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호 > 포커스

포커스 / 통일의 제도화

통일국가 완성 위한 제도적 기틀 마련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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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근혜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통일이 시대의 화두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통일 대박’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통일에 대한 무관심과 부정적 인식에 경종을 울리며 통일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까지 북한의 상황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분단 관리의 ‘소극적 대북정책’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통일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며 만들어가는 ‘적극적 통일정책’이 필요한 시기이다.

통일은 북한이라는 분명한 상대가 있으며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요인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내부의 통일역량과 의지가 수반돼야 한다는 점이다. 남북 간 경제적 격차로 말미암아 통일비용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현재는 안정적으로 북한을 관리해야 한다는 논리는 통일한국의 비전이 될 수 없다.

기존의 통일담론이 통일을 막대한 비용 부담을 수반하는 위협적이고 두려운 것으로 간주했다면, 새로운 패러다임은 통일을 긍정적 기회로 간주하고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준비하자는 것이다. 통일은 반드시 점진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금부터 통일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 시기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통일 공론화와 함께 ‘통일 항아리’ 등의 사업을 전개했다. 이러한 사업은 통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통일비용의 폐해를 불식시키며 통일에 대한 대국민 관심도를 제고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러한 통일담론이 실천 영역에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는 충분치 않았다. 한마디로 ‘왜 통일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제도적 장치 마련해 통일을 준비하자

현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통일담론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를 제고함은 물론 제도와 법률을 통한 통일의 제도화를 추진해야 한다. 국민들이 이제는 ‘왜 통일해야 하는가’, ‘통일이 되면 더 불행해지는 것 아닌가’라는 부정적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의 질이 더욱 높아지는 행복한 통일시대를 맞이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통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꼭 필요한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범국민적 통일운동은 물론 정부 차원의 제도화와 법률로써 통일이 준비돼야 한다는 점이다.

제도화는 일반적으로 ‘제도가 만들어지고, 구성원들이 제도에 상응하는 행위를 체득해가는 과정’을 지칭하며, 제도적 접근법은 ‘조직이나 사회질서 혹은 사회 속에서의 인간 행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제도나 제도화의 역할을 강조하는 접근법’으로 정의된다. 통일 제도화는 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재원과 법률 등을 제도적 장치를 통해 마련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시기와 분야로 구분할 수 있다. 시기는 통일을 하나의 제도적 통합 과정으로 고려할 때 통일 이전과 통일 이후이며, 분야는 정치, 경제, 군사, 법, 사회문화 분야 등에서 제도적, 법률적 준비가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한다. 통일의 제도화를 통해 통일 과정에서 야기될 제도적, 법률적 충돌 부분을 미리 완화하고, 통일비용으로 소요될 예산을 지금부터 준비한다는 취지이다.

대북 지원은 통일 준비의 필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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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해 11월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통 운영·상임위원과의 대화. 왼쪽부터 박근혜 대통령, 현경대 수석부의장, 박찬봉 사무처장.

통일 이전 시기에 중요한 것은 북한에 대한 물질적 지원과 정신적 지원을 위한 법률과 제도의 개선이다. 물질적 지원으로서 대북 지원은 우리 사회에서 남남갈등의 핵심적 이슈라 할 수 있다. 대북 지원 물자 등의 전용(轉用)과 모니터링 문제로 찬반양론이 팽배하지만 대북 지원은 통일 준비를 위한 필수 과정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대북 지원을 통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는 전략은 통일이 될 때 북한 주민이 남한 체제로 편입되는 것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 경제의 회생은 결국 북한 당국의 정책 개혁을 통해 자생력을 확보할 때 가능한 것이며, 대북 지원은 북한 경제 운영의 토대를 제공하는 개발 협력의 관점에서 추진돼야 한다. 따라서 향후 통일을 위한 기초 작업이라는 의미에서 대북 지원을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제도화나 법률의 제정,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가령,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적 지원은 실시한다는 원칙을 정립하되, 정부 예산의 일정 부분을 대북 지원과 북한 개발 협력을 위한 예산으로 별도 지원 및 적립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물질적 지원과 함께 정신적 지원으로서 외부 정보 유입을 통한 북한 주민의 의식 전환 작업을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통일은 결국 북한 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에 편입되는 것으로 체제 선택의 순간에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인식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획득하고 외부와의 접촉 기회를 넓힐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최근 북한에 확산되고 있는 소위 한류 현상은 북한 당국의 사상적 통제 기제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 영상물을 통해 남한의 발전상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남한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갖게 된다. 이는 곧 북한 체제의 선전과 통치에 대한 반감을 갖게 해 사회적 변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을 통일 과정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면 그들의 사상적 인식 전환을 위한 외부 정보 유입 방안 역시 범국가적 차원의 제도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리 체험해보는 일상생활 속의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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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013 통일문화축제’ DMZ 자전거 투어에 참가한 사람들이 임진각 통일대교를 자전거로 건너고 있다.

다음으로 통일 이후 과정을 종합적으로 준비하는 민관 협력위원회를 구성해 이러한 업무를 총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시기나 정권별로 달라지는 통일 준비가 아니라 범국민적 차원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통일 과정에서 필요한 기본 원칙과 방안을 지속적으로 마련해나가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통일의 제도화에서 우선적으로 추진돼야 할 부분은 통일 준비가 결코 정쟁의 이슈가 되거나, 국민들로부터 나와는 무관한 일로 인식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실천 가능한 분야부터 작은 통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일상생활에서의 통일 체험을 위한 가칭 ‘통일마을 조성’도 고려해볼 만하다. 진정한 통일 준비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통합이 우선시돼야 가능하다. 남북한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거리를 좁혀가야 한다. 이를 위해 통일 특화거리나 통일마을 조성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개인과 무관한 멀리 있는 통일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몸소 체험할 수 있는 통일 문화 체험공간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통일을 체험토록 하자는 취지이다. 이미 외국인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를 위한 다문화 특화거리 및 특별지역이 조성되고 있다. 이러한 특구 지정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법령 및 제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통일 관련 분야 사업의 제도화를 꾀하는 사례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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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해 8월 31일 인천항에서 어린이의약품지원본부가 마련한 의약품 등을 담은 컨테이너가 선적을 준비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이탈주민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선정해 통일 특화거리나 마을을 조성하여 통일시대를 미리 경험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거리의 표지판이나 간판도 남북한 언어를 같이 표기하고(예를 들어 아이스크림 상점에 ‘아이스크림’과 ‘얼음보숭이’를 함께 써놓으면 참 정겹지 않을까), 이 지역에서만 통용되는 통일화폐도 제작해서 사용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남한 출신 주민과 북한이탈주민이 공동으로 창업할 경우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더불어 살아가는 연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마디로 이방인이 아니라 함께 먹고 살아갈 동업자로서 서로를 인식한다면 통일의 격차를 해소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나아가 남북한 통일 문화 체험공간으로 관광상품화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함으로써 통일담론이 구체적인 제도화로 이어지는 실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통일의 제도화는 통일이 진정 우리에게 대박이 되기 위해서는 통일역량 강화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통일 과정에서 발생할 불필요한 논쟁과 정치적 대립을 사전에 제거하고 물질적, 정신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지금부터 미리 준비하자는 것이다. 남북관계나 국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통일 문제가 쟁점이 되는 관행에서 벗어나 범국민적 차원의 사회적 합의를 통해 진정한 통일국가를 완성하기 위한 우리 사회의 성숙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자는 취지이다. 통일이 남북한 주민 모두의 삶을 행복하게 하는 ‘대박’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노력과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되는 때이다. 통일은 어느 날 우리에게 갑자기 주어지는 깜짝 선물이 아니라 준비하는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행복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photo 강동완
성균관대학교 정치학 박사. 현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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