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길을 묻다

민주평통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이후 ‘평화와 통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대구, 광주, 대전 지역에서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원탁회의를 진행했다. 사진은 대전 평화통일 원탁회의 모습.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방북 때마다 ‘북한이 작심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주력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며 “특히 개혁·개방의 의지가 강해 보였다”고 말했다. “北, 금강산 관광 재개 의지 강해
평화 경제의 시대 열겠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어느새 ‘남북 평화의 기수’가 됐다. 결정적 계기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이지만, 금강산 관광의 재개, 철원평화산업단지 조성, 강원평화특별자치도 설치,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개최 등 준비하고 있는 사업들이 많다. 2019년 평화 경제의 시대를 준비하는 최 지사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서울 중구 충정로를 출발한 자동차는 서울춘천고속도로를 지나자 눈꽃으로 온통 뒤덮인 은빛 산에 다가선다. 자동차는 춘천 시내에 진입하면서 새하얀 대설이 가득했던 풍경화를 바꿔 달았다. 차창 밖 초겨울의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자작나무 숲이 눈부시다. 마치 북유럽 어느 도시인지 모를 2018년 세밑을 앞둔 12월 중순, 잠시 시계추를 돌려보았다.

1년 전인 2017년 12월 19일 최문순(63) 강원지사는 중국 쿤밍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참석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결정된 후부터 줄곧 남북 공동 개최와 북한 참가를 주장해온 최 지사가 북측과 만남이 있은 10여 일만에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발표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도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뚫지 못하고 있었어요. 국제유소년축구대회가 유일하게 남은 연결고리였던 거죠. 사실 정부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가봐야 성과도 없을 것이고 자칫하면 욕만 먹을 위험 부담이 크니 가지 말라’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불확실한 암흑 속으로 걸어가는 듯한 기분이었죠.”

최 지사의 말이다. 그는 어느새 ‘남북 평화의 기수’가 됐다. 결정적 계기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었다. 북한의 극적인 참가와 단일팀 출전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달궜다. 공동집행위원장으로서 올림픽 준비를 진두지휘한 최 지사의 위상이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이어진 강원도의 평화 행보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北, 작심하고 남북관계 개선 주력”

- 2018년 한 해 여러 번 북한을 방문하셨습니다. 무엇이 가장 많이 바뀌었던가요.

“2008년 6월 28일 평양에서 열린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회 참석이 마지막 북한 방문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이 처음으로 미국 성조기를 동평양대극장에 게양하고 미국 국가를 연주해 세계적 화제를 모았지요. 이후로 남북관계 경색으로 10년 동안 북한을 방문하지 못했어요. 역설적으로 그 기간에 북한이 제일 많이 변했습니다. 평양 도시에 미래과학자거리, 려명거리 등 신시가지가 생겼죠. 새 아파트도 많이 들어섰고요.

50층이 넘는 주상복합건물도 많이 보였습니다. 상가가 들어선 백화점도 새로 생겼고요. 평양 시내가 엄청 환해졌고, 관광객을 맞는 평양 시민들의 태도도 과거와 달리 밝아 보였습니다. 중국을 비롯해 대만, 유럽 등지에서 온 관광객이 눈에 띄게 많이 늘었어요. 11개의 택시회사와 5개의 화장품 회사가 생겼고, 택시가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 평양의 정치색이 많이 옅어진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최 지사는 “평양 시내에 걸렸던 정치·반미 구호가 대부분 사라지고 대신 과학·경제 관련 구호로 바뀌었다”며 “초보 수준이긴 하지만 인공지능(AI) 로봇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등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실생활에 적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북측 인사들로부터 받은 느낌은 어땠나요.

“북한 사람들은 말 한마디도 우리처럼 생각나는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잘 정리해서 하는 편이에요. 방북 때마다 ‘북한이 작심하고 남북관계 개선에 주력하려고 하는구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남북관계 진척 의지가 강한 듯했습니다. 특히 개혁·개방의 의지가 강해 보였어요.

일각에선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북한이 개혁·개방을 천명한 것 아니냐 하는데, 북한은 이미 이전부터 개혁·개방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실제로 외국 투자자들의 투자를 보장하는 조치를 마련하고, 합작 및 합영회사도 운영할 수 있게끔 문을 열어놓았지요. 원산갈마지구는 북한이 첫 개혁·개방의 대상으로 선정한 지역인데, 100여 동의 호텔, 콘도, 온천, 골프장을 갖춰 2019년 10월 개장한다고 합니다.”

- 방북기간에 김정은 위원장을 가까이서 만났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김정은 위원장이 스위스에서 공부해선지 서구 생활이 몸에 배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9·19 평양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에게 아무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가 용기를 내 먼저 다가가 건배를 제안했고 김정은 위원장이 저를 알아보고는 바로 응해주었습니다. 그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부인 리설주 여사도 마찬가지였고요.

제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해줘서 고맙다. 덕분에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됐다’고 했더니, ‘앞으로 더 잘하도록 하자’고 답해주더군요. 잠시 후에 보니 사람들이 전부 제 뒤로 줄을 서고 있더군요. 김정은 위원장과 건배하려고요(웃음).”

이 의장은 “아무리 좋은 합의를 내놓는다 해도 실천이 뒤따르지 않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바로 폐기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 비준이라는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철원평화산업단지는 공단이 우리 쪽에 있고, 북한 노동자가 출퇴근하기 때문에 북한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을 남북 공동으로 개최하게 되면 남북 공동 상설조직위원회를 만들고 한 사무실에서 남북한 직원들이 상근하게 돼요. 이를 통해 작은 통일을 연습하게 될 겁니다.”

-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얻은 강원도의 자산이 있다면.

“‘평화의 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가진 도민들이 이제는 남북 평화를 적극 지지해요. 강원도는 그동안 축적한 교류협력 노하우와 토대를 기반으로 남북 교류협력의 전진기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사업을 추진해나가려 합니다.

우선 금강산 관광 재개, 설악산~금강산 일대를 아우르는 세계평화공원 조성 등을 계획하고 있어요. 남북 하늘길, 바닷길, 땅길을 여는 사업도 구상 중이에요. 다만, 현재 상태는 북한과 거래한 국가와 기업 등은 모두 제재 대상에 오르는 상황이어서 유엔의 대북제재 조치가 완화돼야 추진이 가능하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철원평화산업단지, 통일시대 대비한 남북 경협 모델

- 철원평화산업단지 조성, 강원평화특별자치도 설치, 통일 특수(고성) 등 강원도만의 아이디어가 눈에 띕니다. 현재 어떻게 추진되고 있나요.

“철원평화산업단지는 우리 측 접경지역인 철원군을 중심으로 북측 접경지역까지 포함하는 산업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이에요. 남한의 기술력과 자본을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려 해요. 기존 개성공단의 한계점을 보완하고 상호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방침입니다. 개성공단은 북쪽에 있어 북한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반면 철원평화산업단지는 공단이 우리 쪽에 있고, 북한 노동자가 출퇴근하기 때문에 북한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산업, 경제의 논리를 넘어 평화 지향적 경제협력을 통해 한반도 평화 정착과 상생 공영을 위한, 통일시대를 대비한 새로운 남북 경협 모델이 될 거예요. 평화특별자치도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 방향인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정책’ 및 ‘자치분권 추진과 국가 균형발전’에도 부합하는 모범적 사례가 될 겁니다. 고성군이 정확히 반반 나눠져 있는데, 고성을 통일특구로 만들어 통일 실험을 해보면 좋을 거예요.”

최 지사는 임기 중에 중점을 두는 대북정책 사업으로 금강산 관광을 꼽으며 “북한에서도 금강산 관광 재개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며 “관광 재개가 머지않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 금강산 방문 때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가 있었나요.

“금강산 관련 북측 종사자들의 태도가 부드러워졌어요. 금강산을 세계적 관광지로 만들어가려는 분위기가 짙었습니다. 다만 금강산 관광시설이 오래 방치돼 낡은 곳이 많았는데, 대북제재가 해제될 것에 대비해 육로 등 교통수단 준비도 필요해요. 2019년 안에는 금강산 관광 재개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남북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강원도는 남북 분단의 대표적 피해 지역입니다. 6·25전쟁 때 대부분의 전투가 여기서 벌어졌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등이 이어졌지요. 이런 이유로 북쪽으로 150km, 동쪽 해안을 따라 160km에 걸쳐 철조망이 쳐져 있죠.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 한 강원도는 살아갈 길이, 발전할 방법이 없습니다. 분단의 가장 큰 피해자이자 평화를 가장 바라는 분들이 강원도민들이에요. 남북관계가 나빠지면 강원도 지역경제부터 피해를 받습니다.

단적으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사망하면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래 고성군은 수천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은 것으로 분석됐어요. 우리는 어느 지역보다 평화와 남북관계 회복을 염원할 수밖에 없어요.”

최 지사는 2018년 12월호 <통일시대> 표지 사진을 가리키며 “달라진 남북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라며 “이곳에서 군생활을 해봤기에 이곳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남북 군인이 총을 내려놓고 악수를 나눴다는 게 무척 놀랍다”고 말했다. 표지 사진은 2018년 11월 22일 전술도로 개설 작업에 참여한 남북 군인들이 비무장지대(DMZ) 내 군사분계선(MDL) 인근에서 만나 서로 악수하고 공사 진행 상황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개최 추진

- 지사님의 통일 철학이 궁금합니다.

“경협이라는 게 결국 다 우리 사업입니다. 서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지요. 이번 방북길에 은행, 건설회사 경영자가 동행했어요. 남쪽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문화·스포츠 교류를 통해 경협을 추진하면서 평화 프로그램을 꾸준히 가동해야 합니다.”

- 여러 대북 프로젝트 중 재임 기간에 꼭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개최입니다. 이게 단순히 경기장만 같이 쓰는 게 아니에요. 사람, 돈, 조직, 제도 등 모든 것을 함께해야 해요. 동계올림픽 인프라가 있어 행사를 치르는 데는 문제가 없어요. 북쪽에서는 마식령스키장을 활용하면 되니까요.

동계아시안게임 공동 개최는 올림픽 유산과 남북 평화를 좀 더 공고화하고 지속 가능하게 하는 효율적인 방법입니다. 이게 이뤄지면 남북 공동으로 상설조직위원회를 만들고 한 사무실에서 남북한 직원들이 상근하게 돼요. 이를 통해 작은 통일 연습을 하게 될 겁니다.”

최 지사는 “체육·문화 등 비정치 분야의 사업 발굴로 교류협력의 범위를 확대하고 연속성을 확보해나갈 것”이라며 “2021년 동계아시안게임 남북 공동 개최를 포함해 북한과 연계된 평화올림픽 레거시(유산)가 현실화 되도록 정부와 긴밀한 협조체계를 유지하고 면밀하게 추진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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