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개발이 한반도 및 동북아 정세를 격랑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다. 한국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등 대북 대응전력의 조기 전력화에 노력하고 있으며 사드 배치도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대북 선제타격과 전술핵 한반도 재배치 등을 포함한 모든 옵션을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한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핵 개발은 반대하지만 한반도 사드 배치는 철회돼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반도 사드 배치가 실제로는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력을 견제하는 수단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 도발로부터 촉발된 한반도의 갈등과 대립이 동북아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들어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에 제4차 및 제5차 핵실험을 통해 핵의 다종화, 경량화, 규격화 등에 성공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북한은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사거리 3000km 이상의 무수단 미사일 시험발사를 8번이나 실시했으며 8월에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또한 북한은 지난해 3월 미사일 고체로켓엔진 지상실험 성공을 주장하더니 올해 2월에는 고체연료 중·장거리미사일(IRBM) 시험발사 성공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은 이러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먼저 올해 말로 예정되었던 사드 배치를 앞당기고 있다. 그 결과 사드 포대 구성품인 발사대 일부가 한국으로 이송되었다. 한편 한국은 올해 안에 한국형 대공방어미사일인 MSAM의 체계 개발을 완료하고 2020년까지 실전 배치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북한 핵·미사일의 또 다른 표적인 일본도 감시위성의 확대를 추진하고 일본 내 사드 배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편 일본은 이러한 동북아 안보 환경 변화를 자국의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정상국가화’하는 계기로 활용하려 한다.
세컨더리 보이콧 통한 중국 압박
최근 북한이 벌인 일련의 핵 도발 움직임에 대해 가장 당황한 나라는 미국일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목표로 하는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핵 개발이 미국에 치명적인 것은 ICBM 시험발사 성공일 것이다. ICBM 발사 성공은 북한의 미국 본토 핵 타격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해 북한 핵 도발 대응을 위한 미국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대북 선제타격을 주장하는 사람이 늘고 있으며, 중국에 대한 강한 압박을 통해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도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기간 동안 나타난 트럼프의 주장을 통해 새로운 대북정책의 일단을 예상할 수는 있다. 첫 번째 정책은 대중국 압력 강화를 통한 대북 문제의 해결일 것이다. 트럼프 후보는 선거기간 동안 중국에 대한 압박을 통해서 대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중국은 북한에 대한 설득과 압력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에 미국은 중국이 북핵 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서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출범과 함께 이러한 생각이 정책에 반영되는 듯하다, 미국의 대중국 압박이 강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작은 북한과의 불법 거래에 참여한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조치 발동이다. 미국은 지난 3월 7일 미국 기술이 포함된 휴대전화와 휴대전화 네트워크 장비 등을 북한에 불법 판매한 중국의 통신 장비업체 ZTE에 대해 약 11억9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이는 제재 위반과 관련해 미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부과한 벌금 중 가장 큰 규모다. 한편 미국은 또 다른 중국 기업인 화웨이의 유사 혐의에 대해서도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서 처벌 대상 중국 기업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월 20일 중국을 방문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고 있다.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 발동도 고려하고 있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중국에 매우 치명적인 대북 제재 수단이다. 불법 거래 여부와 상관없이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이 엄격하게 실행될 경우 수많은 중국 기업이 북한과의 거래를 중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대중 압박은 동시에 두 가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첫째는 중국이 대북 제재에 좀 더 충실하도록 만들 수 있다. 둘째는 한반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대한국 압박을 완화시킬 수 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이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만약 한반도 사드 배치 당사자 중 하나인 미국이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중국의 대한국 보복을 완화시킬 수만 있다면 한미동맹 강화의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두 번째 정책은 선제타격을 포함한 군사적 옵션의 추진이다. 상당수 미국 정·관계 인사들은 북한 핵 도발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실효적인 수단이 선제타격이기 때문에 대북 선제타격 옵션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쉽게 실행할 수는 없다. 전면전 확대 가능성 때문이다. 하지만 선제타격은 그 옵션을 배제하지 않고 실행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대북 압박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는 대중국 압박 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다. 안정적 성장을 원하는 중국 역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방 삼각동맹과 남방 삼각동맹의 부활
이와 같은 한국과 미국의 조치에 대한 중국의 반응은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북한에 핵 개발 중단을 요구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준수를 다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연합 군사훈련의 중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국은 자국 국가이익을 내세워 대북용이 명백한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중지 또는 철회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중국 소재 한국 기업에 대한 불공정 규제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 와중에 사드 배치 반대를 공동의 목표로 중국, 러시아, 북한의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듯하다. 그 결과 냉전 이후 사라진 중국, 러시아, 북한을 한 축으로 하는 북방 삼각동맹과 한국, 미국, 일본을 또 다른 축으로 하는 남방 삼각동맹이 다시금 부활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근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상당히 소원했다. 북한 핵 개발과 그에 따른 중국의 대북 제재 때문이다. 이를 반영해 김정은 집권 이후 5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북·중 정상회담이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상당히 예외적인 일이다. 더불어 양국 고위급의 왕래도 거의 없는 형편이다. 2015년 10월 북한 노동당 창건일 기간 동안 류윈산 당 정치국 상무위원의 방북과 2016년 2월 제4차 핵실험 직후 우다웨이 6자회담 수석대표의 방북을 제외하고 최근 중국 고위직의 북한 방문은 없었다. 한편 2016년 6월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에게 제7차 당대회 결과를 설명한 것과 2017년 1월 최희철 외무성 부상이 방중한 것 이외에 북한 고위급의 방중도 없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은 매우 위험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사드 배치 반대와 관련해 중국과 북한의 연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6년 7월 라오스에서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기간 동안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양자회담에서 공동 관심사를 논의한 바 있는데 이때에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도 논의된 듯하다. 양국 외교장관회의가 2년 만에 재개되었음을 고려할 때에 사드 문제를 연결고리로 북·중 협력이 재개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지난 2월 28일 중국 정부 초청에 따른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방중 역시 사드 배치에 대응해 북·중·러 연대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시도로 보인다.
중국은 박근혜정부 초기 한국과의 유대관계 강화를 통해 한반도 사드 배치를 저지하려 했다. 여러 차례의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의 협력을 모색했으며 2015년 전승절 열병식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적극 배려함으로써 한중 간 유대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중국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면서 사드 배치를 미뤘기 때문이다. 한중 간 밀월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지속될 수 없었다. 북한이 제4차 핵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급해진 한국은 무엇보다 안보를 우선할 수밖에 없었고 미국과 한반도 사드 배치에 합의하게 됐다. 그 결과는 한중관계의 급속한 악화였다.
북핵은 동북아의 핵심 안보 이슈
동북아의 핵심 안보 이슈는 북핵 문제다. 따라서 북핵을 반대하는 모든 나라들 즉,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및 러시아 등 동북아의 모든 국가들이 북한에 대응해 협력적 행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현실 국제정치와 각국의 이익 충돌이 이를 막고 있다. 앞서 살펴본 사드 배치에 대한 이해의 충돌과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및 일본 그리고 중국과 미국의 대립과 갈등이 역내국가 간의 협력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 위협이 급속히 증가함에 따라 미국 및 중국에서 북핵 문제의 우선순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북핵 문제가 아직도 양국 국제정치의 최우선 과제가 아닌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의 북핵 문제 대응은 여전히 미·중관계를 전제로 고려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미·중관계는 향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대립적일 것 같다. 트럼프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가 경제 및 안보 분야에서의 대중국 압박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동북아의 일치된 대응을 기대하는 것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대북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현재의 국제정치 환경 속에서 우리가 추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인 듯하다.
조 남 훈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미국 브라운대학교 경제학 박사 수료. 국방부 장관정책보좌관,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 센터장 역임. 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북한군사연구실 책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