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신문 기사에 난 김정남 암살 사건 노동당과 군부 주도권 경쟁
이번 암살은 해외정보국 작품

북한 최고 권력자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테러로 사망했다. 북한의 대남공작 체계를 살펴보고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특징을 대조함으로써 김정남 암살을 실행한 대남공작조직이 어디인지를 분석해본다.

지난 2월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출국 수속을 하던 김정남이 2명의 외국인 여성에 의해 살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진 2명의 여성이 손에 젤 같은 물질을 바른 상태에서 장난하듯 김정남의 얼굴을 문질렀고, 김정남은 그로부터 15~20분 만에 사망했다.

백주에 수많은 인파가 붐비는 국제공항 청사 안에서 장난스러운 행동에 의해 김정남이 암살된 것을 두고 여러 가지 추측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번 김정남 암살을 계기로 북한의 대남공작 및 테러 전문 조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 북한 대남공작부서에 근무했던 필자의 관점에서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특징과 함께 북한의 대남공작조직을 살펴봄으로써 어떤 공작부서가 김정남 암살을 실행에 옮겼는가에 대해 분석해보려고 한다.

김정남 암살은 제3자를 고용해 테러 대상을 제거하는 고전적인 ‘청부살인’ 수법에 ‘장난’이라는 형식을 가미한 새로운 테러 수법이라는 특징이 있다. 일반적으로 청부살인은 제3자(살인범)를 고용해 대상을 제거하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제3자에게 제거 대상을 미리 알려주고 그에 상응한 대가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며, 따라서 살인범은 본인의 행위가 상대를 죽이는 행위라는 점을 사전에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암살 수법을 살펴보면 고전적인 청부살인 방식과 차이가 있다. 암살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2명의 여성들이 장난 비디오 출연료 정도의 보잘것없는 대가를 받고 자신들의 행위가 상대(김정남)를 죽이는 행위라는 것도 모르고 가담했고, 그 결과 암살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청부장난살인’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암살 방식으로 부르는 것이다.

북한이 외국인 여성들을 활용한 ‘청부장난살인’ 방식으로 김정남을 암살한 것은 국제사회의 공격과 비난을 조금이라도 모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는 무엇보다 과거처럼 북한 공작요원이 직접 테러 행위를 감행하다 덜미가 잡힐 경우 북한이 직접적으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에 노출될 수밖에 없지만 외국인들은 잡히더라도 북한에 직접적인 화살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항시적으로 테러 위협에 시달리는 김정남에게 가까이 접근하는 데는 북한인보다는 외국인이, 같은 외국인이라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훨씬 용이했을 것이라는 판단도 외국인 여성을 고용한 이유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자행한 각종 테러 행위의 이면에는 대남공작부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북한의 대남공작부서는 말 그대로 남한을 적화통일하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북한 대남공작부서는 잘 훈련된 특수공작요원들을 보유하고 있어 남한은 물론 해외에서도 각종 테러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통일전선사업부와 정찰총국이 테러와 대남공작 주도

현재 북한의 대남공작조직은 크게 노동당과 군부 등 2개 기관에 포진돼 있다. 노동당 내에는 통일전선사업부(약칭 통전부)와 문화교류국이 있고, 군부 소속으로는 정찰총국이 있다. 노동당 대남공작기구인 통전부는 부서 개편 등 다소 변동은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대남 선전 및 통일전선 공작을 전개해오고 있다. 이와 함께 각종 형태의 남북대화와 교류, 대남정책 수립과 남북관계 전반을 관장하는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는 부서라 할 수 있다.

노동당 문화교류국은 그동안 연락부→사회문화부→대외연락부→225국→문화교류국 등으로 명칭이 바뀌어왔다. 남한 및 해외에 공작원들을 파견해 현지에서 반미·반정부, 친북인사들을 포섭한 다음 그들을 통해 남한 내에 지하당과 대중단체 등을 구축하는 대남 조직공작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필요한 경우 테러와 암살 등 특수공작 임무도 수행하는 전천후 공작부서다. 1983년 9월 대구에서 발생한 대구 미 문화원 폭파사건을 주도하고 1997년 2월 분당에서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을 암살한 공작원들이 문화교류국 소속이다.

김정남 살해 용의자들

2009년 초에 신설된 북한군 정찰총국에는 여러 개의 공작부서들이 있다. 대표적인 부서인 정찰국은 대남·대미 군사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로, 기존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국군 내부 와해 및 동조자 포섭 등의 대남공작과 대남도발, 테러 공작도 전개하고 있다. 정찰국 요원들이 감행한 대표적인 테러 행위가 1968년 김신조 등에 의한 1·21 청와대 습격 미수사건과 1983년 10월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그리고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등이다. 또한 지난 2010년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 씨를 암살하기 위해 3명의 공작조가 탈북자로 위장하고 침투했다가 검거된 바 있는데, 이들도 정찰국 소속이었다.

정찰총국이 신설되면서 편입된 작전국은 원래 ‘작전부’ 명칭을 갖고 있던 노동당 대남공작부서였다. 남한이나 해외에 침투하는 공작원들을 현지까지 안전하게 안내하는 호송 임무와 납치 등을 담당하던 부서인데, 이들은 필요하다면 테러와 암살 등 특수 임무도 수행한다.

또한 ‘해외정보국’ 역시 작전부와 같이 노동당 ‘35호실’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가 정찰총국으로 이관된 공작부서이다. 35호실은 해외 각국에 공작원을 파견해 북한의 대내외 및 대남 정책 수립에 필요한 각종 정보 수집과 요인 테러 및 납치 등을 전담하는 부서였다. 해외정보국이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및 ‘35호실’ 명칭을 갖고 있던 시절에 감행한 대표적인 테러 공작이 신상옥·최은희 납치 공작과 김승일·김현희에 의한 KAL기 폭파사건이다.

이 밖에 북한은 국가보위성에 반탐국과 대외정보국, 남조선국 등을 설치하고 이 부서들을 통해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방첩 업무를 주 임무로 하고 있는 국가보위성과 북한군 보위사령부가 탈북자를 이용한 테러 및 정보 수집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정남 암살 공작부서는 해외정보국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공작부서가 이번 김정남 암살 작전을 실행한 것일까. 지금까지 알려진 자료를 종합해보면 총 10명이 김정남 암살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각각 베트남 및 인도네시아 국적을 가진 여성 2명과 말레이시아 경찰에 검거됐다가 추방된 북한 국적 리정철, 북한으로 도주한 오종길·리재남·리지현·홍송학, 그리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 2 등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 김욱일, 북한 국적 리지우 등 북한인 8명이다.

8명이 조직적으로 암살에 가담했고, 또 이들이 신속하게 북한과 말레이시아를 오가며 치밀하게 실행에 옮겼다는 점에서 정찰총국 소속 해외정보국일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북한 대남공작부서 가운데 유일하게 해외정보국이 테러를 전문으로 하는 공작조를 운영해왔기 때문이다.

해외정보국은 전신인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시절부터 ‘테러조’를 만들어 운영해왔다. 대외정보조사부는 1984년부터 해마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 졸업생 가운데 다방면적으로 능력이 뛰어나고 특히 격술(擊術)을 잘하는 5, 6명의 인원을 선발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 교육과 함께 사제폭탄 제조법 및 강도 높은 육체훈련을 실시했다. 실제로 필자의 선후배와 동기생 여러 명이 테러조에 선발돼 훈련을 받은 바 있다.

(좌)북한군 정찰총국이 주도한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에 사용된 잠수함. (우)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좌)북한군 정찰총국이 주도한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에 사용된 잠수함. (우)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또한 암살에 8명이 투입돼 유기적으로 움직였다는 점도 해외정보국 요원들이 임무를 수행했다고 보는 이유이다. 문화교류국의 경우 테러 전문 공작조가 없으며, 특히 1개 공작조의 인원이 기껏해야 2명이라는 점에서 8명이 유기적으로 움직인 이번 사건과는 활동 방식이 맞지 않는다. 기존 정찰국 요원들이 대부분 현역 군인들이고 일부 인원들이 해외에 무관으로 파견돼 활동한다는 점에서, 또 작전국 요원들은 대남 침투 위주여서 해외에서의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번 테러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낮다.

이렇게 볼 때 김정남 암살을 앞두고 말레이시아에 각각 입국했다가 사건 발생 후 신속하게 북한으로 도주한 오종길, 리재남, 리지현, 홍송학 등 4명이 김정남 테러를 주도한 해외정보국 소속 공작요원일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인원들은 구체적 임무를 모르는 상태에서 상부 지시에 따라 단순히 지원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한편 북한군 정찰총국장이던 김영철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 기용된 후 정찰총국 소속이었던 해외정보국을 노동당 산하로 다시 편입시켰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사실이라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의 주범인 김영철이 이번 김정남 암살작전을 주도한 셈인데, 김영철의 호전적인 기질을 볼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다.

이번 김정남 암살사건으로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측근들은 물론 자신과 피를 나눈 혈육까지도 사정없이 제거하는 김정은이야말로 둘도 없는 잔인한 독재자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김정은이 자신의 이복형까지 잔인하게 암살한 것은 오히려 김정은 세습정권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이 세습체제 유지를 위해 이복형까지 백주에 암살하는 반인륜적 잔학 행위를 감행했으나 이는 오히려 김정은 체제를 붕괴시키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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