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완상 전 총리는 강원도 철원에서 열린 ‘세계평화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평창동계올림픽이 한반도 평화 정착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파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렇다면 ‘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다’는 데 얼마나 큰 가능성을 부여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평창 피스 프로세스’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매우 낙관적인 비전을 보여주었다.
우선 한 전 총리에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보여준 대북정책, 다자 간 외교에 대한 평가부터 청했다.
한완상 서울대 명예교수는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철원에서 열린 ‘세계평화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었고, 실제 3불 정책, 한반도 전쟁 불가 선언, 한미 연합훈련 연기 등을 통해 남북 화해 분위기를 이끌어냈습니다. 나는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이런 행보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 신뢰합니다. 오로지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대통령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촛불을 통해 보여준 힘과 열망이 뒷받침돼 있는 한 자신의 평화통일 의지를 뚝심 있게 관철해나갈 것으로 믿습니다.”
한 전 총리는 특히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이 단순한 스포츠 행사에 그치지 않고, 정부가 그간 내세웠던 평화정책을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정은에게 목적은 핵 개발이 아니라 경제성장
평창올림픽의 북한 참가가 국제사회의 핵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북한이 올림픽 이후 핵 개발 문제 등에서 이전보다 유연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취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는데요.
“나는 김정은이 7년 전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되면서 선언한 핵·경제 개발 ‘병진노선’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극우 세력은 ‘김정은의 병진노선 중에서 주요 목적은 핵 개발이고, 경제 개발은 형식적으로 내세우는 명분’이라고 평가하지만, 이는 잘못된 판단입니다. 김정은에게 핵 개발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고, 궁극적 목적은 ‘경제 개발’이라고 봐야 합니다.”
한 전 총리는 김정은의 병진노선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정책에 대한 존중과 반성의 결과라고 판단한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북한을 사상 강국으로 만들고 인민들의 민생경제를 개선하고자 했으나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아버지 김정일은 선대의 실패를 지켜보며 ‘핵이 있어야만 미국과의 대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해 플루토늄 개발에 나섰으나 북한의 경제난은 심각해졌다.
한 전 총리는 선한 의지를 갖고 ‘선제적으로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힘과 무력으로 제압하는 ‘선제적 공격’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김정은의 병진정책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하는 한편 할아버지의 유훈인 민생 안정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전략이라는 것. 그만큼 김정은에게 경제 개발은 진지하고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경제 개발을 위해 대화 테이블에 나선 그의 행보를 ‘제스처’로만 폄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해 화성-15형 발사를 통해 핵무기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이 ‘수단적 가치’를 성취했으니 ‘목적 가치’인 경제성장을 위해 협상 테이블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마침 시기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이라는 계기와 우리 정부의 꾸준한 대화 제의가 있었기 때문에 올림픽 참가를 결정한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북한은 경제 개발을 위해 적극적인 대화 자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북한의 ‘의도’에 대해 여전히 불신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든 남북의 대화 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지난 다보스포럼을 보면서도 개인적으로 느낀 것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의외로 실용주의자의 면모를 갖고 있더군요. 경제적 이윤만 보장된다면 평화를 위해서도 질주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반도 평화 조성의 기회를 이용해 미국 역시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미국 측에 주지시키고, 북한이 평화적으로 경제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미국을 이끄는 것은 우리 정부의 몫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뚝심 있는 자세로 정책을 밀고 나가는 게 필요함은 물론, 대북정책의 불안정을 극복할 수 있는 탄탄한 외교·안보 팀의 구성이 필수적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협력 끌어내는 것 가능
국내 여론의 추이도 중요한데,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한 비판적 의견과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단일팀 구성 반대 등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대통령 지지도 하락으로 나타났다는 분석도 있었고요.
“이 같은 비난 여론은 수구 언론들이 조장한 바가 큽니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부정적 보도는, 이미 청산됐어야 할 친일·냉전·반공 세력이 보여준 마지막 반발이라고 봐야 해요. 청년들의 문재인 정부 지지도가 올림픽 직전에 떨어진 것도 원인 분석이 잘못됐습니다. 기성세대에 대한 청년들의 불신은 경제적 양극화,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는 절망감, 상대적 빈곤 상태 때문에 빚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들은 마치 정부의 평화정책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결정적 원인인 것처럼 보도하고 있습니다. 청년층의 단일팀 반대 의견 등을 빌미로 기존의 냉전적 사고방식을 뒤엎으려는 정부 정책을 공격하는 데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들과 올바른 통일관을 공유하고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의 이념적 색깔론은 다름 아니라 권위주의적 문화가 빚어낸 남북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려줘야 합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흔히 진보 세력을 ‘친북’이라 몰아세우지만, 사실상 현재 북한 정권 유지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보수주의자들입니다. 남쪽의 반민주적 지도세력과 북쪽의 극좌 맹동주의자가 서로를 ‘악마’로 규정하면서 상대를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죠. 그런데 이런 적대감이 오히려 상대방을 내부적으로 더욱 결속시키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결국 이적 행위를 하는 셈입니다. 어떤 세력이, 어떤 행동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진짜 ‘친북’인지 국민들이 올바로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는 앞으로 남북관계는 이와 같은 ‘이념’의 잣대로 개선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해답은 ‘경제’다. 한국의 자본 및 기술력과 북한의 자원 및 양질의 노동력을 결합한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이야말로 남북관계 개선의 열쇠라고 그는 진단한다. 이뿐만 아니라 남북 경제공동체 구성은 한국의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돌파구가 되기도 한다.
“현재 북한의 인프라는 엉망입니다. 경제공동체 형성을 통해 북의 인프라 구축에 우리 중소기업 등이 참여하면 우리 사회에도 취업 기회가 크게 늘어납니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죠. 기업뿐이 아닙니다. 미국이 케네디 정부 때 ‘평화봉사단’을 만들어 전 세계에 미국의 젊은이들을 파견했듯이 우리 정부도 이제 이런 단체를 통해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데 주목해야 합니다.”
경제공동체 형성이 남북관계의 열쇠
기업이나 정부 외에 시민사회에서 통일을 위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제안해주신다면?
“내가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일할 때 해보고 싶었지만 끝내 실현하지 못한 사업이 있습니다. 이북5도위원회 등을 중심으로 월남한 인사들이 헐벗은 북한의 고향 산을 푸르게 만드는 운동입니다. 자신의 고향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금전적으로 도울 수도 있고, 직접 고향을 방문해 나무를 심을 수도 있고요. 유실수와 같은 나무를 심으면 경제적 효과도 있기 때문에 북한 정부에서도 환영할 만한 프로젝트입니다. 그 외에 민간 차원에서 북한에 초등학교, 병원을 세워주고 심장병 어린이를 돕기 위한 인도적 운동을 펼칠 수도 있겠고요.”
한 전 총리는 이와 같이 선한 의지를 갖고 ‘선제적으로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힘과 무력으로 제압하는 ‘선제적 공격’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는다.
“‘평창 피스 프로세스’ 이후 스포츠, 문화, 인도주의 등 각 분야에서 시민사회가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야 합니다. 사회 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이 앞장서서 해나가고, 정부에 제안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