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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아시아 중시정책’과 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충돌 美 ‘아시아 중시정책’과
中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충돌

남중국해를 둘러싼 중·일 갈등이 대만과 미국은 물론 필리핀 등 인접국들까지 확산되고 있다. 영토 문제가 국제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특히 한반도 통일 환경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살펴본다.

바다는 육지에 딸린 것으로 바다 그 자체만으로는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인접한 육지나 섬을 관할하는 자가 바다를 지배하게 된다. 바다는 육지의 아들인 것이다. 바다를 확보하기 위해 수역에 인접한 땅과 섬의 소유(영유)가 중요해졌다. 한일 간의 독도 문제 역시 같은 맥락이다.

1982년 5월 성립된 해양법협약에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인정되면서 바다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근대 이전 직접적인 관할권이 모호했던 섬의 영토주권을 둘러싸고 동아시아가 격랑에 휩싸여 있다. 특히 남중국해(South China Sea)는 중국 및 연안 국가들이 각자 관할권을 갖고 있음을 주장하고, 미국이 자유항행을 천명하면서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다. 남중국해를 자국의 영해라고 주장하는 중국과, 주변국 및 미국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가고 있다.

남중국해는 말라카 해협, 롬복(Lombok) 해협, 순다(Sunda) 해협으로 통하는 해상 루트이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수입하는 석유의 70% 이상, 세계 교역량의 50%가 통과하는 이 해역은 경제·군사적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이 해역에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양의 천연자원은 연안국(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 7개국) 간에 이곳 도서에 대한 귀속권과 해양경계선 획정을 둘러싼 분쟁을 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중국의 팽창

남중국해 분쟁은 중국이 1947년 U자 형태의 9개 선(九段線)을 중심으로 남중국해 전체에 대해 관할권을 주장한 데서 출발한다. 그 후 연안국 간에는 이 해역의 도서 영토주권을 둘러싸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으나, 2002년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1 정상회의에서 남중국해 분쟁 해결을 위한 행동규범(Code of Conduct in South China Sea)에 합의하면서 다소 소강상태를 보였다. 중국이 분쟁을 미루고 공동 개발 전략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오바마 정권이 아시아 중시정책(Asia Pivot Policy)을 전개하면서 남중국해는 국제적 분쟁지역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2011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개막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세력으로서 이 지역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시기 힐러리 미 국무장관은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에 실린 ‘미국의 태평양 세기(American’s Pacific Century)’라는 글에서 아시아와의 관계 강화를 강조하면서 이를 뒷받침했다.

아시아 중시정책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압도적 우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것이나, 이를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중국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고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아시아로 회귀한 것이다.

이에 대해 2012년 1월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은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고, “태평양은 미국과 중국이 나눠 써도 충분할 만큼 넓다”며, 미국의 아시아 회귀에 반발했다. 서태평양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보장과 함께 미국의 동아시아에 대한 접근 불용(接近不容)을 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남중국해에 대한 지배권 확보를 둘러싸고 구체화되었다.

중국의 남중국해 불법 점유를 규탄하는 베트남 교민들.중국의 남중국해 불법 점유를 규탄하는 베트남 교민들.

미국에게 남중국해는 아시아의 군사기지와 중동지역, 인도양을 연결하는 세계 전략의 요충지이자 중국 견제의 길목이며, 이곳에서의 자유항행의 확보는 미국 군사력의 아시아 침투에 필수적 사항에 해당한다. 반면 중국 입장에서는 남중국해의 주요 해협은 중국 해군이 대양으로 진출하는 통로이며, 경제 발전을 지속하기 위한 무역로이다. 남중국해는 중국의 세계전략의 하나인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의 해상 실크로드의 출발선이다. 또한 이 해역에 매장돼 있는 자원은 중국의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중국에게 남중국해는 군사적, 경제적으로 핵심이익(Core Intertest)이 걸려 있는 곳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남중국해는 미국과 중국의 세계전략(패권) 즉, 미국의 아시아 회귀와 중국의 해상 실크로드가 직접 맞부딪치는 곳이 되었다. 중국이 누가 봐도 무리하게 보이는 남중국해 전체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공세는 2013년도부터 파라셀 군도(시사 군도)와 스프래틀리 군도(난사 군도)를 중심으로 인공섬을 건설하면서 표면화됐다. 중국은 2013년 존슨 암초(赤瓜礁)의 매립을 시작으로, 2014년에는 피어리 크로스 암초(永暑礁)와 수비 암초(渚碧礁), 미스치프 환초(美濟礁) 등 7개 암초의 매립에 착수했다. 특히 미스치프 암초는 필리핀에서 130㎞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3000m의 활주로와 4개의 격납고도 갖췄다.

남중국해 인공섬과 중재재판소 판결

중국의 인공섬 건설에 대해 2015년 1월 미국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연안국들과 함께 중국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중국은 남중국해를 지키기 위한 군사상 필요성을 역설했다. 7월부터는 일본도 중국의 인공섬 건설과 군사기지화는 공해(公海)에서의 비행의 자유와 항행의 자유를 위협한다고 경고하면서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10월에는 미국은 ‘항행의 자유’ 작전을 전개해 중국의 인공섬 12해리 내에 이지스구축함을 진입시켜 인공섬을 무력화하는 군사행동을 취했다.

한편 필리핀은 2013년 1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관할권을 부정하는 취지로 중국을 국제중재재판소(PCA)에 제소했다. 2016년 7월 국제중재재판소는 중국의 9단선과 인공섬을 부정함으로써 중국의 남중국해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중국은 영토주권과 해양권익은 중재재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며 인공섬에 미사일을 배치하고, 근접방공시스템(CIWS)를 설치하는 등 더욱 공세적인 조치를 취했다. 9월에는 남중국해에서 러시아와 합동 군사훈련도 실시했다. 2016년 12월 26일에는 중국 최초의 항공모함 랴오닝호를 황해와 서태평양을 거쳐 남중국해에 파견했다.

중국이 남중국해 난사 군도 융수자오 섬에 건설한 군사시설.중국이 남중국해 난사 군도 융수자오 섬에 건설한 군사시설.

국제사회는 중국에 대해 법의 지배와 항행의 자유를 요구하고, 미국과 일본은 무력으로 중국 견제에 나섰다. 2015년 4월 미국과 일본은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고, 일본 해상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남중국해로 넓혔다. 2016년 6월에는 미국, 인도와 함께 말라바르 훈련을 실시하고, 인도네시아와는 ‘코모도 2016’ 훈련을 벌였다.

일본은 2017년 1월에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베트남에 순시선 6척을 제공하겠다고 밝혔으며, 6월에는 인도, 미국과 함께 실시하는 연합훈련에 준항공모함 이즈모를 파견하기로 했다. 미국은 2017년 2월 18일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를 남중국해에 파견해 해상훈련을 실시했다. 그 후 칼빈슨호는 오키나와 부근에서 일본 해상자위대와 연합훈련을 하고, 3월에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에 참가했다. 그리고 미국은 얕은 수심과 복잡한 해로를 가진 남중국해의 지형에 적합한 연안 전투함 두 척도 싱가포르에 배치했다.

남중국해와 한반도

이처럼 남중국해는 중국의 핵심이익과 미국의 항행의 자유가 직접 충돌하는 격전장이 됐다. 국방력 강화를 통한 힘의 지배를 추구하고 있는 미 트럼프 정권의 남중국해 정책은 더욱 강경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 의회는 2017년 국방수권법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군 장성 교류를 포함해 대만과의 군사교류 강화조치를 취했다. 트럼프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부정하고 대만과 관계 강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도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무역 마찰을 비롯해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예견되는 가운데, 그 시작은 남중국해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 국무장관에 지명된 렉스 틸러슨은 1월 11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미국은 “인공섬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위해 동남아시아에서 종래의 동맹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2017년 2월 미 항공모함 칼빈슨호가 남중국해서 군사시위를 하고, 오키나와에서 자위대와 합동 군사훈련을 가진 후 한미 연합 독수리훈련에 참가한 것은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남중국해에 대한 인접국가들의 영유권 주장 지도남중국해에 대한 인접국가들의 영유권 주장 지도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아세안을 비롯한 전통적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미국과 보조를 맞춰 이 지역의 분쟁 구조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한국도 이 지역의 안전을 위한 미국의 행동에 동참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있다. 말라카 해협은 한국이 석유와 수출입 물자를 수송할 때 꼭 거쳐야만 하는 생명선이고, 한미동맹을 고려하면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중국해의 도서 귀속과 관할권을 둘러싼 연안국들의 갈등은 실질적으로는 미·중의 대결로 귀결되었으며, 이는 동아시아에서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냉전 구도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관여는 중국과의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의 통일에 결코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북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균형 잡힌 군사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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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 환
계명대 인문국제학대학 교수
일본 쓰쿠바대 정치학 박사. 대한정치학회 부회장, 동아시아일본학회 회장,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역임. 현 국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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