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대담

“남북 주도로 만든 기회
한반도 대전환 성취 기대”

2018년 한반도는 격동의 시기였다. 4·27 판문점 선언, 판문점 북쪽 통일각에서 열린 5·26 남북 정상회담, 싱가포르에서 전격적으로 이뤄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6·12 북·미 정상회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과 평양 공동선언 등 역사적인 일들이 많았다. 민주평통은 백학순 세종연구소장과 정근식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교수를 초청해 ‘신년 특별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은 2018년 12월 5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동 민주평통 사무처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김귀옥 한성대 교수(통일시대 기획편집위원)가 사회를 봤다.

“남북이 스스로 만든 새로운 기회”

김귀옥 | 2018년에는 금방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는데, 분위기가 반전된 것 같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차원에서 2018년을 평가하고 2019년을 전망해달라.

백학순 | 2018년이야말로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 정착, 비핵화를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대전환’의 과정이 시작됐다. 이것이 언제 완결될지 알 수 없지만 2019년에 많은 진전을 이뤄 문재인·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에 한반도 대전환이 거의 완결될 만큼 진전을 이뤘음 하는 바람이다. 2019년 비전은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비핵화를 이뤄내는 동시에 남북관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 이것이 제도화되는 것이라 하겠다.

정근식 | 1988년 서울올림픽 때까지만 해도 남북관계는 극단적인 대결 국면이 이어졌다. 1988년 이후부터 북방정책이 추진됐고, 1998년부터 10년 동안 소위 ‘햇볕정책’이라고 하는 진보적 교류·지원, 2008년 이후 10년간의 보수적 대응이 이어졌다.

즉 10년 주기로 남북관계 정세가 변해온 것이다. 2018년 가장 큰 변화는 한국 사회에서 통일이라는 개념보다 평화라는 개념이 더 크게 부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전쟁의 위기를 겪은 후 평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는 통일이라는 말보다 점진적인 통합, 평화 공존이 국민들과 정치인, 지도자들에게 중요하게 각인된 듯하다. 이러한 기조가 2019년에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2월 5일 서울 중구 장충동 민주평통사무처 회의실에서 김귀옥 한성대 교수(왼쪽)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토론하고 있는 정근식 서울대 교수(가운데), 백학순 세종연구소장.

김귀옥 | ‘10년 주기설’에 의하면 향후 10년간 또다시 변화가 있을 수도 있는데, 남북한 화해의 제도화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얘기해달라.

백학순 | 10년 주기설을 고려하더라도 오늘날 한반도 대전환은 과거와 다르다. 과거 국제사회에서 강대국 관계가 변함에 따라 한반도에 새로운 기회가 생겨났다. 예컨대 노태우 정부가 소련 붕괴로 인한 국제관계 변화를 활용해 남북 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들어낸 협력의 기회는 강대국 관계의 변화에 따라 국제사회가 만든 기회가 아니다. 남북 지도자가 협력해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향후 냉전구조가 해체되고 평화 정착을 이뤄 비핵화를 실현한다면,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치에 근본적인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정근식 | 국민들이 미국의 대북제재와 유엔의 대북제재가 남북관계와 북한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깨닫게 됐다. 이제 남과 북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10년마다 남북관계 정세가 달라지는 일이 반복될 것인가.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는 10년이 될 것인가가 2019년의 정세에 달려 있다.

“민족 동질성 회복으로 정치·군사 문제 추동해야”

김귀옥 | 2018년 한반도 변화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데 우리 정부의 역할이 컸다. 한반도 운전자, 촉진자, 해결사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었다. 앞으로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대전환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가기 위해 풀어야 할 과제는 뭔가. 아울러 시민단체가 해야 할 역할은 뭔가.

정근식 | 정부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있고 지방정부, 비정부기구(NGO), 문화 및 학술단체 등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가 있다. 서로 역할이 다르다. 경제협력은 북·미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으니 어려움이 있지만,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나 적십자를 중심으로 한 인도적 지원은 충분히 가능한 사업들이다.

또 사회·문화 분야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을 통해 넓은 의미에서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확산함으로써 정치·군사 문제를 추동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대학 간 교류를 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는데, 2019년에는 대학은 물론 연구단체 간의 문화적, 학술적 교류가 본격화되기를 기대한다. 지자체의 대북사업도 말 그대로 평화·번영의 맥락에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이관세_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근거 있는 대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향후 20, 30년을 내다보면서 미국, 중국, 북한과의 관계를 주도해가야 한다.”
백학순_세종연구소장

백학순 |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남과 북이 상호 간에 할 수 있는 일을 적극 해나가면서 북한과 미국이 할 수 있는 걸 잘하도록 도와 진전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최근 판문점 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군사적 합의를 통해 이뤄낸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는 6·15 공동선언 이래 역대 정부가 남북관계에서 이룬 성과 중 최대 업적이라 하겠다. 관건은 북·미관계에서 우리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이다. 현재 북·미 협상 과정에서 몇 단계로 무엇을 주고받을 것인가가 제대로 합의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로드맵을 합의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우리 정부의 중재 역할은 적지 않은 한계를 가진다. 따라서 어떻게든 북·미 정상회담,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의 폭과 깊이가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남북관계는 북·미관계 풀어가는 지렛대

김귀옥 | 그동안 세계 질서의 변화는 남북관계의 상황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019년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를 어떻게 진단하나.

정근식 | 동북아 질서를 규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미·중관계다. 2008년 이후 미·중관계가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도 잘 풀어가고, 중국과의 관계도 잘 헤쳐나가야 한다. 또한 남북관계를 어떻게 한중관계, 한미관계에 활용하느냐가 중요한데, 지금으로선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를 풀어가는 중요한 지렛대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느 수준에서 무엇을 주고받느냐에 따라 2019년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백학순 | 2019년 1, 2월 김정은 답방,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만일 이뤄지지 않거나 이뤄지더라도 성과가 크지 않다면, 복잡한 상황이 생겨날 수도 있어 우려스럽다. 2019년 3월 예정된 키리졸브(KB) 지휘소연습을 계기로 남북 간의 적대적인 표현이 쏟아질 수도 있다. 우리 국민은 물론 워싱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2020년 봄 총선을 1년 앞두고 있어 올봄 정치권에서 대북정책을 놓고 당파적 주장을 펼치게 되면 숱한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정치 상황을 가정할 때 국민은 물론 언론, 시민사회, 정책 커뮤니티, 학계가 소용돌이에 빠질 수도 있다. 어떻게 해서든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져 한반도 대전환이 큰 진전을 이루기를 바란다.

김귀옥 | 2019년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관계의 진전을 어떻게 전망하나.

정근식 | 2018년 북한과 미국이 그리는 그림이 서로 달랐다. 한국 국민들이 생각하는 그림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도 2019년의 중요 과제라 하겠다. 체제 보장이라는 말의 함의가 다소 넓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를 합의하기는 쉽지 않다.

백학순 | 언론이 ‘김정은이 비핵화를 약속했다’고 보도해왔다. 이는 정확하지 않다. 정확한 워딩은 ‘김정은이 협상을 통한 비핵화를 약속했다’이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결단을 전략적으로 내렸다고 본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으로선 비핵화 후 겪게 될 취약성에 대비하고자 보호장치를 마련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매 단계마다 상응하는 행동적 조치를 동시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의 말과 행동에 대해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평화 정착과 비핵화를 이루는 로드맵에 아직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북·미 양국이 협조하지 않으면 북한은 결국 수소탄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능력을 가진 나라로 남게 될 것이고, 우리는 그런 북한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국민적 지지 모아야… 민족 발전 위한 대전략 필요

김귀옥 | 2018년 남북관계 진전 상황에 대해 많은 국민이 지지를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를 보낸다. 2018년의 변화가 국민의 의식과 생각에 미친 영향은 어떠한가. 아울러 국민적 공감 확대를 비롯해 지속 가능한 대북정책 추진을 위한 국내적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하나.

백학순 | 2017년 하반기 핵전쟁 위협을 겪은 이후 남북 간 군사분야 신뢰 구축이 성사됐다. 역사적인 업적임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당파적 논란으로 인해 국민들이 의미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정치권, 시민사회, 정책 커뮤니티, 학계뿐만 아니라 국민들과 적극 소통해야 한다. 정부가 어떤 일을 하려 하는지, 한반도 평화와 민족적 화해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설명함으로써 국민들의 지지를 넓혀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소통 과정에서 나라와 민족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근거가 되는 대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향후 20, 30년을 내다보며 남북관계와 국제관계를 정립하고 주도해야 한다.

이관세_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

“사회·문화 분야에서 이산가족 상봉 등을 통해 넓은 의미에서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고 확산함으로써 정치·군사 문제를 추동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정근식_서울대 교수

정근식 | 2018년 상반기만 해도 열광하던 분위기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회의적으로 변했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북·미관계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 정부의 숙제이기도 하다. 한반도 평화·번영의 에너지는 여전하지만, 국민들이 체감하는 변화의 계기가 필요하다.

김귀옥 | 2019년에 바라는 새해 메시지와 새로운 평화시대를 열기 위한 민주평통의 역할에 대해 조언해달라.

백학순 | 6·15 남북 공동선언과 함께 4·12 판문점 선언, 9·19 평양 공동선언은 남북 지도자가 스스로 ‘전쟁과 평화’ 문제를 해결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이런 점을 민주평통 국내외 자문위원과 국민들이 소중하게 생각하고 함께 힘을 모아 한반도 대전환을 이뤄나가면 좋겠다.

정근식 | 2016년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장으로 일할 때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에서 통일 관련 강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해외동포들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특히 남북 협력의 구체적인 상황을 무척 듣고 싶어 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해외동포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참여하고 싶은 열기를 흡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민주평통이 많이 마련해주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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