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20년 일본 도쿄올림픽, 2022년 중국 베이징동계올림픽이 이어진다. 2022년엔 중국 항저우에서, 이어 2026년에는 일본 나고야에서 아시아경기대회가 잇따라 개최된다. 동아시아의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에서 8년 동안에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가 다섯 번이나 열리는 것은 세계 여느 지역에서도 유례가 없는 경우다.
최근 동아시아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세계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갈등·대립을 벌이고 있으며, 북한의 핵 보유 선언은 대립의 강도를 최고조로 높이고 있다. 핵무기와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해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고 북한이 공언함으로써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핵항모를 포함한 전략자산을 한반도 주변에 상시 배치하며 북한에 대한 군사 옵션을 언제라도 실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가 짧은 기간 동안에 연속해서 열리게 된 사실은 개최국들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동아시아의 긴장 완화와 평화 유지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두 가지 가능성
동아시아 상황을 불확실성으로 이끌어갈 요인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내외 지지도의 불안정에도 있다. 취임 1주년을 맞은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와 인종주의, 여성 비하 등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국내외에서 불신이 고조되고 미국의 지도력을 추락시켰다.
예컨대 파리기후변화협약의 탈퇴, 예루살렘에 대한 이스라엘 수도 인정, 북핵 선제공격 위협,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와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과 한미 FTA 등 양자·다자 국제협정 무시, 미투(Me-Too) 성폭행 폭로 등으로 세계 지도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을 흔들리게 만들고 있다.
현재의 여론조사 추세대로라면 올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여당인 공화당이 상하 양원에서 다수 의석을 상실하게 되리라는 전망이다. 민주당은 상하 양원을 모두 석권할 경우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트럼프 취임 초기부터 거론해온 탄핵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로서는 의회 권력의 상실이 확실해질 경우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것이다. 국내 여론의 추세를 뒤집을 기회를 국제 위기 조성에서 찾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북핵 위기 돌파가 그 구실이 될 가능성이 높고, 한반도 평화에 경고등이 켜질 수 있다.
트럼프에게는 한반도 위기 해결에 두 가지 가능성이 상존한다. 첫 번째가 위기 조성과 전쟁을 통한 여론 반전일 것이고, 두 번째가 극적인 북핵 문제 타결을 통한 성과 도출일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이번 평창올림픽을 미국과 북한이 한 발씩 양보함으로써 평화올림픽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앞으로 노력해야 할 방향은 두 번째 가능성을 확장해나가는 데 있다. 그러나 미국 내 대북 강경론과 아베 일본의 향배가 한국으로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로 등장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평창올림픽의 평화 모멘텀을 살려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평창동계올림픽은 미국과 북한의 정면 충돌을 막아준 완충대 구실을 했다. 적어도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미국과 북한이 긴장 조성에 따른 충돌 조건을 만들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의 핵실험과 ICBM 시험발사가 있었고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가 뒤따랐지만, 북한의 신년사는 평창올림픽의 안전 개최와 더 이상의 사태 악화 방지를 보장해준 셈이다. 이제 ‘평창 이후’의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한국의 다각적인 대책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여만큼 중시하는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9·9절)까지의 지속적인 한반도 군사 긴장 완화조치 모색이 필요하다. 북한이 9·9절에 북핵과 ICBM의 완성을 선포할 경우 미국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에게 군사 행동의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음을 북한 측에 주지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북·미 대화 주선 성사 필요
한국은 미국과 북한의 접촉이 성사되도록 적극 노력해 북·미 협상 개시를 촉진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도 한국의 대화 중재 역할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고, 대화가 성사될 경우 트럼프 주변의 강경파 측근에 대한 의존을 축소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대화 성사는 북한 측에 대한 한국의 신뢰 회복에 큰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의 중재에 의한 북·미 대화 시작이 북한의 9·9절 이전에 성사돼야 할 절박성이 있다.
한국 시민사회는 한미 당국에 이상의 노력을 촉구함과 동시에 평창올림픽 이후 향후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를 동아시아의 협력과 화해 속에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의 소규모 기획 모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제는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갈 것인가. 중국, 일본, 한국의 정부 당국이 그 일을 할 수 있을까. 각국의 국익 때문에 말도 꺼내기 어려울 수 있다.
한·중·일에서 연이어 열리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동아시아 평화 구축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사진은 중국 시진핑 주석, 일본 아베 총리와 정상회담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
한국 입장에서는 이미 평창올림픽이 끝났는데 무슨 올림픽, 아시안게임의 사전 문화예술·청소년·스포츠 행사냐고 반대가 있을지도 모른다. 한 치의 양보 없이 국익 계산에 골몰하는 각국의 관료들은 자기 나라의 예산 지출을 꺼릴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화해와 친선을 내다보는 안목을 갖춘 원로들과 시민사회가 이끌어야 한다. 아래와 같은 단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로 한국, 중국, 일본의 전직 총리를 비롯한 소수의 문화예술인과 체육인들을 초청해 평창올림픽 이후 일본, 중국에서 열릴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협의 모임을 구성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두 번째로 이 협의 모임에서 일본과 중국의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에 앞서 한·중·일 청년과 여성을 비롯한 문화예술인, 체육인들이 참가하는 동아시아 문화예술 행사, 대중문화 행사와 청소년 프레올림픽 추진을 논의한다. 세 번째로 이상의 논의에서 북한의 참여를 촉구한다.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 형성
평창, 도쿄,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개최되고 항저우, 나고야에서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는 2018~2026년은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운명에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이 시기에 미국과 북한은 대결이 아닌 협상으로 북핵 문제를 풀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수립의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동아시아 유관국들은 북·미 협상뿐 아니라 4자회담, 6자회담으로 발전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북핵 해결과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과 타결은 동아시아 평화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초석이 될 것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2020 도쿄올림픽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동아시아에서 올림픽과 아시아경기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긴장을 고조시키기 어렵고, 긴장 완화가 지속되면 북한에 대한 제재와 봉쇄도 부분적으로 해제 과정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한반도 전쟁 위기를 줄이고 비핵화의 입구에 들어서도록 정부·민간의 협력으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다. 이 황금의 기회는 우리에게 다시 오기 어려울 수 있다.
이번에 열린 남북관계가 막히지 않도록 관리하는 지혜를 발휘하느냐 못 하느냐에 우리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하겠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도 과거 어느 때보다 긴밀해야 할 것이다. 현 상황에 대응하는 양측의 자세는 대단히 느슨한 상태다. 새롭게 제기되는 공공외교의 개념을 도입해 정부와 시민사회가 총력 대응에 나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초래된 위기를 극복해야 하겠다.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