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서울 평양 메가시티>
통일비용 최소화하려면
경제협력부터 시작해야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최상의 시나리오로 점진적인 경제협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처음 제기되었을 때는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같은 주장을 상세한 마스터플랜과 함께 처음 제시한 민경태 북한학 박사의 <서울 평양 메가시티>를 들여다본다.
<서울 평양 메가시티>가 제기하는 핵심 주장은 ‘통일은 남북한의 경제협력’으로부터 시작돼야 하며, 이를 위해 서울에서 평양을 아우르는 광역수도권인 ‘메가시티 경제권’이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남북 통합 시도에 앞서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점진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첫 번째가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영향력이다.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가 지속된다면 북한의 중국 의존은 심화되고, 그런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갑자기 붕괴될 경우 북한이 중국의 속국이 되거나 친중 정권이 수립될 수도 있다.
그렇게 북한이라는 ‘완충지’가 사라지면 한국은 동북아 강대국들 틈에서 어려운 처지가 된다. 따라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도 남북 경협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초기 단계에서 남북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지속가능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북한의 경우 한국의 투자를 통해 산업이 육성되고 고용이 창출되면 북한 주민들에게 간접적 복지 혜택이 돌아가고, 이로써 남북 경제 수준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남북 격차와 문화적 이질감이 줄어들면 정치적 통합을 적절한 시기에 이룰 수 있다.
경제협력은 남으로서도 이익이다. 남북 경협을 통해 우리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각 분야의 경력을 보유한 장년층은 북한의 교육, 멘토링 등 분야에 진출할 수 있다. 또한 남북 경협 초기 단계에 필요한 막대한 물량의 인프라 구축은 건설업계 활황을 가져올 수 있다.
북한 ‘도약형 발전 모델’ 채택해야
북한을 관통하는 동북아 교통망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과 직접 연결되면, ‘한반도 경제권’이 형성돼 인구 1억의 시장이 탄생한다. 중국, 러시아와의 접경지역 도시들도 초국경 광역경제권으로 함께 묶여 한반도가 동북아 물류와 산업의 허브가 되는 것이다. 이같이 한반도가 개방적 경제권이 되면 주변국들 역시 경제 투자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한반도 통일에 좀 더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경제 개발 모델은 어떠해야 할까. 기존 개발도상국들이 채택했던 것처럼 외국 기술의 모방과 흡수에 의존하는 ‘추격형 모델’을 적용해선 안 된다. 초기 단계부터 첨단산업 집중 육성에 의한 ‘도약형 발전 모델’이어야 한다.
산업구조는 크게 세 영역으로 나뉜다. 제1 영역은 노동·자원 기반 산업이다. 노동집약적 경공업이나 천연자원 활용 산업이 이에 속한다. 제2 영역은 연구개발(R&D), 디자인, 마케팅, 전자산업 등 기술·자본 기반 산업이다. 제3 영역은 지식·네트워크 기반 산업으로, 기존 산업의 지식정보화, 미래 신(新)성장산업 분야가 여기에 속한다. 북한 개발은 제1 영역 단계에서 한국의 제2 영역을 ‘접속’함으로써 바로 제3 영역으로 건너뛰는 모델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거시적, 장기적 이익의 관점에서 민간 기업이 할 수 없는 판단을 하고, 마스터플랜을 마련해야 한다. 일정 기간 남북한 경제 격차를 유지하고 남북한 인구의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급격한 흡수를 방지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남북 경협을 위해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남북이 각각 자율적 경제체제를 유지하고 물류 이동은 자유로우나 남북 간 전체 인력 이동은 제한하고 노동시장 분리를 일정 단계까지 지속하는 게 바람직하다. 북한지역의 초기 인프라 건설을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는 것 역시 정부의 몫이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서울 평양 메가시티> 저자 민경태 박사
“정치적 접근에 앞서 경제적 접근부터”
민경태(47) 박사는 2013년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서울~평양 네트워크 경제권 구축을 통한 한반도 성장전략 구상’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책은 논문 주제를 더 발전시켜 좀 더 쉽게 쓴 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정치적 접근이 단절된 상황에서 경제적 접근을 먼저 모색하자’는 제안에 공감해주셨습니다. 정부가 추진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을 위해 남북한 육로 연결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관련 인사들과 많이 나눌 수 있었고요.”
이후 유사한 아이디어가 다양한 포럼이나 정책에 채용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해 국가건축위원회에서 제안한 ‘서울~평양~원산’을 연결하는 ‘한반도 대(大)수도권’ 제안, 정부의 5차 중?·?장기전략위원회에서 제시된 ‘평양~개성~남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남북한 경협벨트’ 제안 등이 그것. 원안을 제시한 저자로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런 구상을 실현하려면 남북관계가 실질적으로 진전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오히려 최악의 시나리오인 ‘남북한 대치 국면에서 북한의 붕괴’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어가는 게 아닌지 염려됩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남북한 모두에 경제적 비극일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주도권마저 위협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았으면 한다고 민 박사는 당부한다. 그는 “진정한 통일은 법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아래 하나로 통합될 때 가능하다”면서 “북한 인권 개선은 매우 어려운 분야지만 통일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분야다. 통합 법제를 위한 다양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