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악단(樂團)들
북한판 걸 그룹? 실상은 김정은 나팔수!
<사진> 북한에도 ‘소녀시대’가 있다? 빼어난 외모와
화려한 의상, 걸 그룹을 연상케 하는 북한판 소녀시대인 왕재산경음악단(오른쪽). 채널A의 ‘이제만나러 갑니다’에서 북한 걸그룹 흉내내는 장면(왼쪽). 사진 제공 | 채널A
김정은 시대의 북한이 ‘혁명의 나팔수’로 자랑하고 있는 모란봉악단과 청봉악단. 김정일 시대의 보천보악단과 왕재산악단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들도 주민과는 거리가 먼 궁중악단이 될 것이다.
모란봉악단에는 항상 ‘북한 최초의 걸 그룹’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틀렸다는 말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어리고 젊은 여성가수의 집단적 구성’을 걸 그룹이라고 한다면 북한의 걸 그룹은 이미 존재했기 때문이다.
1994년 3월 북한 사회주의청년동맹 제1비서였던 최룡해는 청년들에 대한 사상교양 사업을 강화한다는 명목으로 20대 초반의 여성을 중심으로 ‘중앙사로청 청년중앙예술선전대’를 만들었다. 그 가운데 젊고 예쁜 배우들을 따로 선발해 별도로 ‘해설대’도 만들었다.
미녀들을 차출해 섹스와 파티에 열광했던 최룡해가 혁명화 대상이 되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해설대의 여성들은 정말 젊고 예뻤다.
그에 비하면 모란봉악단 구성원들은 나이도 많고 그만큼 예쁘지도 않다. 노래 실력도 별로이고 춤가락은 난해하기만 하다.
지난해 9월 김정은은 청년중앙예술선전대 공연을 관람하고 “지금까지 (내가) 본 공연 중 최고의 공연”, “만점짜리 공연”이라고 말했다. 이는 모란봉악단이 최고가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만수대예술단에 적을 걸어놓고 김정일 파티장 공연을 전담해온 보천보전자악단과 비교해도 그렇다. 남한에도 꽤 알려진 전혜영, 김광숙, 이분희 등을 떠올려보시라. 기악 앙상블과 여가수 10명으로 구성됐던 보천보전자악단은 명실공히 모란봉악단의 선배 걸 그룹에 해당한다.
보천보전자악단은 북한 주민들도 모르게 존재하다가 1985년 6월 4일 전자음악 전문 예술단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전자음악을 활용한 생활가요를 연주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보천보전자악단에서 ‘장군님은 명사수…’ 등을 작곡했던 전진이 필자의 절친이었는데, 그는 여배우들의 미모를 입에 달고 살았다.
<사진> 김정은이 청년중앙예술선전대의 공연 ‘태양을 따르는 청춘의 노래’를 관람한 것을 보도한 노동신문 2015년 9월 10일자. 이 공연을 본 뒤 김정은은 “최고의 공연이었다”고 극찬했다. 북한에는 모란봉악단만 있는 게 아니다.
보천보와 왕재산 vs 모란봉과 청봉
이 악단이 세상에 공개되기 전인 1983년 7월, 김정일은 금관악기와 무용을 위주로 한 왕재산경음악단을 만들었다. 왕재산경음악단이라면 가수 염청과 현송월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김정일의 관심이 허벅지를 다 드러내고 캉캉춤을 추는 앳된 무용수들에게 쏠렸다는 것은 알 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모란봉악단이 강조되는 이유는 지금 권력의 정점에 있는 김정은이 만들었고, 이 악단이 ‘김정은 권력의 아이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설주가 데뷔한 것도 모란봉악단의 공연장이었다. 모란봉악단은 미국 문화의 상징인 미키마우스를 등장시켜 서방세계의 관심도 불러 일으킨 바 있다.
모란봉악단은 2012년 7월 시범공연 때 한 선정적인 옷차림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북한의 모든 기념일과 정치 행사에 빠짐없이 참가해 공연하고 있다. 모란봉악단이 발표한 노래는 북한 방송의 배경음악으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 정권과 시작을 같이했고 기존의 북한식 공연과 구별되는 내용과 형식으로 공연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화려한 조명을 사용하고 단원들의 과감한 패션과 헤어스타일도 기존 악단의 공연과는 확실히 차이를 보이고 있다.
2015년 7월 김정은은 또 다른 악단을 만들었다. 김정은의 원대한 구상과 발기에 의해 만들었다는 청봉악단이 바로 그것. 조선중앙통신은 청봉악단을 “금관악기 위주의 경음악단이며 왕재산경음악단 배우들이 주축이 됐다”고 보도했다.
보천보전자악단이 전자악기와 현악기를 앞세운 예술 단체였다면 왕재산경음악단은 타악기와 관악기를 위주로 한 경음악단이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김정일의 유산인 ‘보천보’와 ‘왕재산’에 ‘모란봉’과 ‘청봉’을 가미한 셈이 된다.
모란봉악단과 청봉악단을 두고 북한의 노동신문은 “사상의 척후대, 혁명의 나팔수, 사상적 기수가 되어 주체적인 문화예술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보천보악단과 왕재산악단이 그러했던 것처럼 김정은 시대의 두 악단도 주민과는 거리가 먼 궁중악단이 될 것이다.
지난해 12월 중국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던 모란봉악단이 돌연 귀국한 이유도 궁중악단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이 김정은의 권위를 훼손하려 했기에 모란봉악단이 철수했다는 지적은 결코 빈말이 아닌 것이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국 대표
북한군 620훈련소 예술선전대 작가 겸 연출가로 근무하다 1999년 2월 한국 입국. 중앙대 예술대학원 석사. 탈북자동지회 회장을 역
임하고 민주평통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