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정부의 남북 교류협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4·27 판문점 선언, 6·12 북·미 정상회담의 훈풍이 지방정부로 전이되고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통해 새롭게 행정을 시작한 지방정부들은 남북 교류협력 재개에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기존 지방정부의 남북 협력사업은 주로 의약품, 식량 지원 등 인도 지원과 사회문화적인 범위에서 주로 진행됐다.
전환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정부의 남북 교류협력 역시 새로운 전환(Transformation)이 요구된다. 기존의 교류협력사업과 더불어 남북이 서로 이익을 공유할 수 있는 경제 협력으로서의 한반도정책으로 확장돼야 하는 것이다.
공간을 뛰어넘는 콘텐츠 결합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新경제’ 구상의 기조를 담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한의 경제공동체를 제안했다. 남북한 접경지에 통일경제특구를 조성하는 방안을 재확인했다. 지방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제 남북한 문제는 중앙정부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전환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전환기를 맞은 지방정부의 남북 교류협력을 위해 세 가지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다. ①공간을 뛰어넘는 콘텐츠의 결합 ②단순 교류를 넘어 공유 가능한 이익의 결합 ③남북 교류협력의 주체로서 지방정부라는 새로운 과제가 바로 그것이다.
남북 교류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지방정부들은 지속적으로 북한의 지방과 자매결연을 추진해왔다.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남북한 지방정부의 자매결연이 성사된 곳은 아직까진 없다. 지방 간 자매결연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북한 수요가 약한 사업이다. 또한 중앙정부의 관리를 벗어나 지방 사이의 자율적 교류는 여전히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중앙정부 사이의 교류의 폭과 깊이가 여전히 부족한 탓이 크다. 또 다른 문제는 자매결연의 범위를 공간적으로 제한해 접근하고 있는 정책 입안자들의 인식의 한계도 한몫을 한다. 공간끼리 묶어서 뭘 하자는 것인가.
각설하고 지방정부의 자매결연이 어렵다면, 협력 모델별로 즉 지방의 콘텐츠를 서로 결합하는 방식으로 자매결연의 정책적인 틀을 전환해보는 방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공통분모로 수원화성(華城)과 개성 만월대(滿月臺)의 역사유적 자매결연,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와 평양 인근 은정첨단기술개발구의 산·학·연 자매결연 등은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기획이 될 수 있다.
단순 교류 넘어 공유 가능한 이익의 결합
교류의 범위가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남북한 지방 간 교류는 더욱 어려워진다. 경제적 상호 의존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지방 간 경협 모델의 발굴이 필요한 것이다.
참여정부 이후 남북한은 경제 협력을 추진하면서 금강산 관광사업(개성관광 포함), 남북철도·도로 연결사업, 개성공단 개발사업을 3대 중점 경협 사업으로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향후 경협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과거의 경협 모델이 그대로 재연된다면 경제적 효과뿐만 아니라 지속가능성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의 단순 조업 재개는 개성공단 사업의 경제적 확장성을 담보할 수 없다. 현상 유지 차원의 접근보다는 규모의 확대를 통한 경제성 확대, 국제화를 통한 사업 안정성 확보, 제도 개선을 통한 경협 사업의 예측가능성 확보 등 새로운 재개 조건이 필요한 것이다.
지방정부도 경협에 참여할 수 있는 역량과 제도, 그리고 콘텐츠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경기도와 파주시, 강원도와 철원·고성군 등이 추진하고 있는 ‘통일경제특구’가 꼭 개성공단과 연계될 필요는 없다. 남북한의 경제적 수요가 공유될 수 있다면 북한의 지방급 경제개발구와의 경제적 연합도 가능하다. 또한 최근 북한의 ‘평화시장’으로 자리 잡은 평성시와 대구시가 섬유산업을 연결고리로 한 섬유산업공동시장을 조성하는 산업별 경협 방법도 구상할 수 있는 것이다.
중앙이든 지방이든 남북 경협을 위해서는 원칙적 과제와 실천적 과제를 우선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원칙적 과제는 기존 경협의 경험을 토대로 남북 경협의 큰 그림을 다시 그리기 위한 과제로 상정할 수 있다.
북한 경제특구·경제개발구 현황
2018년 현재 남북 경협 3대 모델인 개성공단, 일반 교역, 임가공 교역 등 기존의 경협 모델은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계획되고 추진됐다. 따라서 경제성, 안정성 등 남북 경협 전체 차원의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계획이 부족했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경협 모델 사이의 시너지를 통해 발생 가능한 남북 교류의 실질적인 확대라는 큰 목표 역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새로운 남북 경협을 위한 원칙적인 과제로 다음을 꼽을 수 있다. 기존의 사업 모델을 혁신할 수 있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개발해 남북한 모두 경제적 효과성을 강화할 수 있는 사업을 분야별로 검토해야 한다. 노동집약적 단순 가공사업 분야에서 단계적으로 부가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분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국제화, 규모의 확대 등 경제성의 확보는 제도화에 못지않게 경협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다.
둘째, 경협 안정성 확보를 위한 남북한 합의의 제도화는 필수적인 과제다. 예를 들면 2010년 5·24 조치를 계기로 완전 중단된 일반 교역과 임가공 교역은 남한의 사업자들이 북한과 개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통합 관리주체의 부재, 계약업무 지원 부재, 보험 가입 문제 등등 제도적 보호장치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피해가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셋째, 경협이 사회문화 교류 등 다른 분야와의 시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원칙이 적용돼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개성공단 내에 화상 상봉 시스템을 설치해 황해도 인근의 이산가족들이 수시로 상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남북 경협을 위한 실천적 과제로는 첫째, 남북한의 경제적 수요를 고려한 사업 모델 개발은 사업의 초기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특구, 경제개발구를 연계해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제2, 제3의 개성공단 조성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북한의 경제 구조를 고려한 사업 모델 개발로서 산업과 기술 수준에 따른 단계적인 로드맵이 필요하다. 셋째, 동북아 경제 협력을 전제로 한 경제 모델 개발이 필요한데, 중국, 러시아, 나아가 유럽으로 이어지는 경제벨트 위에서 장기적으로 남북한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 8월 1일 공포된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지방정부의 남북 교류협력사업에 대한 중요한 법·제도적 기반이다. 제정 당시 이 법의 제12조는 교역 당사자로 “국가기관, 지방 자치단체, 정부투자기관 또는 대외무역법에 의해 무역업의 허가를 받은 자”로 정의함으로써 지방정부를 교류협력사업의 하나의 행위자로 인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9년 1월 30일 동 법률의 개정으로 남북 교류협력사업의 행위자로서 지방정부가 제외됐다. 2017년 8월 11일 우상호 의원(더불어민주당) 외 11인의 법률 개정안과 8월 16일 박준영 의원(전 민주평화당) 외 10인의 개정안은 협력사업의 주체로 지방정부를 명기하고 있다.
재원 지원 문제도 제도 개선이 필요한데, 지난해 우상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남북협력기금법’ 일부 개정 법률안의 주요 내용은 기금에서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방자치 단체의 교류사업에 필요한 자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은 기금과 관련해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협력사업을 증진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남북협력기금법’에 따른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신설하고 있다.
남북 교류협력의 주체로서 지방정부
제도적인 측면에서 한 가지 더 고려할 사항은 지방정부 간 협력체계의 구축이다. ‘(가칭)남북 교류협력 지방정부협의체’는 중앙정부와의 정책 및 제도 협력, 남북한 지방정부 간 협력 창구 역할을 수행토록 할 수 있다. 더불어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교류협력사업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광역·기초 지방정부 간 거버넌스’ 구축 역시 동시에 진행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된 사례가 있다.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는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가 협력체계를 구축해 사업을 추진해왔다. 전라북도는 2003년 도·시·군 지방자치정책협의회 회의에서 광역·기초 지방정부가 협력해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키로 합의했고, 교류협력에 필요한 기금도 도·시·군이 공동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 전라남도에서는 2003년 ‘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가 발족된 이후 화순군을 시작으로 각 기초 지방정부에서 남북 교류협력 관련 조례를 제정했고, 광역·기초 지방정부간 ‘사업 연계’ 형식으로 남북 교류협력사업을 추진한 바 있다.
동국대
DMZ평화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