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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집권 6년 동안 
당·정·군 간부 수백 명이 숙청됐다.

김정은 집권 6년 동안 당·정·군 간부 수백 명이 숙청됐다.

숙청 통해 권력 강화하는 공포정치
‘백두혈통’ 불문율까지 무너져

김일성, 김정일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정적을 숙청했지만 소위 ‘백두혈통’은 건드리지 않았다.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이 자행하는 숙청정치의 본질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암살당했다. 여러 증거를 통해 북한이 김정남 암살 배후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북한 당국은 여전히 부인하고 있다. 북한의 김정남 살해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김정남은 이복동생인 김정은이 자기를 살해할 것을 두려워했는지, 편지를 보내서 살려달라고까지 했다. 그럼에도 김정은은 잔인하게 김정남을 살해했다. 김정남 살해로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남은 왜 살해되었는가. 김정남은 김정일과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일성의 맏손자이다. 김정은으로서는 장손인 김정남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을 것이다. 김일성은 첫 손자인 김정남을 매우 귀여워했으나, 김정은은 김일성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한때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해 여러 사람들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지할 정도로 북한 권력 구도에서 주목받았던 인물이었다.

김정은으로서는 이런 김정남의 존재가 눈엣가시 같았을 것이다. 또한 북한 급변사태 같은 유사시에 중국에서는 김정은의 대안 인물로 김정남을 내세우거나, 장성택을 추종했던 세력들이 김정남을 지도자로 추대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심지어 김정남은 김정은의 3대 세습을 반대한다고 공공연히 언급함으로써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렸을 것이다.

한편 김정남은 북한 정권의 해외자금 거래 경로를 잘 알고 있어 혹시나 김정남이 서방으로 망명하면 북한 정권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추정도 있다. 이런 여러 가지 복합적 이유로 김정은은 김정남을 살해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강도 심해지는 공포정치

북한 권력 엘리트층은 김정남의 암살로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은 이른바 북한에서 이야기하는 김일성 직계가족인 ‘백두혈통’이다. 김정일은 이복동생 김평일, 삼촌 김영주, 계모 김성애 등 자신과 권력 경쟁을 벌였던 인물들을 그대로 살려둠으로써 백두혈통은 죽이지 않는다는 일종의 불문율을 지켰다.

2013년에 발생한 장성택의 처형은 매우 충격적이었으나, 그때만 하더라도 장성택은 김일성 직계인 백두혈통이 아니므로 처형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정남 살해는 그 불문율을 깨뜨리면서 백두혈통을 포함한 그 누구도 김정은이 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그만큼 김정은의 공포정치, 숙청정치의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숙청을 통해 권력을 강화하는 공포정치를 펼쳐왔다. 김정은 집권 6년 동안 당·정·군 간부 수백 명이 처형되거나 숙청됐다. 2012년 7월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의 숙청을 시작으로 김정일 운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우동측 등 군부 인사들이 모두 실각하거나 한직으로 쫓겨났다. 2013년 12월 장성택의 처형, 2015년 4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의 처형에 이어 5월에는 김정은이 추진하는 산림녹화 정책에 불만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최영건 내각 부총리가 처형됐다.

2016년 7월에는 김용진 교육부총리가 자세가 불량하고 현대판 종파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총살됐으며, 황민 전 농업상과 교육부 관리 리용진이 처형됐다. 이렇게 처형된 간부들의 친척, 부하,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항상 숙청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일반 주민까지 포함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처형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김정은 시대 숙청은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와 다른 숙청 유형을 보여주고 있다.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도 숙청과 처형은 있었다. 북한의 정권수립기에 권력 기반이 취약했던 김일성은 권력 기반을 공고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간부들을 처형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보냈다. 남로당파, 중국 연안파, 소련파 등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해 김일성 1인 지배 체제를 확립했고, 그 이후에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은 빨치산 내 갑산파와 군부 강경파 등을 차례로 숙청했다. 잔혹한 처형과 고문이 수반된 숙청이었지만, 당시에는 주로 정치적 배경하에 전개된 숙청이었다.

김정은에 의해 숙청당한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우동측 보위부 1부부장,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최영건 내각 부총리(왼쪽부터).김정은에 의해 숙청당한 김정각 인민무력부장, 우동측 보위부 1부부장,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최영건 내각 부총리(왼쪽부터).

김정일 시대에도 1995년 6군단 쿠데타 미수사건처럼 김정일의 권력에 도전하려 했던 조직적인 반김정일 세력들에 대한 숙청이 있었다. 또한 1997년 농업 실패의 책임을 물어 서관희 농업담당 비서를 공개 처형하고 그다음 해까지 수십 명의 고위 간부를 처형한 적이 있었다. 2009년에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을 처형한 바 있다. 김정일 시대에는 정책 실패에 책임을 무는 형태의 간부 숙청이 많았다.

그런데 김일성·김정일 시대 숙청의 특징은 반당, 반종파 사건 등 정치적 사건에 크게 연루되지 않으면, 김일성 집안이나 고위급 인사들 중 일부는 숙청을 당해 지방의 농장이나 공장, 산간벽지에 있다가도 일종의 ‘혁명 교화사업’을 받고 중앙으로 복귀하곤 했다는 점이다.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는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으나, 처형되지는 않고 20여 년 동안 산간벽지에 연금됐다가 다시 평양으로 와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을 맡았다. 1960년대 말 군부 강경파의 김일성 권위 도전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숙청됐던 최광 전 북한군 총참모장도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장성택을 비롯한 김정일 시대 상당수 고위 간부들은 한 번씩 좌천을 겪었거나 혁명 교화사업의 대상이 돼 농장이나 교육기관으로 쫓겨나 교육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기에 김정일에 대해 충성을 바칠 수가 있었다.

개인적 감정으로 숙청

김정은 시대 숙청은 다르다. 김정은 시대에는 어떤 정치적 파벌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 숙청, 정책적 책임을 묻는 숙청보다는 주로 개인적 감정에 근거한 숙청과 처형이 많다. 과거에는 강등이나 근신, 재교육 등의 처벌을 내릴 잘못에 대해 김정은은 해당 간부를 처형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보내버릴 때가 많다. 김정은은 군부대나 산업 현장 방문 시, 권력 엘리트들에 대한 공개적 질타가 일상적이어서 간부급들은 가급적 김정은 옆에 가려 하지 않는다.

특히 김정은은 개인적 관심 사업일수록, 실적 부진자에 대한 강력 처벌과 문책성 인사를 남발했다. 김정은의 공개 질책이 있으면 당 조직지도부의 검열이 이어지고, 해당 관련자는 강도 높은 처벌을 받았다. 예컨대 김정은은 자신이 건설을 지시한 미림승마구락부 현장을 자주 찾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 후방총국장 전창복을 임명한 지 4개월 만에 전격 교체했고, 지방 방문 도중 거리에 쓰레기가 많다고 질책한 뒤 시당 책임비서를 현장에서 해임해 숙청한 일도 있었다. 2015년 초 변인선 총참모부 작전국장과 조영남 국가계획위 부위원장은 김정은에게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는 이유로 숙청됐다.

김일성 동생 김영주(왼쪽)는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 패했지만 처형되지 않았고, 김일성은 최광(가운데)을 숙청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복귀시켰다. 김정일은 이복동생 김평일(오른쪽)을 숙청하지 않았다.김일성 동생 김영주(왼쪽)는 김정일과의 권력투쟁에 패했지만 처형되지 않았고, 김일성은 최광(가운데)을 숙청한 후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복귀시켰다. 김정일은 이복동생 김평일(오른쪽)을 숙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정은은 대회장이나 회의실에서 조는 경미한 사안에 대해서도 징벌성 문책을 직접 지시했다. 김정은은 “중요 회의에서 졸거나 장난하는 일꾼들은 사상적으로 병든 사람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3년 10월 하반기 평양에서 개최된 중대장 정치지도원 대회 때 회의장에서 졸았던 군 간부들을 강등시키거나 해임시켰다. 현영철, 장성택, 김용진의 처형 죄목 중에 졸거나 박수를 건성 치거나, 자세가 삐딱하다는 등의 사소한 사안들이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단순히 김정은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사소한 개인적 이유로 처형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간부들은 불안해하고 심지어 책임을 지는 고위직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숙청정치, 정권 불안 요소로 작용할 것

간부들을 수시로 처형하는 북한의 숙청정치는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공고하지 못하고 김정은 체제가 불안하다는 증거이다. 김정은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간부들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다. 김정은은 연로한 간부들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자기를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는 할아버지, 아버지와 달리 직접 권력을 쟁취해보지 못한 태생적 콤플렉스이자 한계이다.

여기에다가 김정은은 후계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간부들의 성향을 잘 모를 수밖에 없고 그만큼 불안감도 클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은 강력한 지도자라는 점을 과시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펼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숙청정치를 통하지 않고서는 정권이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을 김정은 스스로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김정은식 숙청정치는 권력의 안정을 도모하는 측면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권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동한다. 처형이나 숙청은 지도자의 리더십이 취약할 때 발생하는 경우가 많으며, 숙청정치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체제는 오래 지탱할 수 없다. 현재 지구촌은 개방화·글로벌화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의 가치관은 이미 변했고, 이들의 경제생활은 당과 수령, 정부와 별개의 영역에서 움직이게 된 지 오래이다. 북한 당국이 폐쇄·고립국가를 지향하면서 숙청의 정치를 구사하는 한, 김정은 정권의 미래는 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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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 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고려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등 역임.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남북관계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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