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이 전해준 흥분이 쉬 가시지 않고 있다. 스포츠가 주는 감동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남과 북이 함께한 평화올림픽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가슴 벅찬 시간이었다. 꽉 막혀 있던 남북한 사이의 길이 땅과 바다와 하늘에서 동시에 열렸다.
올림픽이 열어놓은 남북관계의 문이 올림픽 이후에도 닫히지 않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해야 할 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충돌 위협을 제거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이미 남과 북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지난 1월 9일 열린 고위급회담에서 ‘남과 북은 현 군사적 긴장 상태를 해소해나가야 한다는 데 견해를 같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당국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올림픽 이전에 대규모 북한 대표단 방남을 위한 통행과 신변안전 보장 등을 위해서라도 실무급 군사회담이 열릴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남북은 군사회담이 아닌 판문점 채널을 통한 협의를 진행했다. 남과 북 모두 군사회담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적지 않은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올림픽 폐막과 함께 고위급회담을 통해 합의한 군사회담이 언제 어떠한 형태로 열리고, 무엇을 이야기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과연 군사회담의 개막 커튼은 올라갈 수 있을까.
49차례 군사회담 개최
남북 군사회담은 6·25전쟁 후 유엔군사령부를 통한 북한과의 대화로부터 시작해 1990년대 정치회담을 통해 ‘남북 기본합의서’를 체결하고 2000년대 남북 군사당국자 간 본격적인 회담 개최로 이어졌다.
최초에는 유엔사가 한국을 포함한 참전국을 대표해 북한군과 회담한 경우로 정전협상과 정전협정 위반 사건들을 해결하기 위한 군사정전위원회 협상들이었다. 그러나 1991년 3월 25일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한국군 장성을 임명한 후 북측의 본회담 거부로 군정위 기능은 사실상 정지되었다.
남북한 간의 실질적인 군사회담은 남북 기본합의서가 체결된 1990년대 이후부터 시작됐다. 그 이전에도 군사 문제에 관한 협상은 있었으나 남북한 군이 주가 아니라 정치적 수단이나 선언적 합의에 머물렀다.
1990년대에는 군 요원이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가해 정치·군사 문제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협의한 후 구체적인 분야에 대해 남북의 군사 대표가 참여하는 형식을 취했다. 1990년대 남북 기본합의서 체결과 군사분과위원회 회의의 과정이 대표적 사례이다.
실제 독립적인 남북 군사회담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이후 남북 국방장관회담, 철도 및 도로 연결사업 지원을 위한 군사 실무회담, 한반도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장성급 군사회담 등이 있다.
6·15를 기점으로 이전 군사회담은 간접적인 형태의 군사회담인 반면, 6·15 이후 군사회담은 남북한 군사당국자가 직접 한자리에서 만난 진정한 의미의 남북 군사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 군사회담은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후속회담인 실무회담 중심으로 증가하기 시작하면서 2004년 남북 장성급회담 이후로는 군사 의제 중심으로 합의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정적이 흐르는 비무장지대. 임진강변 북한 초소에서 경비병들이 움직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대북정책 변화와 일련의 사건들로 말미암아 그동안 외형적으로 많은 발전을 해온 남북 군사회담은 사실상 중단됐다. 지금까지 남북 군사회담은 1990년대 정부 대표단으로 정치회담의 일부였던 남북 고위급회담 8회와 군사분과위원회 14회 등 총 22차례의 회의 및 접촉이 있었다.
2000년 6·15 이후엔 국방부 장관 회담 2회, 장성급회담 8회(1회는 남북 군사당국자 접촉으로 구분), 군사 실무회담 39회로 총 49차례 군사회담이 개최됐다. 2000년부터 2008년 1월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45회인 반면 이명박 정부부터 현재까지 단 4차례의 군사회담(이명박 정부 3회, 박근혜 정부 1회)만이 개최됐고, 4차례 모두 북측이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현재까지 군사회담을 통해 채택된 합의사항은 크게 긴장 완화 및 신뢰 구축에 관한 합의와 교류협력 지원에 관한 합의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군사회담을 통해 합의된 사항 대부분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남북 군사관계는 이미 30여 년 전 남북 기본합의서상의 군사적 신뢰 구축과 군비 통제 관련 합의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군사회담 합의 사항 중 대표적인 ‘서해상 우발충돌 방지 및 군사분계선 선전 활동 금지’ 합의 역시 파기된 상태이다. 결국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신뢰 구축 분야는 초보적 수준도 못 미치는 상태로 머물러 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북한은 2016년 5월에 있었던 제7차 당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를 통해 “북남 군사당국 사이에 회담이 열리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충돌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 상태를 완화하는 것을 비롯하여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협의·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남북한 군사회담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7월 “군사분계선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기 위한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북측에 제의한 바 있다. 지난 1월 고위급회담에서 합의한 군사당국회담 역시 이와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예상되는 의제는 군사분계선이라는 공통분모로 보아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문제가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많다. 이미 2004년의 ‘6·4 합의(서해상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선전 활동 중지 및 선전 수단 제거)’를 복원하는 문제와 연결시킨다면 서해상에서의 군사적 충돌도 의제화될 가능성이 있다.
그 외에 상호 군사 위협과 관련해 군사훈련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이는 한미 연합훈련,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북핵 문제와 함께 민감한 사안이다. 실제 북핵 문제와 한미 연합훈련 등의 의제는 남북 군사회담을 넘어서는 사안이라는 점에서 실제 군사당국자 간 협의할 의제로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당당하게 우리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상대의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이지 자칫 이를 의제화해 모처럼 살린 대화의 동력에 손상을 입혀서는 안 될 것이란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2011년 9월 열린 군사 실무회담 후 남북 관계자들이 회담장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의제 선정은 결국 군사회담의 형식과 관련된 것이다. 의제의 민감성과 중요도에 따라 대령급 실무회담이나 장성급회담, 차관급이 대표로 참석할 가능성이 있는 고위급 군사당국회담 등이 모두 개최 가능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준비해나갈 필요가 있다.
남북 간의 갈등관계는 정치적 이념 갈등에서 비롯된 군사적 긴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 과거 6·25전쟁의 쓰라린 경험이 있고 현재까지도 군사 충돌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단순히 정치적 긴장을 완화하려는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남북 간 갈등관계 해소는 바로 군사 문제 해결에 있다.
군사 문제는 남북 양측에 가장 민감한 문제이면서도 남북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이해 당사국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다차원적이며 복합적인 문제이다. 남북 군사회담이란 바로 남북 간 군사책임자 및 군사실무자가 만나 남북 간의 핵심 요소인 군사 문제를 협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북 군사회담 전개 과정과 합의 자체가 남북 군사관계를 넘어 남북관계에 지속성을 부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남북 군사회담을 통해 평창 평화올림픽 모멘텀 지속
지금까지 남북 군사회담은 한반도에서의 전쟁 재발 방지를 위해 우발적 무력 충돌 방지, 상호 자극적인 활동 자제, 상호 비방 중지 등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 문제를 협의·추진함으로써 비록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남북한 모두 군사회담을 통해 쌍방의 안보 우려사항을 제기하고 해결 방향을 모색하면서 비록 많은 이견들이 상존하고 있으나 대화를 통해 상호 군사적 신뢰 증진을 도모해왔다.
특히 우리 측으로서는 군사회담을 통해 국제사회가 북한에 요구하는 안보 우려까지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함으로써 북측의 자기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며, 북한이 개혁과 개방으로 긴장 완화와 신뢰 구축에 동참할 때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설득해나갈 수 있다.
남북 간 군사회담은 쌍방이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거의 200만 명에 가까운 막대한 군사력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상호 간 전쟁 위험을 약화시키고, 우발적 충돌을 예방하며, 대화를 통해 평화와 안정을 유지·발전시켜나가는 데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평창 평화올림픽의 동력을 유지해나가기 위해 군사회담만 한 발전소도 없을 것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