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단독회담에서 악수하고 있다. 외국인과 관람객이 북측 판문각을 둘러보고 있는 가운데 남한 병사가 경비를 서고 있다.

종전선언, 어떻게 가능할까

“남북 간 평화 공존 제도화하고
‘한반도 평화협정’ 토대 구축해야”

국제법적으로 종전선언은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화하는 정치적 선언, 일종의 ‘신사협정’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종전선언에 담길 내용은 ‘이제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라는 의미를 담은 선언이면 족하고, 상호 간 신의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6올해 들어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이 9월 중 평양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종전선언을 둘러싼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특히 미국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과 관련해 협상 기대감이 커지면서 북한의 ‘핵신고’와 미국의 ‘종전선언’ 맞교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아울러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북한 방문에 이어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이른바 9·9절) 이전에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되기를 바랐으나 북한의 내부 사정이 복잡한 모양새다. 11월은 미국 중간선거가 있어 현재 북·미 대화 가능성은 사실상 그리 높지 않은 상황이다.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도 변화가 있게 될 것이므로,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은 비핵화의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북한 비핵화와 관련한 논의는 1954년 제네바 회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회담은 실패 했으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쟁점화하는 데는 나름 성공했다. 북한은 1950년부터 1960년대까지 미군 철수와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의 선후 순서가 바뀌기는 했지만 일관되게 평화체제의 주체를 남북한으로 간주했다. 북한이 남북 간 평화협정 체결에서 북·미 평화협정 체결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1973~74년 무렵이었다. 1973년 1월 미국과 베트남 간의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돼 베트남에서 미군 철수가 시작되자 이때부터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1973년 12월 북한은 북·미 평화협정을 제안했고, 1974년 대미 서한(미합중국 국회에 보내는 편지)을 채택했다. 이 서한에선 북·미 상호불가침 조약, 연합사 해체 및 모든 외국군 철수 등을 주장했다. 당시 헨리 키신저 미 국무장관도 평화협정 논의를 위한 남·북·미·중의 4자회담과 교차 승인을 제안했으나, 북한은 이를 거부했는데 분단의 영속화로 간주한 때문이다.

북·미관계와 한반도 평화체제

북·미 간에 북핵 문제가 터지게 된 것은 1993년 6월 북한과 미국이 ‘북·미 뉴욕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부터다. 이 또한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실패했다. 이 직후인 1994년 4월 북한은 ‘새로운 평화 보장체계’ 수립을 위한 협상을 제의했다. 북한은 정전협정이 한반도 평화를 보장할 수 없으며, 북·미 평화협정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우여곡절 끝에 1994년 10월 북·미 간 ‘제네바 기본합의’가 체결됐다. 제네바 기본합의는 핵문제 해결뿐만 아니라 북·미관계 정상화(쌍방 연락사무소 개설), 북·미 외교관계 수립을 포괄하고 있었는데, 이른바 북·미 평화협정이 실험된 것이다. 하지만 역시 1998년에 이행이 중단됐다.

2000년대 들어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질적 도약을 했다. 2000년 10월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했고, 북·미는 적대관계 청산을 목표로 한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했다. 이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는 6자회담을 통해 질적으로 변화했다. 2005년의 제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는데, 한반도 평화체제(Peace Regime)에 관한 구상이 명문화되기 시작했다.

9·19 공동성명은 모든 관련국들이 한반도 문제 해법의 정석으로 인정했다. 북·미관계 정상화와 북·일관계 정상화를 추진하고 별도의 적절한 포럼에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좌초됐다. 2007년 제5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2·13 합의’가 채택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관련해 좀 더 진화된 양상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한반도는 전쟁의 공식적 종료를 뜻하는 평화협정 없이 오로지 정전협정에 의존한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해왔다. ‘초불확실성’과 ‘거대한 폭풍’이 지배했던 2017년, 한반도는 제6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이후 북한의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한 축으로, 정밀타격 등 군사옵션의 실행 가능성을 또 다른 한 축으로 전쟁설과 위기설이 뒤덮었다. 그러나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반도에는 대화 분위기가 싹트면서 4월 남북 정상회담, 5월의 한·미 정상회담과 한·미·일 정상회담, 그리고 6월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개최됐다. 이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높은 기대와 열망을 또다시 만들어냈다.

‘판문점 선언’에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주체로 우리를 포함한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 즉 남·북·미(3자) 또는 남·북·미·중(4자)을 염두에 두고 합의했다. 법적 절차상 남북이 우선 종전 선언에 합의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이를 추인하거나 시차를 두고 같이 서명하는 방식이 고려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은 ‘남북 기본협정’을 체결하는 방향에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남북한 간의 평화 공존을 제도화하고, ‘한반도 평화협정’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현재 북한은 남북 평화협정보다는 북·미 평화협정에 치중하고 있다. 남북 기본협정 체결 이후 한반도 평화협정의 체결은 남북한 당사자가 중심이 되는 것이 옳다. 한국은 이번 기회에 북한과 미국, 일본이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매개 역할을 잘해야 한다.

남북 간 종전선언 및 다자안보 논의

지난 4월 27일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 완화는 판문점 선언 제2조의 3개 항을 통해 북한의 종전선언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반도에서 첨예한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나갈 것을 주문한 것은 매우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종전선언을 형식적인 선언에 그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선언으로 이어나갈 수 있도록 남과 북의 상호 노력도 중요하다. 남과 북 상호 협력과 교류의 활성화를 통해 여러 가지 군사적 보장대책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

국제법적으로 종전선언은 전쟁이 끝났음을 공식화하는 정치적 선언, 일종의 ‘신사협정’으로 간주한다. 신사협정(Agreement)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약과 달리 상호 간에 이뤄지는 비공식 국제협정으로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일종의 협약이다. 즉 법률적인 이행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나 당사자 상호 간의 신의(信義)에 의거해 이행하는 호의적인 약속으로 볼 수 있다.

현재의 정전협정에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 중간 단계인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에 일종의 안전장치를 제공하는 의미이다. 평화협정 체결은 비핵화가 완료된 시점이고, 종전선언은 중간 단계에서 북한에 대한 체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라 할 것이다. 따라서 종전선언에 담길 내용은 ‘이제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전쟁은 없다’라는 형식의 의미를 담은 선언이면 족하고 상호 간 신의를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의 왼팔을 잡고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다. 1954년 4월 26일부터 휴전 이후 한국의 평화와통일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참전 16개국을 비롯한 관련 18개국회의가 열려 약 3개월 동안 토의를 이어갔다. 그러나 아무런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았다. 사진 앞에서 셋째줄 왼쪽부터 두 번째가 변영태 우리나라 대표다.

그동안 한반도에 전쟁과 적대행위의 중지를 규정한 정전체제나마 지탱시킬 수 있는 남북한간 합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정전협정 체제 아래 있다는 한반도는 사실상 정전협정으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1953년 정전협정에 의한 정전체제 자체는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이 사실상 종결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전쟁 당사자들 상호 간에 외교관계가 회복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1976년에, 한국과 중국은 1992년에 국교를 수립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체제라는 것이 특별히 필요한지, 이제 미국과 북한이 국교 정상화를, 남북한이 관계 정상화를 이룬다면 그것이 사실상 평화체제라고 보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제안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지난 6월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간 비핵화와 종전선언의 선후(先後) 문제로 야기된 갈등을 해소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북한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 정부에 조기 남북 정상회담을 요청해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처음 대면한 트럼프 대통령의 왼팔을 잡고 친근감을 표시하고 있다. 2018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평화의집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선언’을 발표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평화가 최우선 목표

문재인 정부는 ‘평화가 최우선 목표’라는 기조 속에서 평화체제 수립을 인식하고 있다. ‘항구적인 평화체제’는 남북 간 합의사항을 제도화하고 종전 및 관련국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수립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평화체제와 평화협정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을 근본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레짐(Regime)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한반도에 평화를 항구적으로 구축하고 보장하는 데 필연적인 것이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서 남북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 이제는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종전선언을 핵심 의제로 다뤄 실질적인 종전선언이 공표되기를 온 국민은 간절히 희망하고 있다. 최근 누리소통망(SNS)에서 북한 관련 연관 검색어를 찾아보면 평화, 기대, 성공, 존엄, 긍정적, 획기적, 따뜻하다, 적극적이다 등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 남북 회담에서도 형식에 머물러 진전을 이루지 못한다면 실질적 평화는 지켜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할 때다.

이 호 령 최 은 석
前 통일교육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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