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호 > 성공시대

성공시대 / 이영희 '에덴데코' 대표이사

북한이탈주민들,
남한 사회에서 물고기 잡는 법 배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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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서울 충무로 뒷골목, 크고 작은 인쇄소며 기획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은 영하의 날씨를 넘나드는 2월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삶의 현장이다. 이영희 대표(55)와 북한이탈주민들이 터를 잡은 ‘에덴데코’도 이 나지막한 동네에 자리하고 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와 말 걸기가 민망할 정도로 바쁜 손놀림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종업원 모두가 쫓기듯 일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참 다행한 일이다 싶다. 설 연휴가 끼여 납품해야 하는 샘플북 제작이 늦어지는 바람에 주말에도 야근까지 할 만큼 바빴다고 한다. 인터뷰를 위해 사진을 찍어야 한다니까 그제야 이영희 대표가 옷 위에 내려앉은 뽀얀 먼지를 털어낸다. “어디서 찍는 게 잘 나올까요?”

에덴데코는 샘플북과 상자 제작, 한지공예 등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지난 2011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선정한 사회적기업 설립 지원 대상으로 뽑혀 1억여 원의 지원금을 받고 그해 11월 설립해 지금까지 줄곧 북한이탈주민들만 직원으로 채용하며 성장해왔다.

이영희 대표의 이력은 여느 북한이탈주민과는 조금 다르다. 중국을 자주 오가던 친구를 따라 나도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 싶어 따라나선 것이 북한의 남편, 두 아이와 생이별을 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베이징에 있는 친구의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함께 갔던 친구가 그만 경비대에 붙잡혔다. 난생 처음 중국 땅을 밟아본 그가 홀로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북한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엔 너무 막막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친구의 친척집에 숨어 지내며 처음으로 남한 사회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보니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교회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여기서의 생활까지 교회가 책임져줄 순 없으니까요.”

한국으로 와서 이 대표가 처음 한 일은 휴대전화 급속충전기를 빌려주는 회사의 수금 업무였다. 아침에 인터넷으로 거래 명세를 확인하고 수금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 일을 오래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느 북한이탈주민처럼 보조금이 나오는 학원을 전전하며 봉제와 컴퓨터 기술을 배우기도 했지만 그 어디에도 마음으로 기댈 어깨를 내어주는 곳은 없었다. 막막해하던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은 탈북여성인권연대를 준비하던 북한이탈주민 출신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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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덴데코의 업무 대부분은 갓 탈북한 사람들도 쉽게 해낼 수 있는 단순작업이라 취업이 쉽지 않은 중·장년층에게도 부담이 없다.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일하는 기쁨’ 알려줘야

“사실 인권이 뭔지도 모르고 시작했죠. 나중에 저희를 도와주시던 교수님이 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민주주의를 위해 미국 해외홍보처에서 지원하는 자금) 지원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셔서 조금씩 모양새를 갖추긴 했지만 처음엔 월급도 없이 그냥 ‘맨땅에 헤딩’이었어요.”

탈북여성인권연대 활동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전환점이 됐다. 거기서 만난 인연으로 한지공예와 상자 만드는 회사를 소개받은 이영희 씨는 무급으로 일을 배우겠다며 욕심을 내어 기술을 전수받았다. 어느 정도 숙달되자 북한에서 온 8명과 함께 양천지역자활센터에서 한지공예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3년을 버티고 나니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어 이제는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고 한다.

“북한 사람들에겐 ‘열심히 일한다’는 개념이 별로 없어요. 무언가에 대한 창작열을 불태울 필요도 없지요. 일을 열심히 하나 안 하나 똑같이 월급 받고 똑같이 배급을 받으니 의욕을 상실하는 거죠.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도 직장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금세 그만두는 것 같아요.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성보다 차별에 대한 분노가 더 커지니까요. 어쩌면 북한이탈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직접적인 도움보다 가치관을 바꾸는 교육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북한이탈주민이 자립하는 기반이 될 만한 회사를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세워진 것이 지금의 에덴데코이다.

“실무를 도와주는 이사님도 계시고 도움 주는 분들이 많아서 보답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하고 있어요.”

2011년 11월 설립 한 달 만에 3000만 원의 매출을 올린 에덴데코는 이듬해인 2012년 5억 원, 2013년에는 9억8000만 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고속성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재단의 도움으로 만든 회사인 만큼 운영자금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란다. 맨손으로 건실한 사회적기업을 일궈낸 이영희 대표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북한이탈주민들과 ‘일하는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행복 바이러스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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