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의 시작은 스커드 미사일 도입이었다. 1960년대 구소련에서 스커드 미사일을 도입하려다 실패한 북한은 1970년대에 중국과 단거리 탄도미사일 공동 개발을 추진했지만 이것도 실패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집트로부터 스커드-B 미사일 샘플을 확보한 북한은 역설계를 통해 1985년부터 첫 자국산 탄도미사일을 생산하기 시작해 1988년에 실전 배치했다. 이후 사거리를 500km까지 늘린 스커드-C를 개발했고, 스커드의 덩치를 키워 일본까지 타격할 수 있는 노동 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했다.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 기술이 무르익자 북한은 ICBM을 향한 도전을 시작한다. 시작은 대포동 1호로 1998년 8월 발사했으나 실패했다. 사거리가 최대 2800km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돼 ICBM으로 부르기엔 턱없는 수준이었지만, 한·미·일 당국은 ‘대포동 쇼크’에 빠졌다. 이후 2006년 7월 4일 ICBM급 외양을 갖춘 대포동 2호(북한명 은하 2호)를 발사했지만 실패했다. 2차 핵실험이 있던 2009년에도 발사했는데, 사거리는 최대 6700km로 추정됐다.
한 발 더 나아가 북한은 3차 핵실험을 앞두고 2012년부터는 대포동 2형을 발전시킨 은하 3호를 발사한다. 4월 첫 발사는 실패하고, 12월 2차 발사는 성공했다. 또한 4차 핵실험 직후인 2016년 2월에는 은하 3호 계열인 광명성 4호 발사까지 성공했다.
하지만 은하 3호 이후의 성공은 ICBM의 가능성을 연 것이지 ICBM 자체로는 평가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공위성이든 핵탄두든 은하 3호의 탑재중량이 100kg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힘이 부족한 노동 미사일 엔진 4개를 묶어 클러스터링(결합)을 하다 보니 로켓 자체의 중량이 너무 무거워 막상 탑재해야 할 탄두의 중량은 작아져버렸다. 따라서 500kg~1톤으로 추정되는 현재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경량화 수준으로는 은하 3호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게 불가능하다.
| 제2세대 미사일의 등장
이에 따라 북한은 차세대 미사일을 개발했다. 구소련의 붕괴로 직장을 잃은 러시아 미사일 기술자들을 섭외했고, 암시장에 나온 미사일 관련 무기체계는 무엇이든 사들였다. 그 결과 구소련제 R-27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표준으로 사거리 3500km의 무수단(북한명 화성-10) 미사일을 만들었다.
무수단은 스커드보다 훨씬 강력한 추력 엔진에 미사일 길이도 짧아 SLBM은 물론이고, ICBM의 2·3단으로 쓸 수 있어 스커드를 뛰어넘을 차세대 미사일로 적격이었다. 무엇보다도 북한은 무수단 개발을 통해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3000~5500km) 능력을 얻었다. 북한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들이 주둔하는 괌 앤더슨 공군기지를 때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북한은 무수단과 북극성 미사일의 개발로 ICBM의 2단과 3단 추진체는 확보했지만, 정작 무거운 ICBM을 대기권 밖으로 쏘아 올릴 1단 추진체는 확보하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이 1단에 해당할 로켓 엔진이 지난해 9월 20일 공개됐다. 약 80톤 포스 출력의 신형 엔진으로 ‘백두산’ 엔진이라 불리는데, 지난해 9월 메인엔진 출력 테스트에 이어 올해 3월 19일에는 메인엔진에 보조엔진 4기가 결합돼 최대 100톤 포스의 출력을 낼 수 있는 완성 모듈이 공개되면서 ICBM 발사가 예고됐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4일 만인 올해 5월 14일 새로운 미사일이 발사됐다. 발사된 미사일은 ‘화성-12형’으로 ICBM이 아니라 중거리 미사일이었다. 하지만 고각 발사로 시험비행한 화성-12형은 고도 2111.5km, 사거리 787km를 비행해 당시까지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 가운데 가장 멀리 날아간 것으로 평가됐다. 정상 각도로 발사하면 약 5000km를 비행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ICBM의 사거리인 5500km에는 약간 못 미치는 준ICBM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화성-12형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ICBM 완성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점에 있다. 한마디로 북한의 ICBM 개발 단계에서 가장 큰 과제인 1단 추진체를 검증하기 위한 성격의 미사일이었다. 화성-12형은 1단으로만 구성돼 있음에도 무려 5000km 정도까지 비행할 수 있어, 여기에 2단만 더해도 충분히 ICBM으로 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불과 2개월도 안 된 7월 4일 북한은 화성-14형을 발사했다. 이날 발사에서 화성-14형은 최대고도 2802km, 사거리 933km를 날아갔다.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7000~8000km 정도 비행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됐다. 사거리로 본다면 ICBM이었다. 그러나 북한에서 워싱턴을 때리기 위해서는 1만km 이상은 비행할 수 있어야 하므로, 미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ICBM으로서는 부족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3주 후인 7월 28일 밤 11시 41분 북한은 또다시 화성-14형 미사일을 발사했다. 2차 발사에서 화성-14형은 고도 3724.9km, 사거리 998km를 47분 12초간 비행했다. 1차 발사보다 900km 정도 더 상승했고, 무려 8분이나 더 비행했다. 1차 발사 때는 사거리가 7000~8000km 정도로 평가됐는데, 2차 발사 때는 1만1000km까지도 평가가 나온다. 화성-14형으로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다던 북한의 주장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 24일 만에 2차 발사를 한 이유
1차 발사 이후 화성-14형 미사일은 사거리가 부족하거나 대기권 재진입 능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들이 많았다. 특히 국가정보원은 7월 12일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 북한이 ICBM의 핵심 능력인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아직 획득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차 발사에서 화성-14형은 현저히 향상된 성능을 과시했다. 도대체 24일 만에 어떤 기술적인 진전이 가능했기에 이러한 차이가 나타났을까?
비결은 탄두 무게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1차 발사를 설명하면서 북한은 “새로 개발한 대형 중량 핵탄두”를 탑재했다고 했다. 아마도 5차 핵실험에서 위력을 과시했던 기존의 핵탄두보다 더 무겁고 파괴력이 강한 핵탄두의 탑재를 상정하고 발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2차 발사에서는 그러한 표현이 없다. 신형 대형 탄두가 아니라 폭발력이 10~20킬로톤으로 추정되는 기존의 핵탄두를 장착하고 시험발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탄두의 중량이 가벼워진 만큼 사거리가 증가한 셈이다. 즉 미국 본토까지의 사거리를 보유하고 있음을 과시한 것이다.
사거리 말고도 북한이 시험발사에 고려한 사안이 바로 재진입 능력이다. 1차 발사 당시 재진입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시되자 굳이 야간 발사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야간에 발사하면 엄청나게 달궈진 재진입체가 마치 유성처럼 떨어지는 것이 맨눈에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화성-14형의 재진입체는 NHK 홋카이도 지부의 옥상에 설치된 폐쇄회로TV(CCTV)에 포착됐다.
이 CCTV 궤적을 보고 화성-14형의 재진입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 연구자도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마이클 엘먼 선임연구원은 영상 분석 결과 재진입체가 고도 6∼8㎞ 상공에서 최고 섬광을 낸 뒤 3, 4㎞ 상공에서 빛을 잃고 빠르게 사라졌다는 점에서 대기권재진입 실패를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2차 발사에서 대기권 재진입 후에 공중 폭발시켰다고 이미 밝혔으며, 탄착 지점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라는 점에서 인명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중 폭발은 필수였을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성공이었다고 평가해도 무방하다.
7월 28일 화성-14형 발사 성공 소식을 접한 김정은 위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박수치고 있다.
| 북한 ICBM의 의미
북한이 미·러·중의 최신예 ICBM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미·러·중의 ICBM이 박사 수준이라면, 북한의 그것은 이제 중·고등학생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신속한 발사를 위해서는 고체연료로 ICBM을 전환해야 하고, 다탄두 공격 능력을 갖춰야 하며, 무엇보다도 전략핵미사일에 걸맞은 강력한 파괴력을 가진 탄두를 갖춰야 한다.
미사일 자체의 능력이 갖춰졌다고 해도 더 큰 난관이 있다. 화성-14형 수준에서 ICBM을 운용하려면 결국 지하 사일로에서 운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사일로의 개수를 늘리고 상상하지 못할 곳으로 분산시켜야만 생존성이 보장된다. 이 과정에서 핵무기의 발사를 지시하는 핵 지휘통제체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이냐도 큰 관건이다.
돌이켜보면 북한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약한 국가이다. 이런 국가가 ICBM을 개발하며 미국에 대항할 핵전력을 만들어왔다. 비록 1970년대 수준의 기술이라 해도 핵미사일이다. 맞으면 수십만, 수백만 명이 죽는다. 게다가 북한은 지난 4월 열병식에서 신형 ICBM 발사차량을 공개함으로써 고체연료 ICBM을 개발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SLBM 전력도 꾸준히 증강하며 내년 이후에는 실전에서 운용 가능한 탄도미사일 잠수함이 기지에 배치될 전망이다. 북한식 핵전력이 하나둘씩 완성돼가고 있는 위중한 상황이다.
한국국방안보포럼 WMD대응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