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동 | 올해 1월과 2월은 우리 민족사에서 중요한 격변기였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고, 그 실천의 일환으로서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했다. 이로 말미암아 남북 고위급회담과 실무회담이 개최됐다. 남북관계에 대해 전반적인 평가를 내려달라.
조성렬 |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면서 국면 전환이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난해 12월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군사훈련 연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이뤄졌다. 우리 정부가 김정은 위원장의 신년사를 받아 곧바로 남북 고위급대화를 제안한 것은 잘 대응한 것이다.
이희옥 |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가 관건이었고, 그 결과에 북한이 호응하면서 국면 전환이 가능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평창동계패럴림픽이 끝난 이후에도 북한의 이러한 기조는 더 유지될 가능성이 있고, 운신의 공간도 아직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대화의 모멘텀을 만들었지만 상황에 따라 남북관계가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특히 북한의 태도 변화는 전술적이라기보다 전략적인 측면에 따른 것이라 우리 정부가 여기에 상응하는 돌파력을 발휘해야 한다.
남북 간 대화 채널 복원 ‘최대 성과’
김연철 |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화해 모드로 전환된 것은 과소평가할 일이 아니다. 어쨌거나 남북 간 대화 채널이 정상적으로 가동된 것이 중요하다. 서로 안면을 트고 악수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과 그조차도 하지 않는 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랫동안 남북관계가 악화됐다가 새로 시작하기 때문에 조정할 문제가 많은데, 평창 국면에서 남북이 잘 풀어갔다. 앞으로도 남북이 서로 해결해야 할 사안이 많다. 문제를 풀어본 경험이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다.
이희옥 교수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야기된 논란을 2030세대라는 프레임을 씌워 남남갈등이 재현됐다고 단순화하기는 어렵다.”
이혜정 |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우리는 두 가지 성과를 얻었다. 한반도 긴장이 상당히 완화된 것, 그리고 남북 고위급회담 성사 가능성이다. 특히 그동안 완전히 막혔던 남북 간 대화 채널이 복원된 것은 의미 있는 결실이다. 향후 남북 정상회담이 논의되면 물밑 접촉이라 할 만한 대화 채널도 복원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기동 | 우리 정부가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줬고, 이에 대해 북한이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이 태도를 바꾼 요인을 짚어보자.
조성렬 | 북한이 태도를 바꾼 원인을 살펴보려면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과 9월 9일 북한 정권 창립 70주년이라는 두 개의 민족적 대사를 언급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사실 이 두 개의 대사는 직접적 연관은 없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9월 9일까지 이 기간을 통해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으려 한 듯하다.
조성렬 수석연구위원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인 9월 9일까지의 기간은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다.”
이희옥 | 그동안 북한과 중국 사이에 전략적 불신이 있었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한국이 남북관계 개선 카드를 활용한 것은 중국도 호응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미국 역시 한국의 주도권에 대해선 적어도 반대하지 않고 관망하는 환경을 만들었다. 그동안 북한도 한국 정부의 외교 움직임을 관찰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확보하고자 다각적으로 움직였다. 핵무력 건설 완성을 선언한 북한이 핵 개발 과정에서 수동적이고 공격적으로 대응한 것과 달리 대화 공세와 국면 전환을 시도한 것은 전략적인 맥락이 있다고 보인다.
김연철 | 북한은 최근 몇 년간 핵무장 완성에 집중했다. 그 결과 한반도 정세가 악화됐다. 북한으로서는 악화된 정세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 남북관계로 한반도 정세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도다.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돼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활용하려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남북, 북·미, 한미 세 개의 양자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는데, 일단 남북관계부터 풀리고 있다. 물론 남북관계도 해결해야 할 현안이 많아 갈 길이 멀다.
남남갈등 재현됐다는 해석은 과도
이기동 |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단일팀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입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견이 나타났다. 크게 부각되진 않았지만 일정 정도의 남남갈등을 보인 것이 사실이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와 달리 남남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계층이 이념 대립이 큰 50대 이상이 아니라 2030 청년세대라는 점이다. 이를 어떻게 보는가.
이혜정 | 남남갈등은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을 추진하면서 표면화됐고, 그때 처음 국내 정치 용어로 등장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나타난 논란이 남남갈등이라는 정치 용어로 해석할 사안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특히 청년세대가 문제 제기한 단일팀 구성 과정이나 일부 보수인사들이 ‘평창동계올림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 말하는 것을 두고 남남갈등이 재현됐다고 해석하는 건 과도하지 않나 싶다.
우리 사회는 촛불혁명을 계기로 두 가지 측면에서 합의가 이뤄졌다. 첫째, 절차적 민주주의다. 이는 특권을 타파하는 것이다. 둘째, 평화에 대한 합의다. 미국의 북한 공격을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촛불혁명과 조기 대선을 거치면서 절차의 정당성, 민주주의가 핵심 가치로 떠올랐다.
조성렬 | 소위 남남갈등이라고 하는 논란은 2030세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지난 10년간 남북한 간에 교류 없이 적대관계가 고조되면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견고해졌다.
또 다른 원인은 촛불혁명을 경험하면서 젊은 세대가 과정의 정당성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청년세대에서 전자보다 후자의 모습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이희옥 | 기성세대는 갈등과 평화가 교직되는 남북관계를 역사적으로 경험하며 판단력을 키웠지만, 청년세대는 평화, 대화, 협상 등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 보니 북한이 유엔 회원국이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인데도 제3자인 우리가 북한을 대신해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젊은 세대의 눈에는 다르게 비춰졌을 수 있다.
획일적인 북한 응원단, 조명 못 받아
김연철 | 남남갈등이란 표현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울리지 않는 용어다. 갈등 없는 사회라는 건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균열이 존재하고, 그걸 인정하고 절차를 통해 해결해나간다. 세대 차이나 이해관계 갈등 자체를 부정할 순 없다.
2030세대는 남북갈등을 겪어보지 않았고, 취업 등 상황이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이해관계를 중요시한다. 그렇다 보니 절차의 정당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는다. 물론 청년세대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이다. 납득이 되면 얼마든지 생각을 바꾼다.
이혜정 | 젊은 세대의 절차와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단순히 젊은 세대가 남북한 교류 경험이 없어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 보기엔 청년실업 문제가 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
젊은 세대는 촛불혁명과 조기 대선을 겪으면서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 민주주의, 평화에 대해 고민하고 그 해답을 얻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문제인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 사회가 어떠한 형태의 시장경제나 자본주의를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해답을 얻지 못했다.
이기동 부원장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결정하기까지 올해 1월과 2월은 우리 민족사에서 중요한 격변기였다.”
이희옥 | 앞에서 언급된 현안이 해결되려면 기본적으로 국내 정치 지형이 바뀌어야 한다.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중간계층’을 튼튼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협치의 영역을 정당뿐 아니라 세대, 지역, 종교 등 다양하게 확장될 필요가 있다. 민주평통의 역할과 임무가 여기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기동 |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서 남북관계에 새롭게 나타난 현상이 있다면.
조성렬 | 과거엔 북한 응원단이나 예술단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많은 이슈를 생산했다. 그런데 이번엔 북한 응원단이 보여준 획일적인 모습에 젊은 층이 거부감 내지 무관심을 보였다. 대한민국 젊은 층은 다양성을 존중하고 촛불혁명을 통해 민주주의를 체험한 세대다. 이렇다 보니 북한 응원단이 보인 획일적인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일각에서 제기한 ‘평양올림픽’ 같은 색깔론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이혜정 | 정부는 이런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촛불혁명 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절차의 정당성과 각계각층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최근의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싶다.
남북 간 체육 교류행사 당분간 지속
이기동 | 국제사회의 관심사는 남북 간 화해 모드가 지속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어떻게 전망하나.
김연철 | 남북관계는 북핵 문제가 진전돼야 가능한 영역이 있고, 핵 문제와 관계없이 가능한 영역이 있다. 두 가지를 구분해서 접근하는 것이 좋겠다. 우선 문화·체육 분야에서의 교류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이산가족 문제는 교착 상태에 빠져 있지만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 관광을 한 번에 묶어 추진하는 걸 검토하면 어떨까 싶다. 금강산에서 이산가족이 상봉할 때 해금강을 둘러보는데, 여기에 관광 프로그램을 추가하는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은 국제사회로부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사안인 데다 대북제재 상황이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진행할 수 있다. 중요한 건 남북 정상회담을 언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이다.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 성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특사 파견 등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김연철 |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평양 초청 제안에 ‘여건 조성’을 강조한 이유가 있다. 한반도 정세를 갈등에서 해결 국면으로 전환하려면 북핵 문제가 진전돼야 한다. 한미관계에서 대북정책의 공감대를 모으는 게 급선무다.
다만 트럼프 정부의 정책 결정구조가 여전히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어 협의가 쉽지 않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통상 분야에서 무역 갈등도 표면화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신뢰가 쌓이면서 한미 양국은 성공적인 평창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협력했다. 우리 정부는 어떻게든 북한과 미국이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김연철 교수
“평창올림픽 이후 북핵 문제와 관계없이 남북 간의 문화·체육 분야 교류는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성렬 |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9월 9일 북한 정권 70주년까지 약 190일이 남았다. 이 기간은 또 하나의 기회라 생각한다. 북한도 새로운 남북관계 틀을 만들어 북·미 대화에 나서지 않을까 싶다
.설령 한미 군사훈련을 한다 하더라도 남북관계는 화해 국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비는 있겠지만 9월 초까지는 남북관계뿐 아니라 북·미관계 개선 기회가 열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왜 북한이 신년사를 통해 화해 모드로 전환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장기화되면 북한 경제가 어려워지고 김정은 체제를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북한은 이미 핵무력을 완성했기 때문에 국면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국면 전환 이유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렇지 않으면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잘못 대응할 수 있다.
北, 9월 9일까지 남북관계 집중할 듯
이기동 |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어느 정도 조성된 남북 간 화해 모드가 남북관계를 넘어 북·미 간 대화나 양국의 관계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
이혜정 |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미국이 한미 군사훈련 연기에 동참한 이유다. 평창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치러진다는 점에서 그 대의를 따른 것인지, 남북대화 계기를 통해 미국도 협상의 기회를 가져보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다. 그동안 미국은 한미관계 혹은 동북아 지형에서 항상 상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재 대북정책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 더군다나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의 대선 개입과 성추문에 휩싸여 있다. 리더십 위기에 직면해 있다 보니 대북정책을 어떻게 추진할지 알 수 없어 이에 따른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다.
조성렬 | 남북 정상회담이 조기에 개최되긴 어렵겠지만 북·미 간의 탐색이 이뤄지고 남북 정상회담 조건이 만들어지면 달라질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 수령의 유훈’임을 내세워 우리에게 ‘선물’을 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비핵화 협상이 이뤄질 것이고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북한은 정권 수립 기념일인 9월 9일까지는 대미관계 개선보다 6·15 남북 공동행사나 8·15 남북 공동행사 등을 통해 남북관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혜정 교수
“현재 대북정책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 오히려 미국이 남북관계의 가장 큰 변수라 할 수 있다.”
이희옥 | 북·미 간 대화를 위해서는 국제 공조도 중요하다. 각종 양자 및 소다자 대화가 선순환 구조로 발전하는 게 중요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은 북·중 간, 한중 간, 북·미 간 대화를 탐색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었다.
특히 중국은 미·중관계를 활용해 남북관계 개선을 북·미 대화로 이끌어나가는 한편, 북한을 설득하는 역할을 물밑에서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서 한중의 정책이 매우 유사해 협력이 고도화될 가능성이 있다.
김연철 | 미국을 움직이려면 북한이 비핵화의 출구를 확인해줘야 한다. 북한은 조건과 환경을 강조하면서도 비핵화가 선대 유훈임을 내세워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여건이 충분히 조성된 상황에서 성과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때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
만약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북한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정상회담은 효과적인 대화 형식이다. 지도자의 결정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3차 남북 정상회담부터는 실무적이고 실용적인 회담이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