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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절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만수대 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고 있다.

태양절을 맞아 북한 주민들이 만수대 언덕에 있는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고 있다.

3대 세습 정당화 위해
김일성 생일 최대한 활용

북한에서 4월은 가장 바쁘고 중요한 달이다. 4월 15일은 김일성의 생일로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이고, 4월 25일은 건군절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생일 105주년, 김정은 세습 5주년을 맞은 올해 북한 주민들은 더 바쁘고 힘든 4월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해마다 4월이면 봄의 문턱에서 형형색색의 꽃들이 지천에 피어난다. 진달래와 벚꽃이 만개해 계절의 싱그러운 변화를 여지없이 느낄 수 있는 때가 바로 이맘때다. 한겨울 내내 얼어 있던 땅이 녹고 푸른 신록들로 마음까지 설레는 계절이다. 계절의 싱그러움만큼이나 4월은 새로운 출발과 기대로 가득한 날들로 기억된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4월 하면 최대 명절로 기념되며 정치적으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은 행사들로 채워진다. 4월 15일은 김일성의 생일로 북한의 최대 명절인 태양절로 기념하며, 4월 25일은 건군절로 의미를 부여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북한 사회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은 국가 명절로 지정돼 북한 주민들에게 충성심과 체제결속력을 다지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된다. 이미 사망한 지도자의 생일이 국가적 차원의 최대 명절로 기념되는 것이다. 매년 김일성의 생일을 맞는 4월이면 북한에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한 대대적인 행사가 국가적 차원에서 개최되었다.

북한에서는 특히 5년, 10년 단위를 주기로 이른바 꺾어지는 해를 기념하는데 2017년은 김일성 생일 105주년이며 건군 85주년을 맞는 해다. 더욱이 올해는 김정은 집권 5년 차를 맞는 해로 다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일성의 생일인 4월 15일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3년이 지난 1997년에 ‘태양절’로 제정됐다. 북한 주민들에게 정권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강조하는 ‘유일사상 10대원칙’에 따르면 김일성은 무오류에 기초한 신과 같은 존재다. 그런 김일성의 사망은 북한 주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고, 북한 정권으로서는 김일성의 사망이 곧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게 아니라 영생불멸한 지도자의 존재로 영원하다는 정치적 이미지가 필요했다.

결국 김일성 사망 3년이 지난 시점에 태양절이라는 이름으로 국가 명절을 지정하고 이날을 대대적인 축제일로 승화시켜 김정일로 이어지는 세습 독재의 명분을 강화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을 ‘주체의 영원한 태양’이라 칭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태양절은 정권의 지속성과 체제 결속을 다지고 우상화하는 최대의 정치적 선전 수단으로 활용된다. 김일성이 육체적으로는 사망했지만 사상적으로는 영원불멸한 존재로 주입되어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태양절, 정권 정당성·우상화 위한 정치 선전 수단

김정일 시대에 들어 태양절은 정치적인 의미로 격상돼 대대적인 행사와 축제 등으로 치러졌다. 태양절을 기념해 4월 한 달 동안 ‘4월의 봄 인민예술축전’과 태양절 경축 서예축전, 국가산업미술전시회, 김일성화 전시회, 국제마라톤 대회 등 대내외적인 각종 행사가 개최됐다.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은 김일성 생일 70돌을 맞은 1982년부터 시작돼 해외 각국의 예술인들을 초청해 공연을 개최하고 있다. 김일성이 세계의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정치적 의미를 담아 세계 각국의 예술인을 초청해 공연을 개최한다. 축전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국제·국내 콩쿠르 수상자들과 이름 있는 명배우들로 구성된 예술단, 무용단, 교예단 그리고 해외동포 예술단들이 참가한다.

북한의 내면을 담은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북한의 내면을 담은 다큐멘터리 ‘태양 아래’.

국제마라톤 역시 태양절을 기념해 개최되는 대표적인 국제 행사 중 하나다. 한때 태양절을 기념해 북한을 방문하는 해외 여행상품이 판매될 정도로 태양절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정치적 의미는 남다르다 할 수 있다.

김일성의 생일을 기념해서 태양절을 제정하고, 이를 통해 대내외적으로 김일성이 절대적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4월에는 3대 세습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북한 주민들의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전과 다른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됐다. 무엇보다 김정은 집권 초반기인 지난 2012년은 김일성 생일 100년을 맞는 해로 대대적인 열병식까지 열었다. 이 열병식에서 북한은 이전에 한 번도 시험발사한 적이 없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는 김정은 집권 초기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고 이전 김정일 시대로부터 강조되었던 선군정치를 이끌어가는 강력한 지도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태양절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화 전시회.태양절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김일성화 전시회.

김정은 집권 5년 차를 맞는 2017년 4월은 북한 정권에서 보면 더욱 그 의미가 남다르다. 4월 11일과 13일은 각각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추대 5주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정은으로서는 지난 5년간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면서 강력한 지도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나이 어린 젊은 지도자에 대한 반감을 잠재우고 3대 세습에 대한 정당성을 확고히 구축하기 위해 태양절 행사는 백두혈통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외정세 역시 북한 정권으로서는 급변하는 상황적 변화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북핵 문제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예고하면서 ‘전략적 인내’는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맞는 4월 태양절은 국내적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독려하고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과시를 통해 체제 유지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려 할 것이다. 결국 2017년 4월 태양절을 맞는 북한은 이날을 지난 김정은 시대 5년에 대한 총체적인 성과를 한 번에 보여주기 위한 정치의 장으로 이용할 것이다.

김정은이 태양절을 맞아 금수산 태양궁전을 방문하고 있다.김정은이 태양절을 맞아 금수산 태양궁전을 방문하고 있다.

국가 최대 명절로 지정된 태양절답게 4월 한 달간은 대대적인 행사로 축제 분위기가 조성되지만 사실 북한 주민들에게 4월은 동원과 성과 달성에 따른 부담으로 힘겨운 시기가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3월 16일 조선중앙TV는 김정은이 평양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방문한 내용을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에 맞춰 완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정은이 건물 안에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김정관 인민무력성 부상,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국장 등의 보고를 받으며 창밖을 바라보는 사진에서는 김정은의 외투 복부 부분에 흰색 페인트가 묻어 있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여명거리 건설 현장을 찾아 “태양절까지는 이제 30일밖에 남지 않았다”며 “전체 건설자들이 마지막 결승선을 향해 질풍노도처럼 내달림으로써 여명거리를 노동당 시대의 기념비적 창조물로 훌륭히 일떠세우자”고 독려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인민군 창건 경축 중앙보고대회.조선인민군 창건 경축 중앙보고대회.

싱그러운 봄을 즐기는 4월은 언제쯤일까

평양 여명거리는 김정은 시대의 최대 성과로 자랑하는 것 중의 하나로 ‘인민생활 향상’을 위한 초고층 살림집(아파트) 등을 조성하고 있는 곳이다. 김정은의 지시로 지난 2016년 4월 초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인근에 착공한 아파트로 김일성종합대학 교육자를 비롯한 과학자, 연구사들이 살게 될 살림집과 탁아소, 유치원, 세탁소 등의 공공건물로 짓고 있는 곳이다. 이번 태양절에 맞춰 평양의 중심부에 자신의 업적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건축물을 보여주려 하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4월 25일 건군절 85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미국을 겨냥한 ICBM과 핵실험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 가능성도 예고되고 있다. 이는 결국 김일성과 김정일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음을 대내적으로 강조하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인민군 창건 경축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한 북한 군인들. 조선인민군 창건 경축 중앙보고대회에 참석한 북한 군인들.

사망한 지도자의 생일을 국가의 최대 명절로 지정하고, 또 그 후계자가 생일에 맞춰 자신의 권력 승계를 정당화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개최하는 북한 사회의 모습 이면에는 강제적 동원으로 힘겨워하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담겨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도 4월 그 찬란한 계절의 시작이, 한 사람을 위한 태양절로 기념하는 달이 아니라 새봄의 전령사로 맞이하는 날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해본다. 통일시대 봄처럼 싱그러운 4월의 한반도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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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동 완
동아대 정외과 교수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통일부 남북협력기금 심사위원 역임. 현재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국무조정실 국정과제평가위원,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 통일문화연구원 연구기획실장. 저서 <사람과 사람 : 김정은 시대 북조선 인민을 만나다>, <한류, 북한을 흔들다>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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