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1일 첫 해외 순방지인 미국 워싱턴에서 가진 동포 간담회에서 “재외국민보호법을 만들고 지원조직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도 “재외국민보호법 제정을 추진해 재외국민 보호의 법률적 기반을 마련하겠다. 재외동포 지원조직을 확대하고 재외동포의 정체성 함양과 역량 강화에 필요한 지원도 늘리겠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이는 보호법과 조직 확대가 문재인 정부에서 같이 진행될 것임을 공식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과 동포들의 안전”이라며 “테러·범죄·재난으로부터 여러분을 안전하게 지키고, 통역이나 수감자 지원 법률 서비스를 위해 영사 인력을 확충하며, 전자행정으로 영사 서비스를 혁신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언급은 지금까지 외교부가 취해온 여러 정책 시도가 국민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결론에서 출발한 것이다. 외교부는 재외국민 보호 업무를 위해 지난해 재외동포영사국 내 재외국민보호과 외에도 재외국민안전과를 신설했고, 영사서비스과 역시 문서 인증 시스템인 아포스티유의 적극적 도입 등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전자행정을 지속적으로 구현해왔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이런 노력이 국민 눈높이에 비춰 부족했다는 인식이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재외국민보호법(안)을 대표 발의한 설훈 의원은 “제2의 양현정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발의 이유로 꼽았다. “멕시코에서 발생한 양현정 씨 수감 사건에서 드러난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의 부실한 대처 과정 등 외교부가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노력에 소홀한 것은 재외국민보호법이 부재한 탓”이라는 것이다. 즉, 현재의 법적·제도적 체계가 재외국민 보호에 미흡하며, 이것이 외교부가 보호 업무에 소홀한 이유라는 것이다.
| 재외국민보호법 제정의 필요성
그렇다면 왜 아직까지 재외국민보호법이 제정되지 않은 것일까. 헌법 제2조 제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거류국과의 관계에서 국가가 하는 외교적 보호와 국외 거주 국민에 대해 정치적인 고려에서 특별히 법률로써 정하여 베푸는 법률·문화·교육 기타 제반 영역에서의 지원을 뜻하는 것’이라고 광범위하게 재외국민 보호를 정의했다.
헌법에 규정되고 헌법재판소의 판시가 있었음에도 현재 별도의 법률 없이 외교부의 2008년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업무 지침’만 규정으로 있을 뿐이다.
재외국민보호법(안)은 17대 국회에서 처음 제출됐고, 20대 국회인 지금까지 총 14차례나 발의됐다. 구체적으로 논의된 것은 2004년 이라크에서 발생한 김선일 씨 피랍 참수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한국민이 해외에서 피랍돼 무참히 살해된 것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이는 재외국민 보호가 정부의 중요한 업무로 격상됨을 의미했다.
특히 한국의 국제적 위상 강화와 더불어 급증하는 해외여행 등 출국자의 증가도 한몫했다. 지난해 내국인 출국자는 총 2238만 명(누적 출국자 기준)에 달해 재외국민 보호의 중요성이 해가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이 중 100만 명 이상 여행한 국가는 중국, 미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등 7곳으로, 총 1700만 명 이상이 이들 나라를 여행해 이들 국가와의 재외국민 보호 교섭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여행객이 아닌 220만 재외국민의 존재 역시 중요하다. 특히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함에 따라 국내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제19대 대선에서 재외국민의 59.2%(13만886명)가 문 대통령을 선택한 점도 재외국민보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금까지 제출된 14건의 재외국민보호법(안)은 대부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재외국민 보호의 대상이 되는 정의 조항, 국민의 안전한 국외 체류·거주와 여행의 보장, 국제 법규 및 주재국 법령의 존중 등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원칙 규정, 정부 내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다양한 기구와 제도 설치, 일반적인 사건·사고에 대한 처리 및 위난 상황 발생이나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행하는 구체적 조치 사항 등이다. 즉, 법률 제정의 기본적 목적은 재외국민이 처할 수 있는 각종 사고 및 위난 상황에 따른 국가의 구체적인 보호 의무를 규정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일 미국 교포와의 간담회에서 재외국민보호법 제정을 약속했다.
| 다양한 쟁점, 복잡한 고려 사항들
그러나 재외국민보호법은 정의부터 보호의 범위와 한계에 이르기까지 다분히 쟁점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법률의 대상이 되는 재외국민의 정의이다. 재외국민의 정의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재외동포재단법’, ‘남북 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재외국민의 교육 지원 등에 관한 법률’ 등 다양한 법률에서 다르게 정의되고 있다. 헌법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포함’하므로, 탈북자 등 해외에 거주하는 북한인도 우리 국민이다. 한국 여권을 소지한 영주권자, 사실상 복수국적자도 우리 국민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해외 체류 북한인을 우리 법으로 관할하기 어렵고, 일부 국가가 자국민으로 사실상 취급하는 영주권자뿐 아니라 복수국적자를 관할하고 보호하는 데 법 시행상 어려움이 있다. 특히 재외국민 보호가 국제법의 ‘외교적 보호’나 ‘영사적 보호’와 어떻게 다르며, 이를 국제적 기준에 맞춰 어떻게 마찰 없이 담아낼지도 쟁점이다. 국내가 아닌 해외에 체류하고 있는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체류국의 주권과 법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외국민의 정의를 제한적으로 운용한다 하더라도, 정책이 실효적으로 투과될 수 있는 범위를 규정하는 것도 쟁점이다. 국외에 장기 거주하는 재외국민과 단기간 여행 중인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사건·사고 및 안전과 보호는 내용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여행자 일반 사건이나 테러 등 긴급 위난 사건, 장기 거주 재외국민과 연관된 침해 사건, 재외국민뿐 아니라 외국적 동포 및 일반 외국인 관련자와 연관된 사건 등의 경우에 보호와 조력 범위를 설정하는 것은 간단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재 한국의 재외동포 정책은 재외국민을 재외동포의 일부로 보고 있고, 재외국민 보호가 재외동포 보호와 종종 혼동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 동포 간담회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지구촌 시대에 빈번한 이주에 따른 재외거주민 사회의 형성은 사실상 국민과 동포의 개념을 혼동하도록 만들고 있다. 지난 정부의 ‘재외동포도 국민의 연장선상에서 정책화한다’는 기조도 국민과 재외국민 그리고 외국 국적 동포를 구분하지 않는 것이었다.
실효적 정책 범위 설정과 연관된 다른 쟁점은 정부가 구체적 보호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다고 여겨졌을 때의 대처에 관한 부분이다. 지금까지 발의된 법률(안)에 대해 정부 내 반대가 많았던 사항 중 하나인데, 보호 의무 방기에 따라 정부에 대한 소송이나 불만이 급증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인력과 예산은 적고, 특히 전문 영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5인 이하의 공관이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현실에서 재외국민보호법의 섣부른 제정이 과중한 업무 부담과 비효율적 불만 사항의 급증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특히 해외에서 발생하는 관계로 재외국민 보호와 지원에 필요한 경비는 국내보다 더욱 소요될 것이라는 점에서 예산의 급증은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 선 제정 후 제도 정비
그러나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연간 해외 출국자는 지속적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테러나 자연재해 등 돌발 변수 역시 더욱 자주 발생하면서 해외를 방문하거나 체류 중인 우리 국민의 위난 상황도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와 다른 사회 체제를 가진 국가에서 발생한 범죄나 돌발 사건에 일반 국민이 일일이 예방을 하고 대처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효과적인 사건·사고 대응 능력 함양 및 예방 활동을 통해 재외국민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이제는 체계화해야 한다.
민주국가인 한국은 법률에 기초해 예산과 제도가 마련되고 정책이 집행되기에 재외국민보호법의 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현재 여러 제한 사항이 있으므로 필자는 선언적이고 제한적인 재외국민보호법을 먼저 제정하고, 이에 기초해 구체적인 시행령과 지침 등을 제도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재외국민보호법의 내용과 범위를 ‘단기 체류 여행 국민’과 ‘장기 체류 재외국민’으로 구분해 국민의 경우는 사건·사고 및 위난에 대한 범위를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재외국민의 경우는 일반 영사적 보호에 근거해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특히 국민 다수 여행 국가(가령 100만 명 이상 방문한 7개국 등)에 대해서는 별도의 양자 협정 확대 등을 통해 실제적인 보호를 모색하는 실리적 자세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법제화이다. 먼저 법률이 만들어져야 ‘재외국민보호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담당할 영사 인력을 확충하고, 실효적인 보호 업무의 범위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각 관할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 집행계획도 수립할 수 있어 재외국민 보호 매뉴얼도 만들 수 있다. 영사 콜센터, 동행 서비스 등 예방과 안전 그리고 보호를 위한 현재의 다양한 제도들이 더욱 확고하게 제도화됨은 물론이다.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