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완성을 목전에 둔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북 · 미 간 대결 국면은 북한의 괌 주변 포위사격 발언이 나오면서 군사적 옵션을 적극 고려하겠다는 미국의 대응까지 더해져 양국 지도자 간 자존심을 건 치킨게임으로 변해버렸다. 북한은 상식을 뛰어넘는 도발을 감행할 것인가? 여기에 맞서 미국은 과연 군사력 사용 카드를 꺼내들 수 있을까?
김정은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선택했다. 핵 개발과 핵 포기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줬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핵 · 경제 병진전략을 내세워 핵 보유를 국가 비전으로 천명했다. 더구나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직접적인 메시지를 미국에 전달하기 위해 서방 과학자들도 관심을 가질 정도의 미사일 개발 속도전을 전개하고 있다. 핵 개발에 성공하고 미국과의 외교전에서 승리를 거둬 체제가 좀 더 안정화된다면, 김정은의 리더십은 그야말로 확고부동해질 것이라는 북한식 계산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8월 말을 넘어서면서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북 · 미 간 상호 비방의 수준이 조금 누그러진 양상을 보였는데,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8월 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전화회담이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중동이나 남미 등을 상대로 군사 옵션을 심심찮게 사용하긴 했지만, 한반도가 위치한 동북아는 얘기가 다르다. 중동처럼 누가 누구의 적인지 대결 구도가 복잡하지도 않고, 미국이 가한 타격의 힘이 지역 자체에서 흡수되지도 않는다. 북한에게는 한국이라는 손쉬운 보복 대상이 있고, 북 · 미 간 무력 충돌은 곧바로 미 · 중 대결로 전환되는 특징이 있다. 결국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할 때 무력 대결의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렇다고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으름장이 완전히 조정 국면에 들어간 건 아니다. 북한으로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좀 더 위기 국면을 조성해줘야 마지막 남은 핵무기와 ICBM 개발 성공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정당성이 확보된다. 미국으로서는 추후 전개될 수 있는 대화 국면에서 좀 더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려면 지금 고삐를 더욱 바짝 죄어야 한다. 이래저래 대치와 위기 상황은 좀 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북한을 향해 안보를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화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타진하고 있다. 우리가 대화를 제안한다고 북한이 쉽게 응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정부의 전략가들이 그렇게 나이브하지는 않다. 다만 더 이상 북한이 깔아놓은 ‘위기의 덫’에 끌려 다녀서만은 안 된다는, 우리 중심의 일관된 스탠스를 설정한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핵심은 우리의 정체성과 안보를 지켜내면서 평화를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에 있다.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시간이 점점 임박해오고 있다.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