠에게 체신소(우체국)에 가서 연하장을 보내자고 조른다.

하지만 오빠는 유순이를 체신소에 데려다줄 여유가 없다. 설날을 맞아 열리는 연날리기 대회에 나가야 하기 때문. 대회 출전용 나비연도 근사하게 만들었다. 유순이를 체신소에 데려다주고 연날리기 대회장에 가기엔 시간이 빠듯하다.

북한에서 제작한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 시리즈물의 ‘동생이 쓴 연하장’의 줄거리다. 새해를 맞아 어린 동생은 새해 연하장을 쓰고 오빠는 연날리기 대회에 참가한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 신년 인사를 나누고 덕담을 건네는 풍습은 남북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풍경도 있다. 남한에서는 연하장 대신 모바일 메신저로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경우가 많은데, 북한에는 아직 손편지가 많다고 한다. 새해 축하 인사를 건네고 연하장을 보내 새해 덕담을 나누는 것이다.

남한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새해 인사말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면 북한에서 가장 많이 하는 새해 인사는 다름 아닌 이 드라마의 제목인 “새해를 축하합니다”이다. 이 밖에도 “새해를 축하한다. 부디 행복하거라”, “새해에도 몸 건강하고 사업에서 큰 성과를 이룩하길 바란다”, “새해에 동무사업과 생활에서 기쁜 일이 많기를 바란다”, “새해를 축하한다. 한번 본때 있게 일해보자”, “새해에는 더욱 건강하기를 바란다”, “새해에는 복 많이 받고 오래오래 살자” 등의 인사를 서로 주고받는다.

민족 정통성 강조하는 행사 다양

북한은 설날이 되면 설 축하 특집방송을 내보낸다. 신년 공동 사설을 발표하고 주요 간부들과 시민들이 평양의 금수산기념궁전을 비롯해 김일성, 김정일 동상을 참배한다. 민족적 전통을 강조하는 북한은 민족의 전통성을 되살리는 행사를 다양하게 벌인다. 북한의 윷은 종지에 담아 던지는 종지윷처럼 크기가 작다. 구역별로 대표선수들이 나와 윷놀이 시합을 벌이는데, 방송으로 중계하기도 한다.

비록 남북의 설날 풍습이 다르지만 한 해 첫날을 맞아 조상께 감사드리고 이웃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마음은 여전히 따뜻하게 흐르고 있다.

이 승 현 전 영 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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