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1호 사진’의 비밀
대중적 지지 원하는 젊은 독재자
군중 나오는 대규모 기념사진 선호
<사진> 1. 김정은이 2013년 6월 8일 리모델링을 마친 평양 기초식품공장을 시찰한 후 공장 종업원들에 둘러싸여 있다. 김정일은 일반인들과의 신체 접촉을 보여주는 사진이 전혀 없었지만, 김정은은 군중 속에 있는 사진이 많다. 대중적인 지도자임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2. 2013년 3월 29일 새벽 김정은이 전략 미사일 부대의 화력 타격 임무에 관한 작전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사격 대기 상태에 들어갈 것을 지시했다는 것을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김정은 책상 오른쪽에 있는 컴퓨터는 미국 애플사의 매킨토시 PC이다. 미국에 메시지를 주기 위한 배치다.
국경을 넘어오는 김정은의 이미지, 우리는 얼마나 잘 읽어내고 있는가.
사진과 영상은 ‘지도자 김정은’의 면모를 연출하고 부각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영상의 본질을 꼬집어줄 힘이 없다는 것이 북한의 결정적인 문제다.
| 변영욱 동아일보 사진부 차장 |
한국과 북한은 광복과 분단을 거치면서 독자적인 체제를 유지해오고 있다. 최고 권력자의 얼굴을 기록하는 사진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사진이 시대별로 조금씩 차이를 보이듯이, 북한의 최고지도자 사진도 달라져오고 있다.
필자는 2003년 개성공단 부지 착공식 취재 이후 북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해, 노동신문 창간호부터 현재까지 지면을 살펴보고 있다. 탈북자와 북한 사진기자들과 인터뷰도 공식, 비공식적으로 가졌다.
북한 인민들은 최고지도자 사진을 ‘1호 사진’이라고 부른다. 최고지도자의 전용 열차를 ‘1호 열차’로 부르거나 전용 도로를 ‘1호 도로’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우리 정부도 2008년부터 김정일, 김정은 사진에 대해 ‘1호 사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사진>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3월 28일 평양 4 · 25문화회관에서 열린 전군 선전일꾼회의를 지도한 뒤 박수를 치며 격려하고 있다. 북한은 군중 속에 있는 김정은을 주로 찍어 집단정체성을 강조한다.
1967년 북한 사회 전체가 김일성 유일사상 체제에 들어서면서부터 김일성의 사진은 정형화되었다. 한정된 지면에서 최고지도자의 얼굴이 차지하는 비율과 빈도는 세계 최고라고 할 만큼 높으며, 주인공은 대체로 화면의 한가운데 위치한다. ‘1호 사진’은 단순한 기록보다는 주인공을 위대하게 보이도록 하려는 목적에 충실하다. 영화광이자 이미지 전문가였던 김정일이 북한 정치에 개입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흔히 독재자의 사진은 카메라가 피사체 밑에서 위로 치켜들며 찍는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북한의 경우 이런 앵글은 거의 없다. 오히려 카메라가 ‘1호’의 얼굴보다 높은 곳에 위치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많이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집단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집단 정체성 강조하는 ‘1호 사진’
김일성을 표현하던 사진 방식은 김정일 시대에도 큰 변화 없이 이어졌다. 다만 김일성 시대에 비해 김정일 시대 사진의 양과 빈도는 늘어났다. 3대째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면서 권력과 이미지는 더욱 가까워졌다.
김정은의 사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시대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늘었다. 노동신문 지면이 6개 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가끔 신문 지면은 김정은의 ‘사진 앨범’ 수준까지 올라간다. 김정은은 군인이나 인민들과 함께 대규모 기념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선물로 줌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해나가고 있다. 2012년 4월에 열린 김일성 100회 생일 기념 열병식 후에는 참가자 2만400여 명과 함께 스무 차례로 나눠 사진을 찍었고 20장의 사진이 모두 노동신문 지면에 실렸다.
‘사랑의 기념사진’은 김정은 시대에 등장한 표현으로 새로운 선물 정치의 한 형식이다. 선물이란 주고받는(give and take) 것이 원칙이다. 김정은은 대중에게 ‘사랑의 사진’을 주고, 대중에게서 ‘충성과 노동력’을 받는 구조로 체제가 유지되는 것이다.
<사진> 1. 2012년 9월 김정은-이설주 부부가 평양 만수대지구 창전거리에 새로 입주한 가정집을 방문하면서 신혼부부에게 안주도 없이 소주를 권하고 있다. 벽시계는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2.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3년 3월 11일 연평도 타격 임무를 부여받은 월내도방어대를 시찰한 후 돌아가고 있다.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낡은 선박을 동원했다.
김정은 이미지를 만들어라
김정은의 사진은 단순히 양적으로 늘어난 것이 아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다소곳이 입에 손을 대고 이야기를 건네는 군 총정치국장 황병서의 모습은 김정은의 절대 권력을 잘 보여준다. 장성택 숙청 장면은 북한 역사에서 처음으로 사진으로 드러난 것이다.
감격에 겨워 울부짖는 어린이 10여 명과 팔짱을 낀 채 걷고 있는 김정은의 모습은 아버지 김정일 때는 존재하지 않던 사진이다. 하지만 김일성은 매년 몇 번씩 이런 모습을 연출했다. ‘어버이 김정은’의 이미지는 이렇게 구축된다.
할아버지의 이미지를 차용하기 위해 밀짚모자를 쓰거나 낡은 선박을 이용해 서해 앞바다의 섬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미국 정치권을 향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넥타이와 양복 차림의 초상 사진은 국제사회의 일반적 정치 지도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고, 미국 농구 스타 데니스 로드먼을 만나면서 코카콜라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김정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미국 애플사의 아이맥 컴퓨터 역시 미국과 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김정은의 의도를 일부러 노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2년 1월 북한은 서방 언론사로는 최초로 평양에 지국을 개설한 미국 AP통신이 북한 국적 사진기자를 채용해 보도하는 것을 허가함으로써, 북한과 김정은에 도움이 되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뿌릴 수 있게 했다, 중요한 정치 일정에는 CNN 등 서방 언론들의 방북을 선별적으로 허가해 촬영할 수 있도록 했다. 2016년 현재 북한은 최소한 ‘이미지 정치’의 측면에서는 실패한 국가는 아니다.
북한 사진을 조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북한에서 조작 사진의 비율은 아주 낮다. 특히 ‘1호 사진’은 조작하는 순간 많은 관찰자들에 의해 포착되는 만큼 조작의 비율은 0.01% 이하다. 2008년 김정일 건강 이상설 이후 북한이 외부에 제공하는 이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필자를 비롯한 많은 관찰자들이 찾아낸 조작 사진은 많지 않다.
수해 사진에서 물의 깊이를 조작하거나, 김정일의 영결식을 보러 나온 시민들의 모습 중 일부를 지운 사진을 발견한 정도다.
<사진> 1. 2013년 2월 28일 김정은이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미국의 묘기 농구단 ‘할렘 글로브 트로터스’와 조선체육대학 홰불(횃불)농구팀의 혼합경기장에 참석해 방북 중인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데니스 로드먼과 코카콜라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신문 1면에 코카콜라 캔이 실린 것은 처음이다.
2. 2012년 4월 북한은 세계 통신사 등에 김정은의 공식 초상 사진을 배포했다. 양복을 입고 있는 모습은 정상국가의 지도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조작을 찾다 스토리 놓치지 말라
김정은 옆에 있는 통역관의 몸을 지운 경우도 있긴 하다. 외국에서 공부했다는 김정은이 영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중요한 것은 조작 사례를 일반적인 경우로 치부하느라 자칫 북한 사진이 갖고 있는 스토리를 읽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북한 이미지에 숨겨진 로직(Logic)과 연출 의도를 읽어내고, 사진에서 우연히 포착될 수 있는 정보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2012년 9월 김정은이 이설주와 함께 신혼부부의 집을 방문해 소주를 권하는 장면을 찍은 사진이 있다. 벽시계는 6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안주도 없이 석양주를 권하는 김정은의 모습은 그의 급한 성격을 보여주는 힌트가 된다. 최고지도자가 인민들에게 둘러싸인 사진이 김정일 시대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다가 김정은 시대에 급증하는 것은 갑자기 등장한 젊은 지도자가 대중적 지지를 받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
김정은은 젊어서 ‘카메라를 잘 받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신문과 방송은 그의 통제 속에 있다. 김정은의 북한이 안정기로 들어섰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지 정치는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고, 사진과 영상은 정치적 의도를 관철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영상의 본질을 꼬집어줄 힘은 북한 내부에는 없어 보인다.
이미지에는 국경이 없다. 북한이 연출하고 통제한 상태에서 생산되는 이미지는 인터넷을 타고 전 세계로 전파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30세를 갓 넘은 김정은이 앞으로도 쏟아낼 이미지를 평생 보면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북한 사진에 대한 해독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