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남북관계의 획기적 발전, 군사적 긴장 완화,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은 남북이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때 가능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

남북 하나의 경제공동체
“평화가 경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열린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경축식에서 9월 중 평양 방문과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도로 연결을 언급하며 남북 간의 평화를 강조했다.

“평화가 경제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강조한 대목이다. 평화를 통한 경제 번영을 이루자는 것이다. 먼저 분단의 폐해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전쟁의 공포가 일상화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막대한 경제적 비용이 들었고 역량이 소모됐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개발이 제한됐다. 서해 5도 주민들이 자유롭게 조업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은 대륙과 단절된 섬이 됐다. 자유로운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군부 독재와 이념 갈등 그리고 지역주의와 부정부패를 불러왔다.

분단의 폐해는 이처럼 다양하고 심각하다. 분단 때문에 전쟁 가능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특히서해에서는 남북의 젊은이들이 번갈아 죽었다. 우리가 ‘한반도’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남한은 육지와 연결된 ‘반도’가 아니라 휴전선에 가로막힌 ‘완도(완전한 섬)’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 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추구해왔지만 가장 기본적인 자유인 사상의 자유조차 제한되고 정치발전을 이루기 어려웠다. 진보와 보수가 공존해야 사회의 균형적 발전을 꾀할 수 있지만 진보는 ‘친북 좌빨’이 되고 보수는 ‘수구 꼴통’이 되는 이념 갈등과 색깔론이 기승을 부렸다.

그러기에 문 대통령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게 바로 우리가 통일을 이뤄야 할 절실한 이유다. 기성세대는 흔히 통일의 이유나 목적을 크게 두 가지로 꼽아왔다. 첫째는 남북이 한 민족이니 통일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는 남북이 합치면 경제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둘 다 바람직하지만 절실한 이유가 되기는 어렵다.

나라 밖으로는 국경이 낮아지는 세계화가, 안으로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이 분산되는 지방화가 이뤄지는 21세기에 같은 핏줄이라고 남북의 7500만 인구가 꼭 한 울타리 안에서 한 체제를 이루고 사는 게 그렇게 긴요한가. 우리가 분단된 상태에서도 세계 약 200개 국가 가운데 11~12위의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는데 통일을 이뤄 몇 단계 위로 성장하는 게 그토록 시급한가. 분단의 폐해가 너무 많고 크기에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

여기서 문 대통령은 ‘통일’이라는 말을 자제하며 ‘평화’를 강조했다.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말 대신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면서,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일 것이다. 통일이 되면 천문학적 경비가 들고 사회 혼란이 생길 것이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물론 남북 경제력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북한 경제를 남한 수준에 맞추려면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 70년 이상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 아래서 지내왔기에 하나가 되는 데는 엄청난 혼란이 뒤따를 것이다. 따라서 통일의 형태와 과정을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 체제와 지도자들이 사라지고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하나가 되는 통일을 그려왔다. 공식적으로는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실제로는 북한 붕괴를 통한 통일을 지향해왔다.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나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그랬다.

이렇게 갑자기 이뤄지는 통일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정책이 이를 강조하기도 한다. 1단계로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2단계로 국가연합을 이루고, 3단계로 완전한 통일로 나아가자는 점진적 통일정책 말이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만들어지고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살짝 고쳐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2018년 현재 문재인 정부까지 유지돼온 이른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2000년 6월 제1차남북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통일의 길도 남한의 통일방안 2단계인 국가연합에 바탕을 두고 있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부터 지금까지 여러 차례 2000년6·15 공동선언을 중시하겠다고 공언해왔는데,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말한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국가연합과 비슷하다. 여기서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라는 말을 통해 이념과 체제까지 하나가 되는 완전한 통일은 금세 이뤄질 수 없으며, 설사 이뤄지더라도 막대한 경비와 엄청난 혼란을 초래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남북이 분단의 폐해를 줄이며 전쟁의 가능성을 낮추고 자유롭게 오가며 경제 협력을 이룬다면 그게 바로 학자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실질적 통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원칙들에 따라 양국은 1)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2) 한반도에서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3) 북한은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점과 4) 전쟁포로와 실종자 송환에 합의했다.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제안한 이유

이는 문 대통령 임기 안에 이룰 수 있고 그래야 한다. 2007년 10월의 제2차 남북 정상회담과 2018년 4월의 제3차 남북 정상회담의 가장 큰 차이가 여기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10·4 선언’ 내용은 몹시 훌륭했다. 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밝힌 대로 “서해 5도의 주민들은 풍요의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조업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남북의 젊은이들은 교전으로 목숨을 잃으며 전면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위기를 겪었는데, 이러한 갈등과 분쟁의 서해를 평화협력지대로 만들자고 했으니 얼마나 바람직했는가.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를 이행할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다. 4개월 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물거품이 돼버린 것이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4년이라는 기간을 갖고 있다.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고 어떠한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남북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 사이에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 공존을 이루고 국가연합 같은 실질적 통일을 이룰 수 있고 그래야 하는 이유다.

분단을 극복하고 실질적 통일을 지향하자며 내세운 게 바로 평화다. 평화가 통일을 이루고 통일이 평화를 불러오지만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분명히 평화가 먼저다. 평화 없는 통일보다 통일 없는 평화가 백 번 낫다.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한다. 배경이나 이유가 어떻든 1990년대 초부터 불거진 북한 핵무기 개발 문제가 한반도의 갈등과 긴장을 불러오며 평화와 통일의 걸림돌이 돼왔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평화적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로” 뜻을 모았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전쟁을 막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혔다. 전쟁을 불사하고 북한을 폭격해서라도 핵무기를 제거해야 한다는 미국과 남한 보수 세력의 주장을 분명하게 거부한 것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여러 면에서 미국의 기존 대북정책을 벗어난 반전과 파격이었다. 6월 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남북 철도협력 분과회의에 앞서 남북 수석대표인 김정렬 국토교통부 제2차관(왼쪽)과 김윤혁 북한 철도성 부상이 악수를 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남북보다 북·미 간에 풀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대응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70년 동안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북한과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며 전쟁을 끝내고 평화협정과 국교 정상화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행과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포괄적 조치가 신속하게 추진되길 바란다”면서 “북·미 간의 비핵화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인 노력도 함께 해나가겠다”고 말한 배경 아니겠는가.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며 운전자 역할도 하고 주도적 노력도 하겠다는 것이다.

남북이 자주적으로 또는 우리끼리 관계를 진전시키며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의 지지와 협조 없이는 어렵다.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세계의 돈줄을 통제하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풀지 않으면 남한이든 중국이든 북한과의 경제 협력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남북 철도 연결조차 미국이 반대하면 실현하기 어렵기에 친미나 반미를 넘어 미국을 끌어들여야 한다. 문 대통령이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제안한 배경이다.

아시아의 섬나라 일본에서 남북을 거쳐 유럽의 섬나라 영국까지 철도가 이어지더라도 미국은 이에 전혀 포함되지 않지만, 미국의 동의와 지지 없이는 이뤄지기 어려운 게 국제관계의 현실이다.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세계 모든 대륙과 지역에 ‘경제공동체’나 ‘안보공동체’가 들어서 있지만 동북아시아에만 없다. 미국의 견제가 가장 큰 이유다.

6월 22일 러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통일박람회’ 행사에 참가한 한 어린이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적은 종이를 임시로 만든 철책선에 걸고 있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미국을 끌어들여 남북한 철도를 연결하며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만들어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발전시키고 이를 ‘동북아 다자 평화안보체제’의 출발점으로 삼자고 했을 것이다.

“올해 안에 착공식 갖는 게 목표”

이와 관련해 “‘판문점 선언’에서 합의한 철도·도로 연결은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마침 9월 중 평양을 방문할 계획이 잡힌 터라,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정상간에 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했다. 여기엔 물론 “순탄하지 않은 과정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야당과 보수 언론이 ‘퍼주기’라며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반대하고, 밖에서는 미국의 야당과 군산복합체 등이 방해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목을 잡기 쉽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라고 의지를 드러냈듯, 능숙한 운전자 역할과 주도적 노력으로 이러한 안팎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가 지혜를 모으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 혜 정 이 재 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평화학 교수

카카오톡 아이콘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스토리 아이콘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