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10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금강산에서 재개됐다. 첫 상봉은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과 예술단의 서울과 평양 방문으로 이뤄졌다.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과 함께 시작됐다. 이산가족 상봉이 정례화되는가 싶더니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가 삐거덕거리다 간헐적으로 상봉 행사가 진행됐을 뿐이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도 트럼프와 김정은의 입심 대결은 그칠 줄 몰랐다. 그에 따라 남북의 긴장도 끝을 알 수 없었다. 올 1월 남북 정상들의 신년사에서 평화의 온기가 느껴지더니, 전격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이 평화올림픽으로 성황리에 끝날 수 있었다. 급기야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1차 남북 정상회담이 기적적으로 성사되면서 한반도 정세에 봄이 왔고, 이번 8월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일정에 오를 수 있었다.
80세 이상 고령자 62%… 3촌 친척 간 상봉
이번 상봉 행사의 특징을 보면 첫째, 상봉 행사 참가자 선정 과정에서 포기한 사람들이 여느 때보다 많았다. 이산가족 상봉 당사자 100명씩을 선정하기 위해 일단 5배수, 2.5배수로 좁힌 후 건강 상태와 상봉 의사 등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번에는 남측 당사자 93명 중 최종 89명, 북측 당사자 88명 중 81명이 참가했다.
대부분 건강상의 이유로 중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생존 이산가족의 62.6%가 80대 이상의 노령자이다 보니 건강이 양호한 사람이 적거나, 내일의 컨디션을 예측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둘째, 이번 이산가족 상봉자들의 관계에서 1세대 당사자와 그 부모가 만난 사례는 드물다. 2차 상봉에서 유일하게 부자가 만난 사례인 남측 가족 조정기(67) 씨는 아버지 조덕용(88) 씨가 연락하기 세 달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걸 한스러워했다. 1세대의 고령화로 부부 상봉은 말할 것도 없고, 형제자매 상봉도 더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3촌 이상 친척 간의 상봉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로도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특징들 때문에 이번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무엇보다도 정례화의 필요성을 일깨워 줬다. 2000년 이래로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했던 13만여 명 이산가족 1세대 가운데 생존한 이가 5만6000여 명이라는 사실은 이제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포함한 이산가족 1세대들에게 상봉의 기회가 별로 없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생존 이산가족 당사자들 가운데 앞으로 5년 이후에 얼마나 살아 있을지 알 수 없다. 상봉을 정례화한다고 할지라도 현재의 방식처럼 1회 100명을 매월 한 번씩 만나게 되면 신청 자들이 모두 만나는 데 최소 46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시 말해 등록 이산가족의 대부분은 이산가족 상봉을 하기도 전에 세상을 뜨게 될 것이라는 결론이다.
현재 국제관계, 특히 북·미 간의 관계를 보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데는 계속 우여곡절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평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례화되는 데는 난제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당장은 이번 가을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한 번 더 성사시키는 일만으로도 희망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례화를 한다고 해도 한 달에 1회, 100명이 만나는 방식으로는 이산가족의 한을 풀기는커녕 한을 더 키울 수 있다.
인권 문제, 인도주의 문제, 국가 책임 문제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이산가족의 문제는 인권의 문제이자 인도주의적 문제이고, 국가 책임의 문제라는 점에서 남북의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진행돼야 한다. 동·서독은 1972년 기본조약을 체결했던 빌리브란트 총리의 사민당에서 기민당으로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동·서독 간의 약속들을 그대로 이행했고, 이산가족 교류의 약속도 변함없이 지켰고, 그것으로 통일로 갈 수 있었다.
둘째, 이산가족 상봉 장소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의 금강산 면회소 만으로는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금강산이라는 공간은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곳임에 틀림없다. 또한 북한으로서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자 하는 구상이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금강산의 아름다움은 이산가족들에게 힐링을 제공하기보다는 금강산 여행 자체가 그들의 피곤을 가중시킬 수 있다. 금강산으로 가는 교통이 아직까지는 남북 모두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산가족 1세대들의 나이가 너무 많고, 한이 너무 깊다. 그들의 나이와 마음을 제대로 배려하는 행사를 하려 한다면 이산가족들의 접근이 용이한 곳에 제2, 제3의 면회소가 생길 필요가 있다. 현재 거주지 중심으로 동쪽에 가까운 사람들은 금강산에서 면회하고, 서쪽에 가까운 사람은 개성이나 제3의 장소에서 면회할 수 있도록 남북 정부는 배려해야 한다. 남북 정부 당국이 이산가족에 대해 진정한 측은지심을 발휘해야 할 때다.
셋째, 이산가족 교류 방식에 대해서도 이산가족의 차원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상봉 행사에 많은 이산가족이 참가할수록 좋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런데 이산가족 당사자들은 만나기 전에라도 헤어진 가족의 생사가 궁금해 죽을 지경이다. 하루속히 남북 정부가 화통하게 이산가족의 생사 여부를 신속 정확하게 조사해 당사자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물론 이산가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행정 시스템이 구비돼야 하고, 인력과 비용이 확보돼야 한다. 그러한 비용을 우리 정부가 북한 정부에 지원해준다면 현재 국면에서는 유엔의 대북 경제제재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유엔과 반드시 협의하고 설득해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장기적으로 북한의 행정 시스템의 온라인화는 통일 과정에 절실한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전화 교환이나 서신 교환과 같은 통신수단을 활용한 이산가족 교류도 신속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21차례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은 이별을 위한 상봉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한번 만나고 나면 다시는 만날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산가족들이 상봉을 하고 나면 더 할 말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집안의 대소사를 전하고 싶고, 제사나 명절도 같이 지내고 싶다. 그럴 때 전화 교환이나 서신 교환을 할 수 있도록 해줘야만 한다.
나아가 인간의 수구지심(首丘之心)에 대한 연민이 필요하다. 다들 젊어서는 사느라고 바빠서 고향 생각을 할 여유가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고향 생각이 깊어지기 마련이다. 이산가족에게 고향 방문 길을 열어주고, 성묘도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지난해 7월 6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서 제안된 바 있다. 또한 이미 이산가족과 관련해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오랫동안 정책적으로 구상했던 얘기이기도 하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2차를 하루 앞둔 8월 23일 집결지인 강원도 속초시 한화리조트에서 상봉예정자 중 최고령인 강정옥(100) 할머니와 김옥순(89), 강순여(82), 조영자(65), 김태주(78) 씨가 의료진의 검진을 받고 있다.
나아가 정부나 적십자사, 국민의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관점에서도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즉 이산가족을 둘러싼 정책적 구상과 남북 이산가족의 교류를 위한 노력은 이산가족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휴전된 지 70년을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도 전쟁 피해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부가 정부로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특히 그간 이산가족 문제를 정권에 의한 주도권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점에 대해 남북 정부는 모두 부끄러워해야 한다. 국가 존립의 정당성은 국가 구성원들로부터 나오므로, 사람이 없다면 국가는 존재할 수 없다. 헌법상 통일이 대통령의 의무이듯, 국민을 보호하는 문제나 국민의 일원인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대통령의 의무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이산가족 당사자들이나 그 후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산가족 문제는 국민 전체의 문제이다. 이산가족은 전시에만 생기지 않는다. 글로벌 시대에 비일비재한 해외 관광이나 노동 이주를 통해 일시적인 가족 이산이 생기기 십상이다.
그런데 해외로 간 가족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행방불명되어 생사 확인이 되지 않거나 납치된다면 국가적인 문제이자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불의의 6·25전쟁으로 수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휴전 이후 70년의 세월에도 생사 여부를 알지 못해 한을 안고 죽어가는데도 남의 문제라고 무관심하다면 자기 가족에게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될 것이다.
가족 이산은 경제적 비용만이 아니라 사회심리적 비용 역시 감당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산은 가족의 빈민화를 가중시켜왔다. 일부 이산 당사자들 가운데에는 학력이나 기술, 인맥 관계 등에 힘입어 이산 후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1983년 한국방송공사(KBS)의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그램 생방송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산가족의 대다수는 이산 전보다 더 가난해졌음이 입증됐다. 또한 이산가족 조사 과정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산의 경험은 사회심리적인 불안감과 고립감을 가중시켜 다른 사람들과의 평화로운 교류가 어려운 이산가족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평화통일 대행진에 참가한 청년들이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개막한 평화통일 사진전을 관람하고 있다.
청년 세대의 통일교육이 필요한 이유
특히 최근 한국 사회는 핵가족을 넘어 1인 가족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혈연 공동체라는 가족에 대한 정의 역시 바꾸고 있다. 특히 20, 30대의 많은 청년들에게 결혼을 거부하는 비혼주의자들이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그들에게 가족은 불편하기만 한 것일까? 그래서 청년 세대들은 통일 문제에 관심이 적듯이 이산가족 문제에도 관심이 적은 것일까? 현실적으로 한국 청년 비혼주의자들의 대다수에게도 부모는 있고, 부모가 없으면 자신의 존재 역시 없다. 그러기에 한국의 엷어지는 가족주의 속에서도 부모·자식 간의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고, 형제자매가 없는 경우가 많다 보니 부모·자식 간의 유대감과 지원 관계는 더욱 강화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청년 세대들에게 이산가족이나 통일 문제를 제대로 이해시키는 데 있다. 그러기에 이산가족 문제 이해 교육이 필요하다. 청소년이나 청년 세대들이 통일 문제뿐만 아니라 이산가족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관심을 가지도록 북돋아줄 필요가 있다. 평화나 통일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가족은 구체적인 개념이므로 교육하기에 따라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관심을 통해 평화통일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다. 1년에 한 번 통상적으로 하는 통일교육이 아니라, 한반도와 청년 세대에게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 통일교육, 이산가족 문제가 국민 전체 문제임을 제대로 알게 하는 통일교육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때다.
한성대 사회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