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체제와 같이 극도로 폐쇄적이고 통제된 사회에서 3대에 걸친 권력 세습과 숙청을 통한 공포정치 등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 ‘시장화’가 20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직되고 비민주적인 정치체제하에서 이른바 ‘시장’이 하나의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동력으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시장의 확산이 국가 주도로 이뤄진 경제 개혁의 산물이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생존을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낸 ‘자생적 시장화’ 내지 ‘아래로부터의 시장화’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에서 시장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 · 중반이었다. 그 당시 북한의 시장화가 급속하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만성적인 경제 침체에다 이른바 ‘대기근’으로 명명될 만큼 수년에 걸쳐 거듭된 자연재해로 극심한 식량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살 수 있다’는 북한 당국의 그간의 선전과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가 주민들의 일용할 양식조차도 책임지지 못하자 주민들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참담한 현실로 내몰리면서 시장은 빠르게 확산돼나갔다.
| ‘돈주’의 형성, ‘장마당 세대’의 성장
둘째, 시장화에 대한 국가 대응의 한계이다. 북한에서 시장화가 오랜 기간 진행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북한 체제는 이를 통해 근본적인 경제 개혁을 수용하기보다는 제한적으로 활용 내지 묵인하는 수준에서 대응하고 있다. 일례로 북한 당국은 지난 2002년 7월 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를 통해 1990년대 이래 진행된 아래로부터의 시장화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2003년에는 공식시장인 ‘종합시장’을 허용했다. 하지만 2005년을 전후해 식량배급제의 정상화 시도, 2009년 11월 화폐 개혁 등을 통해 시장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다시 바짝 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가 앙등, 상품 공급의 위축 등 통제의 부작용이 뒤따르자 이듬해인 2010년 ‘5 · 26 지시’를 통해 시장의 단속과 통제를 철회했다. 김정일의 사망에 따라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역시 2012년 ‘6 · 28 조치’를 통해 농업 및 공업 등 각 분야에서 성과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일부 협동농장이나 공장, 기업소 등에서 시범적으로 이 방침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두고 외부 세계의 많은 관찰자들은 북한이 시장을 ‘활용’하고 ‘통제’하는 조치를 반복하고 있지만 시장화의 흐름을 거스르거나 계획경제를 복원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셋째, 시장화의 확산에 따른 계층의 분화가 이뤄지는 등 북한 사회가 획일화에서 다원화로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기준에서 볼 때 북한의 시장화 수준은 미약한 상황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억압되고 통제된 사회에서 국가의 수동적 대응 속에서도 자생적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 그 안에 동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시장 통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북한 내 신흥 자본가를 일컫는 ‘돈주’의 발호,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유년기를 보내며 청년층으로 성장한 이른바 ‘시장 세대(장마당 세대)’의 형성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명령형 계획경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사경제(시장경제)에 더 친화적인 계층으로 자유화와 개방에 이전 세대보다 훨씬 익숙해 있다. 북한이 지금까지 교환의 장소로서 ‘시장’을 통제하거나 용인하면서 시장 세력을 포섭하고자 했다면, 향후에는 자본주의가 체화된 이들을 포섭하는 데 좀 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북한 체제의 ‘변화’를 이끌 수도 있는 이들의 잠재적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 단속과 통제
2016년 기준으로 북한의 시장 규모에 관한 국내외 분석에 따르면, 북한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종합시장’만 400개를 훨씬 넘어선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외형적 성장은 앞서 간략히 언급했듯이 북한 당국의 반복된 통제와 계획경제 복원 시도 등 반시장적인 정책을 무색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특히 이 시장화가 어느덧 20여 년 이상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변화의 속도와 깊이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에서 시장의 확산이 온전히 북한 당국의 반시장 정책을 무력화하면서 이뤄진 것으로만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문제는 북한의 시장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필수적 물음의 하나이다. 큰 틀에서 보면 지금껏 북한 당국이 친시장적인 정책보다는 반시장적인 정책을 우선시해왔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북한 당국이 암시장화된 시장을 공식시장으로 인정한 것은 시장을 통제 가능한 제도의 영역으로 포섭하고자 한 것이며, 반복된 시장에 대한 단속과 통제는 다분히 시장의 자기증식성을 의식한 의도적인 제어였다고 볼 수는 없을까.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1990년대 이후의 북한 시장화 현상뿐 아니라 그 이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북한 체제 형성 이후 어떻게 시장이 계획경제와 공존해왔는지에 관한 북한 체제에서의 ‘시장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
북한의 통일거리 시장 풍경.
북한 체제에서의 시장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북한 당국이 시장을 통제하고 단속하는 것으로 일관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묵인하거나 이용하기도 하고, 시장을 통해 계획경제의 빈틈을 메우려 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광복 직후부터 있어왔다. 북한은 이를 시장의 ‘이용과 제한’ 정책이라고 스스로 명명하고 있을 만큼 그 뿌리가 깊다. 광복 직후 북한 지역에 흩어져 있던 전통시장은 물론이며 ‘사회주의적 개조의 완료’를 선언한 1958년 이후도 농민시장을 통해 이 정책은 지속됐다.
다시 말해 북한에서 시장은 비록 자본주의적 시장의 규모와 형태와는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되지는 않지만 적어도 계획 부문을 보완하고 국가의 통제 영역 안에서 비공식 부문으로서 오랜 기간 작동돼온 것이다. 1990년대 북한 시장화 확산의 기폭제가 된 것도 다름 아닌 북한 당국 스스로 허용한 농민시장이 장마당이라는 이름으로 암시장화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북한 당국이 2003년에 공식시장인 ‘종합시장’을 허용한 것은 통제 불능의 시장으로 방치하기보다는 통제 가능한 시장으로 재편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결과이며, 이후 북한 당국이 취한 반시장적 정책은 시장을 제한적으로 활성화하려 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 내성과 자생력
북한 당국이 시장을 활용해 계획경제의 한계를 보완하려 한 시도는 결과적으로 좌절됐고, 현재도 부분적인 개혁만으로는 이 의도를 관철하기 어려워 보인다. 즉, 북한 체제 안에서 계획경제는 침식되고 시장이 빠른 속도로 그 빈 공간을 메우고 있는 것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시장화가 확산되면서 소비재 시장은 물론 비록 초보적 형태이기는 하지만 생산재, 자본 및 금융, 노동시장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는 등 북한의 시장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러한 시장화 수준을 1980년대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로의 변화와 비견된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중국은 당시 시장사회주의라는 ‘걷지 않은 길’을 걸었던 반면, 북한은 지금껏 ‘걸어온 길’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북한은 시장의 ‘이용과 제한’ 내지 ‘제한적 활성화’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북한의 시장화는 국가의 통제와 단속에도 그 불씨가 꺼지지 않을 만큼의 내성과 자생력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이러한 시장 메커니즘에 편승해 개인적인 부를 축적하고 자본주의적 사고에 기초한 계층과 부류가 형성됐다. 북한 당국의 중요한 도전은 시장의 확산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매개로 새로운 계층이 분화되고 시장의 편익을 공유하는 계층이 증대되는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이들은 고스란히 체제의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