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김해 율하초등학교 통일STAR어린이회 교무실 앞에는 빨간색 우체통이 하나 생겼다. 통일과 북한에 대한 궁금증이 적힌 쪽지를 받는 ‘통일우체통’이다. 어린이회 회의 결과 설치한 이 우체통에는, 낙서 장난을 한 쪽지들도 있지만, ‘왜 통일이 안 되는 건가요?’라고 묻거나 ‘우리나라가 왜 분단됐는지 과정을 알려 달라’는 어렵고 진지한 질문도 담겨있었다. 어린이회 아이들은 이 ‘통일우체통’을 비롯해 지난 6개월 여 동안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고, 홍보하고 친구들과 함께해 왔다. 아무리 자치활동이라고는 하지만, 가끔 말문이 막히거나 곤란해질 때면 어김없이 뒤에 앉아계신 선생님을 쳐다보며 까르르르 웃던 율하초등학교 아이들을 만나보자.
서진 : 저희 학교가 올해 통일교육연구학교로 지정돼서 어린이회 이름도 통일STAR어린이회로 바꾸고 많은 활동을 했는데, 가장 먼저 한 일이 통일마크를 공모한 것이었어요. 이상한 걸 적어놓거나 장난으로 낸 것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참여해줬어요. (스티커 용지에 프린트한 통일마크를 건네며) 이거 드릴까요? 원래 학생들이 전교어린이회 활동에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 직접 PPT를 만들어서 방송을 통해 알렸더니 참가자가 훨씬 많아진 것 같아요.
지우 : 이 마크가 (각 교실에 설치된 TV 방송용) 홍보자료 PPT에도 쓰이고 전교어린이회에서 나눠주는 인쇄물에도 쓰여요. 우리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게 더 의미가 큰 것 같아요.
정민 : 저는 경남 통일딸기 수확체험1)에 친구들과 함께 가서 왜 통일딸기인지 알아보고 딸기를 직접 따 본 게 좋았어요. 그런데 그날 딸기를 안 먹고 박스째 집에 가져왔는데, 버스에서 다 눌러져 버려서 속상했어요.
서진 : ‘통일교육 주간’에는 북한말 퀴즈 행사도 했는데요. 학생회 임원들이 직접 모든 반에 찾아가서 북한말 퀴즈가 적힌 종이를 나눠주고, 맞힌 친구들을 추첨해서 상품을 줬어요.
의영 : 400명 정도? 생각보다 많은 애들이 참여해줬어요. 퀴즈 답안을 받는 통이 있었는데 그 안에 가득 찰 정도였거든요.
정민 : 퀴즈 문제를 나눠주기 전에 먼저 TV를 통해서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자기가 아는 북한말을 댓글로 써 달라’고 홍보를 했는데 많은 댓글이 달렸어요. 저희는 댓글로 접수한 북한말 중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각 수준에 맞게 문제를 골라 낸 다음, 각 반에 들어가 설명을 하고 퀴즈 문제를 나눠줬죠.
서진 : 그런데 막상 1~2학년 애들 반에 들어가 보니 뭔 말인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시끄럽게 떠들어대긴 했어요.(웃음) 또 가까이 다가오더니 ‘어? 저 사람 TV에서 봤는데?’ 하면서 자기네들끼리 막 웃더라고요. 답이 뭔지 대놓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그리고 문제 중 일부는 빈칸으로 잘못 나간 것이 있었는데 거기에다 아이들이 ‘통일 됐으면 좋겠습니다’는 말도 쓰고 ‘북한말은 한국말’이라고도 썼더라고요.
지우 : 아마 전교생이 거의 다 참여한 것 같아요. 처음으로 하는 퀴즈 행사이다 보니 애들이 맞히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아요.
e-행복한 통일 : 북한말들을 많이 배웠을 것 같은데 우리말과 어떤 점들이 다르던가요?
의영 : 고기겹빵? 햄버거라고 하지 않고 외국말을 고기겹빵이라는 고유어로 바꿔 쓴 게 재미있었어요. 그런 말을 생각해냈다는 게 신기하고, 고기겹빵이라고 하니까 왠지 더 맛있게 느껴져요.(웃음)
지우 : 맞아요. 북한말에는 순수한 우리말이 많더라고요. 통일이 되면 남한과 북한이 언어를 통일해야 하잖아요. 한자어나 외래어보다 순우리말을 많이 썼으면 좋겠어요.
의영 : 끼 자랑 발표대회도 열었는데, 이번에 친구들 앞에서 처음으로 통일공연을 했어요. 남북한이 모두 아는 ‘고향의 봄’이랑 ‘우리의 소원’, 북한 노래인 ‘대홍단 감자’를 불렀는데, 처음엔 화음도 어렵고 힘들었지만 합창 선생님의 도움과 친구들의 노력으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어요. 물론, 6학년 남자 친구들은 변성기 때문에 목소리가 걸걸해져서 음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지만요.(웃음)
지우 : ‘통일우체통’이라는 프로그램도 했어요. 학기 후반에 시작한 건데, 친구들이 통일에 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메모지에 적어서 통일우체통에 넣고, 이 질문에 전교어린이회가 답변해주는 방식이에요.
e-행복한 통일 : ‘그걸 과연 넣는 친구들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나요? 몇 개나 들어왔어요?
서진 : 전에 했던 통일 활동도 친구들이 잘 참여해줘서 이번에도 기대를 조금 하긴 했는데, 막상 열어보니 꽤 많아서 와르르 쏟아지더라고요.
지우 : 장난말을 썼거나 허무맹랑한 요구도 있어서 솔직히 당황스럽기도 했고, 너무 질문이 많아 하나하나 답변을 써주는 게 힘들긴 했지만, 우리가 성실히 답변을 해준 만큼 친구들이 통일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서진 : 그 중에 한 학생은 ‘왜 통일이 안 되느냐?’고 우리에게 물어봐서 답변을 못해줬어요.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뭐라고 쓸 수가 없는 거예요.(웃음)
의영 : 제가 받은 질문지 중에는 6.25전쟁의 과정과 남북한 분단과정을 적어달라는 내용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회과목에서 배웠던 것 위주로 답변을 했던 기억이 나요.
e-행복한 통일 : (서진, 의영, 지우에게) 이제 곧 졸업이라 아쉽겠지만, 혹시 해보고 싶은 통일 활동이 있다면요?
서진 : 되게 많은데 그 중에 몇 가지만 꼽자면 통일 포스터 그리기나 통일 동화를 만들어서 복도에 전시하기, 북한에 대한 지식을 뽐내는 ‘통일 골든벨’ 개최하기 등을 생각해 봤어요.
의영 : 우리 학교엔 탈북 학생이 없지만, 전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서 온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북한은 지금 어떤지, 어떤 식으로 살아왔는지 자세히 알고 싶어서요.
정민 : 혹시 뽀로로가 북한과 함께 만든 애니메이션이라는 거 아세요? 저는 통일 캐릭터를 만들어서 학교 게시판에 올려보고 싶어요. 또 학생회에서 이야기 중이긴 한데, 통일소원 나무를 만들어서 학교 현관에 놓아두고 ‘통일 쪽지’를 매다는 일도 재밌을 것 같아요.
지우 : 전 북한의 문화를 알아보고 싶어요. 친구들이 ‘통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고,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려면 준비가 필요한 거잖아요. 북한음식 체험하기나 북한 전통놀이 같은 걸 즐기다 보면 자연스럽게 북한의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요?
e-행복한 통일 : 통일에 대한 우리 친구들의 생각은 어떤가요?
서진 : 저는 통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넓어지고, 국력도 강해지잖아요. 전쟁 날까봐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고 북한으로 여행을 갈 수도 있구요.
정민 : 지구에서 우리나라만 분단된 나라라고 하잖아요. 너무 오래되면 각각 다른 나라가 돼 버릴 것 같아요. 게다가 통일을 하면 인구가 많아지고 자원도 늘어나서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으니 당연히 통일을 해야죠.
의영 : 저희 할머니는 어렸을 때 함경도에 살다가 6.25전쟁이 나서 남한으로 피난을 오셨대요. 하지만 그때 친척들은 내려오지 못했기 때문에, 하루빨리 통일이 돼서 그분들을 다 만나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지우 : 의영이 할머니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들인데 평생 만나지 못한다는 건 참 가슴 아픈 일인 것 같아요. 북한과 우린 한민족인데 이렇게 갈라져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게 안타까워요. 또 우리가 영원한 평화를 누리려면 통일은 반드시 필요해요. 통일이 되면 전쟁 비용도 줄일 수 있고, 북한의 자원과 우리의 기술을 같이 발전시켜 더 없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들었어요.
e-행복한 통일 :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그 친구들에게도 통일이 필요하단 걸 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서진 : 우리 학생회나 용기있는 친구들이 나서서 통일 이후의 상황을 연극으로 보여주면 어떨까요? 통일된 이후에 벌어질 일 중 좋은 점만 보여주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요?
의영 : 저는 토론회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반대하는 친구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찬성하는 친구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각자 입장을 말하게 한 뒤 통일의 장점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주면 생각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지우 : 통일이 왜 필요한지 알려주는 것도 좋지만, 뉴스에서 보니까 탈북 학생들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꺼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통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지경인데, 탈북 학생들이 와서 그런 대우를 받는다면 통일을 하고 싶을까요? 북한 친구들이 이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가 그 친구들을 더 많이 이해해주고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글/사진.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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