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12 | 20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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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대의 통일교육

“평양에 캠퍼스 지어 제3 창학
‘뿌리 찾기’로 통일 꿈 키웁니다”

2014년 이후 숭실대 입학생은 경북 문경에 있는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에 3박 4일씩 입교해 통일에 대한 체험적 교육을 받는다. 평양에서 시작한 숭실대는 통일이 되면 평양에도 캠퍼스를 열려고 한다.<사진> 2014년 이후 숭실대 입학생은 경북 문경에 있는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에 3박 4일씩 입교해 통일에 대한 체험적 교육을 받는다. 평양에서 시작한 숭실대는 통일이 되면 평양에도 캠퍼스를 열려고 한다.

평양에서 개교한 최초의 인가대학인 숭실대가 창학 120주년을 앞두고 통일교육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2014년 이후 신입생은 3박 4일의 연수를 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 과목을 이수하게 한 것.
이는 근본으로 돌아가려는 숭실대의 지고한 노력이다.


아드 폰테스(Ad Fontes). 성경 ‘시편’에 나오는 ‘물의 근원을 찾는다’는 뜻의 라틴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리스와 로마를 연구하자는 구호와 종교개혁을 하자는 구호로도 사용되었다. 동양에서는 비슷한 말로 ‘물망초일념(勿忘初一念)’이 있는 것 같다. 처음 생각한 것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숭실대가 그러하다. 이 학교는 평양에서 시작했다. ‘배위량(裵緯良)’으로 불린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베어드가 1897년 10월 10일 평안남도 평양 신양리의 자택에 13명의 학생을 데리고 이름 없는 학당을 열었다. 1901년 2층 한옥을 지어 이전했는데, 그때 한문 교사인 박자중이 ‘숭실(崇實)학당’이란 이름을 지었다.

1906년엔 지금의 중·고교 과정인 ‘숭실중’과 대학 과정인 ‘숭실대’로 나눴다. 1906년 숭실대 운영에 감리교 선교부가 참여하면서 숭실대를 ‘합성숭실대학(Union Christian College)’으로 개명했다. 그리고 1912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숭실대학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숭실대는 1924년 일제가 관립(官立)인 경성제국대학을 만들 때까지 유일한 우리의 대학이 된 것이다. 경성제대를 만든 일제는 숭실대의 숨통을 조였다. 1925년 ‘전문학교 규칙’이라는 것을 만들어 숭실대를 정식 대학이 아닌 ‘숭실전문학교’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기독교 정신을 받드는 숭실은 일제와 강하게 충돌했다. 일제가 요구한 신사참배를 거부한 것. 이 투쟁은 이 땅의 기독교인들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기에 상당 기간 계속되었다. 소명의식에 충실했던 숭실은 패배를 부인했다. 자기 정신을 지키기 위해 1938년 자진 폐교했다.

그리고 광복과 분단, 전쟁이 이 땅을 쓸고 갔다. 정전 직후인 1953년 12월 숭실은 재건의 싹을 틔웠다. 공산주의로 점철된 평양이 아니라 서울에 숭실대 이사회를 만들고, 이듬해 설립 인가를 받아 1954년 5월 영락교회 부속건물에서 16년 만에 숭실대를 부활시킨 것이다. 2014년은 서울에서 부활한 숭실대가 개교 60년이 되는 해였고, 2017년은 평양에서 시작한 숭실대가 120년을 맞는 해다. 2013년 2월 숭실대 출신으로 13대 총장이 된 한헌수 총장이 취임사에서 ‘아드 폰테스’ 정신을 거론했다. 숭실대를 통일시대에 대비한 통일대학으로 만들겠다고 한 것.

통일 리더십 연수는 탈북자와의 토크쇼, 통일 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 상상하기, 통일 비전 세우기 등으로 진행된다. 체험을 중시한다.<사진> 통일 리더십 연수는 탈북자와의 토크쇼, 통일 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 상상하기, 통일 비전 세우기 등으로 진행된다. 체험을 중시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전교생 필수과목

그 사이 세상은 바뀌어 몇몇 대학이 만들었던 북한학과의 인기가 시들해졌다. 북한학과가 사라지는 처지가 됐지만 2014년 한 총장은 전교생이 꼭 들어야 하는 교양필수 과목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개설했다. 북한을 알고, 평양을 알고, 평양으로 돌아갈 날에 대비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모든 학생에게 이 과목을 듣게 한 것은, 통일이 모든 분야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학을 한 학생은 공학으로, 문학을 한 학생은 문학으로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 통일 이후엔 통일보다 더 중요한 통합이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정신이 중요해진다. 70년 이상 따로 살아왔기에 북한 사람과 우리는 많이 달라져 있다. 같은 상황을 뜻하는 단어가 달라졌고, 흥분하는 감정의 포인트도 바뀌었다. 외모도 변했다. 영양 부족 탓인지 북한 사람들은 우리보다 키가 10여cm 정도 작다. 이러한 간극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려면 통일 교육은 이론이 아닌 체험으로도 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들어야 하는 학생이 너무 많기에 온라인으로 수업한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문경에 있는 숭실통일리더십연수원에 입교해야 한다. 체험과 이해를 통한 실질적인 교육이 이 연수원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진다.

초청한 탈북자와 함께하는 토크 콘서트를 통해 북한을 이해하게 하고, 통일이 됐을 때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을 상상하게 한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 각자가 준비해야 할 것과 통일을 향한 각자의 비전을 발표시킨다. 사회로 나갈 청년들에게 중요한 입지(立志)의 장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 수업을 맡고 있는 베어드학부의 조은희 교수는 “150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 연수원 생활을 통해 학생들은 더불어 사는 것을 경험한다. 통일도 더불어 살기이다. 더불어 살려면 상대부터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숭실대는 제3 창학도 기획하고 있다. 평양에서 시작했으니 뿌리를 찾아갈 준비도 하자는 것이다. 통일 후 가장 먼저 평양에 숭실대 평양캠퍼스를 연다면, 숭실대는 명실상부하게 ‘아드 폰테스’를 이행한 것이 된다. 처음 생각을 잊지 않고 이뤄낸 신실한 학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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