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제4차 핵실험 도발 이후 북·중관계
북한은 중국의 ‘전략적 관리’ 대상
‘회복 불능 양국 관계’ 가능성 낮아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핵 국면이 ‘국제사회 대 북한’에서‘한·미·일 대 중·러’ 구도로 발전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한중 사이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북·중관계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여섯 차례나 만날 동안, 북한과 중국은 정상회담은 차치하고 의미 있는 고위급 교류도 없었다.
북한과 중국은 지난해 10월의 북한 노동당 창당 70주년을 계기로 류윈산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면담하면서 북·중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찾았다. 12월에는 북한이 모란봉악단을 중국에 보내 인문 교류의 물꼬를 트고자 했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북·중관계의 변화가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에 미칠 파장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대응은 한계가 있다. 왜?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북한은 중국과의 사소한 의사소통상의 문제로 공연 직전 모란봉악단을 평양으로 불러들였다. 8·25 합의 이후 개성공단에서 어렵게 열린 남북 차관급 협상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제4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남북관계는 물론 북·중관계도 교착상태로 되돌려버렸다.
이에 대해 중국은 북 핵실험을 결연히 반대하고 북핵을 불용한다는 성명을 신속히 발표했다. 이례적으로 주중 북한대사를 초치해 항의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유엔 안보리의 강화된 대북 제재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중국은 북한의 예고 없는 핵실험을 시진핑 체제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중국 동북지역 국경의 안전(Safety)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인식과 행동도 거기까지였다. 시간이 갈수록 중국은 한·미·일과 국제사회의 요구와는 다른 맥락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실험 자체는 비판하지만, 그 제재는 ‘합당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한 제재만으로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며 예의 냉정과 절제를 주문했다.
여기에는 북한을 사지(死地)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대북 제재에 참여한 결과가 ‘중국 배제(China Passing)’였다는 학습 경험도 작용한 것 같다. 그 근저에는 미국이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말고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북·미 대립과 북핵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는 불만도 깔려 있었다. 이 때문에 중국은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는 국제사회에 대해 오히려 미국 책임론을 제기한다.
이러한 중국과 달리 한·미·일은 북한 핵실험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한·미·일은 북한 핵시설에 대한 군사적 공격이나 지금과 같은 전략적 무시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실질적이고 강력한 압박만이 북한의 행동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이라고 믿고 있다. 이를 위해 북한이 실질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제3자 제재(Secondary Boycotts)를 포함한 수위 높은 제재 조치를 강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은 최신예 전투기를 동원한 무력시위를 벌이는 한편 북한의 군사행동을 위축시키기 위해 강력한 군사 전략자산을 한반도에서 전개했다. 문제는 이러한 압박정책의 성패가 현실적으로 중국의 참여 수준에 달려 있다는 점이 딜레마이다.
중국을 압박하는 박근혜 대통령
한국 정부도 최상의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는 한중관계 발전에 기초해 중국 역할론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려울 때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친구”라면서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은 이전과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미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대해서도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을 감안해가면서 안보 상황과 국익에 따라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분히 중국의 태도 변화를 압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른 중국의 대응 수위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에 대한 참여 수준과 형식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동안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기조에서 움직여왔다. 전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전략적 기조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자주 경계를 이탈하고 공포정치를 통해 체제 공고화를 시도해온 김정은 체제에 대한 체질적인 불신이 강했다. 북한이 다양한 도발을 통해 중국을 미·중의 지정학적 게임에 연루시키고자 하는 의도도 경계해왔다. 2013년 제3차 핵실험 이후 북·중관계가 상당 기간 냉각되었던 배경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미국의 아·태 재균형 정책이 본격화되고 한·미·일 안보동맹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중국도 북한에 대한 지정학적 가치를 재주목하는 한편 북한 정권에 대한 전략적 관리의 필요성을 재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새로운 북·중관계를 모색한 배경이었다.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미국 책임론을 강조하는 것도 어렵게 전환한 북·중관계의 기조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시적으로 북·중관계의 냉각은 불가피할 것이다. 중국 내에서 북·중 간 ‘정상 교류’를 통해 북한의 행동 변화를 유인해야 한다는 온건한 흐름이 있으나, 현재로서는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일단 유엔 안보리의 한층 강화된 대북 제재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세관, 은행, 지하자원, 불법 취업 등 북·중 간 교류 과정에서 나타났던 비정상적 관행에 엄격히 법을 집행하면서 북한 경제에 영향을 주는 ‘중국식 대북 제재’를 병행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미·일의 대북 압박이 궁극적으로 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불만이 있다. 근본적으로 북핵 문제 해법도 현상과 본질을 함께 다루는 이른바 ‘표본겸치(標本兼治)’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정은 체제의 장기 지속가능성을 주목하면서 재개될 대화 국면에서 중국이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북 제재 국면에서 적극 외교를 전개할 가능성은 낮다.
이러한 중국식 해법은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으로 발전될 수도 있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 10주년 기념식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이러한 취지로 연설한 후, 북한과 중국은 비공식적으로 이를 논의해왔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에도 미국에 대해 이러한 병행 접근이 비록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일시적으로 북핵을 동결하는 데는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여러 차례 핵 동결과 6자 회담장 복귀를 선언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에 출구를 제공해 6자회담을 재개할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중국은 냉각 국면이 끝나길 기다릴 것
북핵이 만든 냉각 국면이 걷히기 시작할 무렵 이러한 중국식 방식을 본격적으로 제기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중국의 역할과 방식에 실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중국이 강력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했다면 북핵 문제의 진전을 막을 수 있었고, 북한을 ‘정상국가’로 만들 수 있는 단초도 찾을 수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북·중관계가 새로운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으로 북·중관계가 회복 불능의 상태로 접어들 가능성이다. 이와는 달리 북한이 36년 만에 열리는 오는 5월의 제7차 노동당 대회를 계기로 핵 모라토리움 등을 선언하고 6자회담으로 복귀하면서 북·중관계를 회복시킬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향후 남북관계, 한중관계, 북·중관계의 선순환 구조가 나타난다고 해도 현재의 북핵 문제의 고리를 자르지 못하는 한, 도발-협상-도발이라는 북한의 오랜 정책 패턴이 지속되고, 북한이 북한 스토리를 쓰는 비정상적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도 북한의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실효적 제재가 필요조건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진정성과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대화 국면이 재개되어 북핵 동결을 둘러싼 협상은 그 이후의 일이다.
북·중관계에 대한 중국의 모호한 위상 설정은 한중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줄 개연성이 있다. 그동안 한국은 어려운 국제 환경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승절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여했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발효시켰으며, 중국이 주도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도 참여하는 등 다양한 정책적 신뢰를 강화해왔다.
그러나 이번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식 해법에 대한 한국의 실망감은 한미동맹을 유일한 출구로 선택하면서 어렵게 쌓은 한중관계의 기반을 약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 이후 북핵 국면이 ‘국제사회 대 북한’이라는 구도를 이탈해 ‘한·미·일 대 중·러’ 구도로 발전하지 않도록 책임 있는 역할을 가시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것은 현재의 양국 사이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의 내용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
외국어대 정치학박사. 중국 길림대, 복단대, 천진외대, 수도사범대 객좌교수, 현대중국학회 회장 등 역임. 현재 성균중국연구소장과 민주평통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