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룡 수석부의장은 “지난해 한반도를 중심으로 전쟁 위기감이 고조됐는데, 지금 이렇게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토론회를 갖게 되어 고마운 마음”이라는 인사말로 이날 토론회의 문을 열었다.
김덕룡
박종철
김 부의장은 “이 같은 화해 분위기의 불씨를 잘 살려 북·미 대화와 비핵화로까지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과제가 남았는데도 국민들 사이에서 한반도기 사용, 남북 단일팀 구성 등을 둘러싸고 정쟁과 갈등이 일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오늘 토론회가 평화와 통일 개념과 이들의 상호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구체적 실천 방안을 이야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서보혁
이대훈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사회로 시작된 제1세션에서는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가 ‘평화주의 통일론의 탐색’이라는 제목으로 발제를 했다. 서 교수는 최근 10년 사이 국민들, 특히 젊은 층의 통일 필요성에 대한 인식 저하와 북한에 대한 적대감 상승을 지적하며 ‘통일은 못 하더라도 평화를 원한다는 의견이 80% 이상’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에 비춰 기존의 ‘민족주의, 국가주의 통일관’에서 벗어나 대안적 담론으로서 평화주의, 세계시민주의에 입각한 통일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한 “기존에는 통일과 평화가 별개로 다뤄지면서 평화가 통일을 이루는 ‘수단’으로 간주되거나 ‘선(先)평화 후(後)통일’ 같은 선후 관계로 다뤄졌다. 그러나 평화는 수단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 가치이며, 평화와 통일은 일괄적으로 접근할 하나의 세트”라고 강조했다.
김동엽
김병로
이어진 전문가 토론에서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평화와 통일은 선후 관계가 아니라 평화로 시작하는 운동 과정에 통일이 있으며, 결국 다시 평화를 이룩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며, ‘작은 평화부터 만들어 큰 평화로 나아가는 소확평(소소하지만 확실한 평화)의 실천’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또한 동북아와 한반도의 특수성을 염두에 둔 복합적 지정학과 신안보적 관점에서 평화 담론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철
박주화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평화는 힘을 바탕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지만, 소극적으로 지키는 것만으로 진짜 평화가 실현되지 않는다”며 복합적인 전략과 사유를 바탕으로 평화를 이야기하며 스포츠와 예술,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갈등 변환과 평화 구축을 해나가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평화통일’이라는 가치와 ‘민주’라는 개념 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며 미얀마의 예를 들었다. 미얀마는 135개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일종의 분단국가이지만 평화로운 ‘하나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연방제를 모색하고 있는데, 소수민족이 무장 해제를 하고 연방제 체제 내로 들어오게끔 하려면 민족 간 분권, 경제 분배, 소수자 권익 옹호 등 ‘민주적 장치’가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통일은 평화 정착을 통해 남북이 합의에 의해 자연스레 이뤄나가야 할 과정”이라며 “국가가 국민들에게 평화로운 한반도의 구체적 청사진을 공감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는 ‘하향식’ 접근 못잖게, 국민들 사이에 존재하는 평화에 대한 인식 차이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파악하는 ‘상향식’ 접근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경주
이정철
이경주 인하대 교수는 ‘평화권’ 개념을 환기시켰다. 이 교수는 “평화권은 군사적 목적을 위해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반대하는 권리로, 종전의 ‘인권’ 개념과 달리 국가가 인권에 관여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 자국이 아닌 다른 국가에 대해서도 평화를 요구하는 것을 포함한다”며 특히 “미국의 전략에 따라 한반도의 전쟁 위험성이 좌우되는 현실에서 평화권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지금 2030세대들에게는 통일이 ‘주권적, 절대적 가치’로 다가가지 않고, 도리어 ‘통일과 글로벌주의의 대립’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하며 이는 기성세대가 이들 가치에 대한 개념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반성했다.
제1세션의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최양근 숭실대 법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반도는 독일의 통일과 달리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후유증이 있기 때문에 이를 피하지 말고 연구해야 독일과는 또 다른 한반도 통일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2세션은 평화, 통일운동 현장에서 활동해온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실천 방안에 대한 토론이 주로 이뤄졌다.
최양근
고은광순
발제자인 이대훈 성공회대 NGO대학원 평화학 연구교수는 “이제는 전문가들이 정부가 이야기하는 이론이나 정책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형태에서 벗어나 다양한 개인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은 어젠다를 폭넓게 결합하고 확산하는 담론의 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이를 위해 ▲여성, 평화와 안보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같은 국제적 규범을 적극 활용하고 ▲여성, 청년, 이민자 등 통일 논의에서 소외돼온 소수자들을 ‘소통 촉진 역량’ 인원으로서 양성하며 ▲각 지자체의 마을 만들기 프로그램에 주목해 이들 단위부터 통일국민협약을 논의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첫 토론 주자로 나선 고은광순 평화어머니회 대표는 “우리가 분단 70년이 된 지금까지 고통 받는 것은 분단을 기득권 유지에 이용하는 세력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이들 세력의 청산을 주장했다. 또한 이를 위해 민주평통 구성원들이 다양한 행사를 통해 직접 국민을 만나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하자고 촉구했다.
김종수 가톨릭대 신학과 교수는 “가톨릭 교회에서 이야기하는 평화란 ‘정의를 세우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평화를 깨뜨린 주체와 사건을 기억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이 같은 기억을 지워버리려 하는 이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김종수
문아영
그는 “한편 2030세대들에게는 기성세대와 공유하는 기억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과 공유할 수 있는 기억을 만들어나가는 통일교육 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는 토론회 패널 구성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구축한 이들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분단 폭력의 논의가 중요한 만큼 군비 축소, 군사력 축소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되며, 평화 담론의 형성을 위해서는 공교육과 미디어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점도 짚었다.
이어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이 평화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싫어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개념적으로 낯설게 받아들이는 것은 언론이나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이기에, 이를 연구해 이들의 삶의 조건 자체를 바꿔나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박순성
변진홍
변진홍 가톨릭 동북아평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언론이나 누리소통망(SNS)을 통한 통일 공감 영역을 확산하는 데 민주평통이 앞장서줄 것을 당부하는 한편, 해외 평화 담론 확산 사례도 적극적으로 검토해 참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지금까지 통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진보와 보수 사이에 이뤄졌다면 이제는 세대 간의 차이가 더 부각되고 있다”며, “이는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의 충돌이자 평화와 공정이라는 가치 간의 충돌이므로 세대별, 개인별로 중요시하는 다양한 ‘정의’ 중 어떤 정의가 옳으며, 어느 정의가 더 큰 가치를 가졌는지 등을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대근
이승환
마지막 토론자인 이승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공동의장은 “북한이라는 군사 국가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2030세대가 보수 진영의 안보 담론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라며 북한의 폭력성 저지에 진보단체들도 힘을 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